'2022 부모탐구 미니콘: 요즘 부모'를 준비하며.
'요즘 부모'라는 타이틀을 보고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요즘'이란 말은 썩 긍정적인 느낌이 아닌데, 굳이 제목을 그렇게 쓰신 이유가 뭐냐고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 여쭤봤더니 '요즘'이라는 말 뒤에는 '유별나다', '지나치다'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연상된다고 하셨어요.
워크숍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드렸더니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요즘 부모는 '~해야 한다', '~을 놓치면 안 된다'고 해서 부담스러웠던 경험, 요즘 부모는 '복에 겨웠다', '세상 편하게 아이를 키운다'라는 '훈계아닌 훈계'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보니 누군가 '요즘 부모'라는 말만 꺼내도 긴장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요즘 부모로 사는 '당신'은 어떠세요?" 앞선 반응은 요즘 부모에 대한 타인의, 사회의 이야기에 대한 것이었거든요. 포커싱을 '나'로 돌리는 질문을 드리며 다시 생각해보게 돕습니다.
흔히 '요즘 부모'라고 하면 밀레니얼 양육자, MZ세대 부모를 떠올리며 내가 요즘 부모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려고 하세요. 그런데 우리가 '요즘 부모'에 대해 묻는 이유는 '구분'이 아닙니다. 밀레니얼 양육자는 밀레니얼 시대의 요즘 부모, 베이비 부머 세대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요즘 부모이거든요.
조선 시대의 부모는 조선 시대의 요즘 부모였고요.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가 되면, 또 그 시대의 요즘 부모가 될 겁니다. 누구나 그 시대의 요즘 부모입니다. 부모가 아닌 '요즘 부모'를 물은 건 오늘, 부모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시대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바라볼 때 이해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코로나 시대에 출산을 하고 부모가 된 분들과 그 이전에 부모가 된 분들은 다른 환경 안에서 부모가 되고 부모로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무래도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 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적다보니 사회성에 더 신경이 쓰이죠.
이 부모들을 코로나 시대 이전에 어린 아이를 키운 부모들이 바라본다면, 아이가 자라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질텐데 '요즘 부모'들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아이를 키운 경험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요. 반면 사회환경적인 맥락 안에서 바라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유별나다'는 말도 함부로 하지 않게 되지요.
나 스스로를 '지금, 이 시대' 안에서 바라볼 때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80년대생 부모들은 'MZ세대'에 속합니다. MZ세대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자녀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자랐어요.
당시는 매년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고성장 시대였지요.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던 시대에 나고 자란 겁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러한 사회환경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라는 질문을 드렸어요.
어렸을 때 가훈이 '노력'이었다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부모님은 실제 삶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부모님이 노력하신 만큼 우리집의 경제적인 상황이 나아지는 게 제 눈에도 보였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노력하면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처음 부모가 됐을 때도 육아가 힘들고 어려웠어요. 그 순간 제가 선택한 방법은 더 노력하는 거였어요. 그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거든요. 육아는 노력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제가 나고 자란 환경과 연결되어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이해하니까 어려운 일을 마주하면 더 노력하던 내가 보이고 나에게 육아가 참 어려운 일이어서 그렇게 노력했다는 게 보여요."
이렇게 시대적 맥락 안에서 나를 바라보면,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종종 '엄마는 저에게 이렇게 해주셨는데, 저는 그 반의반도 아이에게 못해주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분을 만납니다. 부모님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님과 나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부모니까요.
"요즘 부모로 사는 당신은 어떠세요?"라고 다시 물으면 말이 없어집니다. 불편해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요즘 부모로 사는 '나'는 어떤지를 이야기 하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고 하십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아이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나'를 주어로 생각하고,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꼭 부모만 그런 건 아닙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우리가 받은 질문들은 대부분 '뭐 할 거야? 언제 할 거야? 어떻게 할 거야?' 같은 역할과 연결되어 있어요. 역할에 대한 질문만 받다보니, 역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답만 찾는데 익숙해집니다.
부모가 되어도 그렇습니다. '아이는 잘 크고 있나요?', '모유 수유는 하나요?' 등 양육에 대해서만 물을 뿐 '부모가 되니 어때요?', '오늘 무얼 하고 싶어요?' 등 부모가 된 한 사람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부모들 역시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아이는 왜 밤에도 수시로 깨는지, 어떤 순서로 어떻게 자라는지,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부모라는 역할을 잘 하기 위한 답을 찾게 되지요.
특히 요즘 부모들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스스로 고민을 하고 적극적으로 공부합니다. 그런데 역할이 주어가 된 질문에 답을 찾다보면, 부모라는 역할을 잘 하고자 할 때 '사회적인 정답'에 가까워지려고 애쓰기 쉽습니다.
임신을 해서는 자연분만, 아이가 태어나면 모유수유, 육아휴직이 끝나갈 무렵에는 '3세신화'와 같은 '엄마정답'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죠. '엄마정답'은 나의 답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선택지 중의 하나일 뿐 좋은 부모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에요.
가장 안타까운 건 그러다 '부모가 되니 내가 없어진 것 같아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되어 내가 없어진 게 아니라, 부모가 되어 부모라는 역할을 잘 해내려는 마음이 커지다 보니 어느 순간 역할에 매몰되어 버린 것입니다. 부모라는 역할만 남고, 부모가 된 한 사람은 사라지는 것이지요.
이를 방지하려면 우리 각자가 '부모인 나'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이 아니라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나는 어떤 부모를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각자 나만의 해답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다양한 해답이 공유될 때 우리는 다양한 부모의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 아니면 나쁜 부모'가 아니라 '좋은 부모, 같이 잘 웃는 부모, 책을 잘 읽는 부모, 에너지 넘치는 부모, 퍼즐을 잘 맞추는 부모' 등 다양한 부모 안에서 나다운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자람패밀리가 올해 10주년을 맞아 부모들에게는 지금, 부모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부모 인칭으로 나누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웨비나로 진행되는 '2022 부모탐구 미니콘: 요즘 부모'에서 요즘 부모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