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회사에서의 동호회(?) 활동
얼마 전 WhatsApp에서 잊고 있던 한 채팅방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드래곤 보트 단톡방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Dragon Boat Festival(드래곤 보트 축제, Drachenbootfest) 출전을 앞두고 10주간 훈련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고민했다. 올해도 참여할까?
독일에는 지역별로 매년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행사들이 정말 많다. 우리나라에도 매년 진행하는 행사들이 많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한두 번 참여해보고 만다. 경험에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쫓아 새로운 장소에 가기 바쁘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매년 같은 시기에 있는 같은 행사를 몇 개월 전부터(심한 경우 1년 전부터) 미리 염두해 두고, 계획하고, 참석한다. 모두가 그렇게 당연하게 매년 참석하기 때문에, 그런 지역 행사에는 동네 사람들 수백 명이 자연스레 모인다.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즐긴다. 이들에게는 매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고, 전통이 의미있다. 지역 행사는 오랜 동창부터 한동안 보지 못한 이웃과 친구의 부모님까지 'catch up' 하는 만남의 장이다. 그저 맥주와 사람들만 있으면 축제는 완성된다.
지금은 전세계인의 축제가 된 뮌헨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도 이런 지역 축제에서 시작했다. 단지 옥토버페스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을 뿐, 이와 같은 맥주 축제는 독일 내에서 굉장히 흔하다. 독일 각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맥주를 중심으로 한 축제를 열고, 독일 사람들은 유명한 옥토버페스트가 아닌 본인/지인의 연고가 있는 축제에 참여한다.
드래곤 보트 축제도 매년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언으로 참여가 약속된 축제였다. 매년 8월 말~9월 초 주말에 진행되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매년 여름에 10주간의 훈련을 한 뒤 축제에 참여하곤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20년과 21년에는 축제가 취소되었고, 나는 2022년, 3년만에 열리는 드래곤 보트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은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회사 근처 호수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회사 근처라고는 하지만, 큰 기차역 외에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 자전거로 40분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또 15분 정도 일찍 모여 옷을 갈아입고 준비 운동을 하므로, 4시 즈음에는 퇴근을 해야 했다.
독일 사람들은 대개 일을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내는 편이다. 저녁 시간을 온전히 보장받기 위한 걸까. 관공서조차도 아침 7-8시에 문을 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적인 일일 근무시간은 8시간인데, 7시에 근무를 시작하면 점심시간 1시간 후 4시에는 퇴근을 할 수 있다.
우리 팀은 8시부터 5시 근무가 표준이라, 4시에 퇴근하려고 하면 눈치가 조금 보이긴 했지만, 따로 눈치를 주는 분은 없었다. 회사 동호회이고 10주 동안만 진행되는 활동이다 보니 다행히 모두들 양해를 해주셨다.
Ready, Set, Go! 구령으로 시작하는 훈련은 당연히 독일어로 진행되었다. 내가 독일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하나! 둘!'과 같은 단순한 구령이라 눈치껏 보고 듣고 따라갈 수 있었다. 코치로부터 보다 상세한 피드백이 있을 때는 옆 동료들이 영어로 설명해 주기도 했다.
새로운 멤버는 나와 다른 한 명 밖에 없었고, 독일답게 모두들 몇 년째 드래곤 보트를 타고 있었다. 훈련 첫 날, 옆자리 동료에게 '드래곤 보트 타본 적 있냐, 몇 년 타봤냐'고 물었다가 '15~17년'이란 답을 듣고 깜짝 놀랐더랬다.
1시간의 훈련이 끝난 후엔 호숫가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가벼운 뒷풀이를 했다.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무알콜 맥주를 마셨고, 나는 주로 레모네이드와 맥주가 섞인 Radler를 마시곤 했다. 운동 후 목마른 상태로 마시는 Radler는 정말 상큼하고 시원하다!
드래곤 보트 축제 당일. 행사는 대회라기 보다는 회사 동료, 가족, 이웃들이 함께 즐기는, 정말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나도 내 친구를 초대했고, 회사 동료들도 모두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했다. 회사에서만 보던 동료들의 가족을 보는 게 색달랐고, 동료들이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한두 살짜리 아기들도 데리고 참여하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특히 우리 팀의 리더는 사실 출산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 회사에선 육아 휴직 중이었다. 그런데 동호회 활동은 벌써 복귀하여 리더 역할을 하는 게 재밌었고, 나름 스포츠인 드래곤 보트를 타는 게 대단하기도 했다.
대회는 리그 형식으로 우리 팀은 총 6번 정도 200m 레이스에 참여했다. 사실 나는 특별한 전략 같은 것 없이 구령에 맞춰 그저 팔이 부서져라 열심이 노를 저었는데, 레이스마다 우리 팀이 종종 1-2등을 하더니 약 20개의 팀 가운데 아마추어 부문 최종 우승(1. Platz)을 하였다!
다시 WhatsApp 알람이 울린다. 누구는 허리를 다쳐 올해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격려를 받고, 누구는 둘째를 임신하여 축하를 받는다. 하지만 작년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올해도 다시 참여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올해에는 올해에 빠진 취미활동이 있었다. (요즘엔 Bouldering/Climbing을 재밌게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난 새로운 게 좋았고, 무려 1등까지 해봤으니 미련도 없고 즐거운 기억만 남았다. 그렇게 나는 올해 참여하지 않게 되었지만, 올해도 우리 팀 좋은 결과를 내길! Viel Erfo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