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시마가 미츠시마 했다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들을 찾아보는 중, 약간 망설이며 밀어두었던 작품. 일단 너무 슬퍼 보여서 보는 게 힘들까 봐 시작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내가 너무 지칠 때 시작했다가 3일 만에 다 보았다. (육퇴 후 달림) 의외로 힘든 시기에 보기 좋은 작품 같다.
방송 기간: 2013년 7월 3일 ~ 2013년 9월 11일 / 11부작
각본: 사카모토 유지
감독: 미즈타 노부오, 아이자와 준
출연: 미치시마 히카리, 다나카 유코, 오구리 슌, 다니무라 미츠키, 니카이도 후미, 미우라 타카히로우스다 아사미, 타카하시 잇세이, 스즈키 리오, 타카하시 라이, 코바야시 카오루 外
스트리밍: 넷플릭스 (2024 2월 기준)
일본 아역들은 유난히 사랑스럽고 귀여운 연기를 정말 잘한다. 한국 작품들에서는 아이가 너무 아이답지 않아서 가끔 몰입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 아역들의 연기는 항상 감탄스럽고 연기 연출이 자체도 뛰어나다고 느껴진다. 엄청 훈련된 아이들이겠지 싶고, 언어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두 아이가 극의 중요한 등장인물이라 거의 모든씬에서 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데 극의 몰입에 방해는커녕 함께 끌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아이들과 촬영하기 가장 힘들다고들 하던데 감독과 스태프들의 노고가 너무 느껴짐 ㅎㅎ 리스펙! 편의상 주요 장면에서 아역 등장을 최소화하지도 않고 계속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육아는 현실이여)
그리고 리쿠가 정말 사랑스럽다. 초반에 아가였고 중간에 조금 성장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둘째는 역시 그냥 늘 아가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첫째인 노조미는 계속 어른스러워야 하고... 그래서 짠함.
초반에 엄마의 부재로 노조미가 혹시 비뚤어질까 걱정스러웠던 시점이 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정말 이런 아이가 있을까?? 진짜 엄마 코하루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조숙한 노조미, 거의 판타지급 ㅋㅋ
아오야기 코하루 역
미츠시마의 최신작들을 먼저 접한 후 보게 된 작품이라서 아 이 배우는 이미 10여 년 전에 이런 연기를 했고, 그냥 완성형 배우구나 싶었다. 연기력뿐만 아니라 코하루 그 자체인듯한 가녀린 외모와 사연 많아 보이는 눈빛,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 같은 것이 배우 자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너무 근사한 배우다. 근 10년간 본 일본 여배우 중 탑오브탑인 듯. (콰르텟의 스즈메 또한 비슷한 사연 있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코하루와는 너무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 또한 다시 한번 놀랍다.) 이 배우는 늘 미츠시마 그 자체이면서도 매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도 하는, 아무튼 너무 매력적인 소중한 배우다.
아오야기 신 역
강인하게 살아가는 코하루만큼이나 이 드라마를 슬프게 하는 중요한 인물은 바로, 남편 신! 회상 씬에 잠깐씩 등장하지만 정말이지 너무 존경스러운 성품 (그리고 훈훈함)의 그이기에, 현재 코하루와 가족의 상황의 안타까움이 더 극대화된 것 같다. 반가운 오구리 슌 얼굴도, 서른 즈음의 그의 연기도 참 좋았다. 선하고 인간적인데 멋있기도 한 약간 판타지 같은 이 가정의 기둥 같은 존재. 그리고 그런 그를 여전히 사랑하며 기억하는 코하루의 단단함도 와닿았다. 아기 엄마로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고 많은 부분 배우고 닮고 싶은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1-2화는 정말 너무너무 슬픈데... 슬픔이 막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열심히 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코하루가 아침마다 아슬아슬한 계단으로 유모차를 들고 서둘러 내려올 때마다, 두 아이와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 한지. 그리고 왜 이리 전차 길을 많이 지나가야 하는지 ㅠㅠ 그 긴장감 있는 연출이 어떤 생명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 살아있구나 이렇게 하루를 살아내는구나' 하는 탄성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다.
점점 지쳐가고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는 와중에 일어난 사고. 유모차가 굴러 떨어진 후 무사한 리쿠를 보고 코하루가 주저앉아 우는 장면에서는 정말 함께 펑펑 울었다. 아 정말 누군가 좀 도와주세요.... ㅜㅜ 초반부 거의 모든 장면이 주인공들에게 깊이 공감하게 만들었다. 슬프고 애틋한 감정을 너무 잘 끌어내 주었다.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보이는데, 동시에 남편 '아오야기 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며 매우 불편한 마음도 더해진다. ㅠㅠ 안 그래도 슬픈데 왜 그렇게 억울한 사고를... 동생 시오리와의 사연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괴롭다. 일본에서는 가능한 일일까... 아무튼 정서적으로 좀 낯선 이런 소재가 들어가 있어서 마냥 서정적이고 감성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서늘함이 담겨있다. 역시나 서스펜스 없으면 사카모토 유지 작이 아니겠지.
우에스기 시오리 역
니카이도 후미 배우는 이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연기력이 범상치 않다. 초중반까지 정말 발암 캐릭터였던 시오리(아 정말 너무 미움 ㅠㅠ)의 어둡지만 연약 함하고 또 가엽게도 느껴지는 그 분위기를 너무 잘 표현했다. 여러 감정이 들게 하는 좀 어려운 캐릭터였는데 다 보고 난 뒤, 이 배우가 궁금해졌다. (요즘 채종협과의 로맨스물로 인기몰이 중이라고)
사와무라 유고 역
번외로 다카하시 잇세이를 이야기하자면, 사실 이 배우에 관심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드라마 <나기의 휴식>에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상당한 비호감이었다. 이후로도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는 그를 보면서도 좀처럼 관심이 가지 않던 중, 코미디 드라마 <민왕>에서 드디어 인생캐를 만난 것 같았다. 단 1회 만에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림 ㅋㅋㅋ '그동안 몰라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그의 필모를 찾아보고 있다. (그런데 진짜 다작 배우라는, 너무 감사함) 10여 년 전, 이 작품에서만 해도 조연 중에서도 비중이 크지 않았던 그를 보며 그 세월 동안 차근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하는 존경심도 올라왔다. 비중에 비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 사람이 더 중대한 어떤 역할을 할까 기대하게 되는 부작용이 좀...ㅋㅋㅋ 코하루에게 병을 알려주는 장면, 퇴근하다 말고 성심성의껏 투병 의지를 독려해 주는 장면에서 그의 눈빛이 참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종화에서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쾌재를 부르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힘들었던 코하루에게 비현실적일 만큼 너무 좋은 의사를 만난 것이 참 다행스럽고 위로가 되었다. 찰떡 캐스팅.
주변 인물들이 단순하지 않고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져서 좋았다. 그리고 모두 어떤 연약함은 있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한 성정이 있다. 코하루의 친구도, 의사 선생님들도, 담당공무원도, 그리고 코하루의 가족들 모두.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있을 때 안도하고 흐뭇하게 웃게 됨 ㅜㅜ 행복하렴 아가들아!)
한 10화 정도로 알차게 끝내도 좋았을 것 같고, 아니면 좀 더 많은 회차로 엄마, 시오리와의 화해 모먼트가 좀 더 극적이거나 혹은 좀 더 설명적이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일드 특유의 약간 연설적인 장면들, 교훈적인 말을 기나긴 독백처럼 처리하는 등의 후반부 연출은 굳이 찾자면 아쉬웠던 부분. 하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우먼은 너무나 명작이라는 것!! 강추 강추!!
너무 슬플까 봐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시작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왠지 인생에 대한 투지와 인간애가 솟아오르는 작품이다. 스토리 면에서도 사카모토 유지 각본답게 한번 시작하면 계속 보게 되는 힘이 있다. (일드 안 좋아하는 남편도 이건 같이 울면서 정주행 함)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