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낮추세요
결혼을 늦은 나이까지 하지 않았다고 하면 으레 듣는 말이 있다.
오늘은 귀에 피나는 그 말에 대해
조목조목 하나하나 세세하게.
곧 40살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싱글 여자 직장인으로서 생각을 적어보겠다.
"연애 왜 안해? 눈이 너무 높은거 아니야?
너, 눈 높지? 눈 좀 낮춰~"
필자는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너무 좋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람은 내 친구, 지인으로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판명났기 때문이다.
필자라면, 내가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눈을 낮추라는 말은 상대방을 보는 관점, 가치관, 특징 중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이건 다른 이슈가 아니다. 결혼이다. 함께 평생 같이 인생을 노년까지 보낼 '라이프 파트너'를 선택해야 하는데, 감히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적당히 나를 안다고 착각 및 어림짐작하고 나를 위해서 한다는 말이 고작 이런걸까? 사람마다 중요한 가치과 기준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외모'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눈을 낮추고 적당히 타협하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불행을 빌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으면 조용히 마음 속으로 손절하고 다시는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 때가 있다. 자기 자신을 내내 모르고 살다가, 40살, 50살 언저리에 자신에 대해 더 배우고 알게되어서 그떄 가치관과 취향이 생기고,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인생을 사는 속도도, 배움의 속도가 다르다. 가치관이 형성되고 사람을 볼 줄 아는 눈도 저마다 다른 나이에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특히 대한민국) 각자의 때, 각자의 시즌을 존중하지 않는걸까? 아무리 peer pressure가 강한 나라라도, 우르르르-하고 어떤 특정 나이대에 꼭 결혼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물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것이라면 -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출산을 하고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기 때문에 빠른 선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조차 늦게 깨달을 수 있다. 각자 사는 삶의 속도가 다르기 떄문이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누군가와 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 아직 내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내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왜 사람을 만날 때 눈을 낮추라는 소리를 하는걸까? 그래, 설령 내가 나 자신을 잘 알더라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눈을 낮춰서 결혼하면. 그게 과연 행복한 여생이 될까? 두고두고 '내가 그때 괜히 타협했구나-'하고 후회할 것이다.
왜, 회사도 뭔가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적당히 타협해서 취직하면 계속해서 이직할 궁리를 하는 것처럼,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의 변곡점이 될지도 모르는, 그리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결정 중 하나를 그렇게 눈을 낮춰서 하는게 맞는가? 그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가? 미안하지만 눈 낮춰서 결혼하라는 것은 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한다. 자신만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 없이, 친구라는 이름의 지인도 한 번 자신처럼 눈 낮춰서 결혼해서 지옥으로 같이 왔으면 하는, 그야말로 저질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인생 최대 업적은 결혼이다.)
눈 낮춰서 결혼할 이유? 없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갖고 있는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 (나의 경우에는 유머감각과, 티키타카가 되는 대화, 그리고 서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까지 포기하면서 결혼을 해야할까? 나의 최후의 가치관까지 타협하면서 결혼을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왜 나까지 니가 있는 지옥불에 떨어지게 하려는걸까? 너나 불행하게 살아라.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그리고 고작 짧은 결혼생활 해놓고 다 아는 것처럼 미혼(싱글)들에게 이런 저런 훈수 두는것도 그만했으면 한다. 물론 당신이 겪은 그 롤러코스터같은 결혼생활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정말 깊을수 있지만, 너는 그 사람을 만나 그 결혼생활을 한 것이고 - 난 당신의 남편을 만난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이야기다. 내 결혼 상대는 내가 선택할 것이고, 눈을 낮춰가면서 굳이 선택하진 않을것이다. 나의 가치관에 반하면 나는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 의향도 있다. 명심해라. 모든 결혼생활이 당신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 이상형을 간소화 하라구.
내 수준이 이렇게 높으니까, 당연히 이정도는 만나야 하는거 아냐?
이런 다양한 기준을 좀 내려놓으라고.
나이든 여자들이랑 다르게,
남자들은 나이들어도 장가 잘가잖아.
이상형이 단순하니까 그래, 어리고 예쁘면 되니까.
첫 번째, 남자들은 이 말을 보고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지도 않은가?
1) '남자 = 어리고 이쁜 여자면 다 돼요'라고 퉁쳐서 동물같은 존재로 표현했다. 남자는 대화를 안하나? 남자는 생각이 없나? 남자는 여자를 무조건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냥 어리고 이쁜 애면, 대화 안되어도 만사 오케이로 결혼하나? 나같으면 이 말 너무 기분나쁠 것이다.
2) 여자의 최고의 상태 = 어리고 이쁘다라는 전제.
여자는 무슨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말이다. 저 이야기를 사회활동을 하는 전문직 기혼 여성을 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같은 여자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저 전문직의 사람이 여성 인권을 하등하게 내려 깠는지, 본인은 알지 못할 것이다. 진짜 쪽팔리다. 당신이 합리적인척, 지혜로운척 한 말로 좋아요 400개와 10만 조회수를 얻었을지는 몰라도, 여성 인권은 5년 더 후퇴했다.
3) 내 수준이 이렇게 높으니까 당연히 그에 걸맞는 사람, 다양한 기준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게 맞다. 못만나면 그냥 혼자 사는 거다. 끼리끼리라고, 내가 왜 나의 리그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맞춰야 할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결혼을 해야 할까? 결혼하는게 그렇게 유세인가?
나 스스로를 알고 나의 가치관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한다.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없다면, 그리고 만날 기회도 인생에 없다면 그냥 혼자 살면 된다.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타협해서 오직 '결혼'을 위해 시작한 결혼생활은 남은 여생을 시궁창으로 넣는 것이다. 생각좀 하고 말해라.
p.s 대충 타협해서 결혼하라는 말, 왜 이혼변호사가 하는걸까요? 수임을 위한 큰 그림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