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배우는 판단의 무서움
똑. 똑.
결재받으러 왔습니다.
회사 경영자로 일하면서 결재를 앞둔 상황에서는 늘 냉정해지려고 한다. 결재를 올리는 입장에서야 어떻게 하던 온갖 방법으로 설득을 하려고 들어왔으리라 심지어 그날 사장 컨디션이 좋은지 어떤지도 살펴보면서 문틈으로 작전을 짜고 있으니 앉아있는 나로서도 대비를 해야 한다. 결재받는 사람이야 이 순간만 넘기면 되는 것이고 결재자는 이 순간부터 책임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먼저 얼굴을 한번 쓱 보면 여유와 긴장 두 가지 중 하나가 선택이 된다. 그리고는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 툭 던져 놓고는 무심히 결재 내용만 살펴보고 있으면 그 사이 결재를 올린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여유와 당당함이 넘쳐흐르며 사장님께서 어떠한 질문이라도 하시고 판단해 달라는 무언의 자신감.
둘째, 자기 스스로 이미 걱정되는 판단 속에서 심지어 묻지도 않은 설명까지 다 해놓고 나가서는 사장님이 이 런것까지 다 알고 계시더라며 호들갑을 떠는 긴장파.
결국 결재는 눈치 싸움이다.
그만큼 판단에는 정답이 없다 단지 그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갈등의 어려움만 있다. 때론 결재권자가 그 내용을 잘 알아서 반려도 하겠지만 몰라서 반려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후자일 것이다. 그래서 결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자신 있게 당당하게 준비하여 대처해 주는 것이 결국 결재권자를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두둑한 배짱으로 자신 있게 설득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 이겠는가, 판단에 대한 심리와 그런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눈치싸움에서 늘 승자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판단과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하나님은 홀로인 아담에게 자유를 주시지만, 분명 제한된, 규정된 자유를 주셨다. 동산의 모든 과일을 너의 자유로 먹어도 되지만,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말하셨다. 즉, 혼자의 자유와 즐김은 늘 한계를 정하고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자유가 사용되는 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행동이나 생각의 제약 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
-. 출입의 자유, 영혼의 자유, 판단의 자유 등
2. 나쁜 것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 무지로의 자유, 공포로의 자유, 사람으로의 자유 등
3. 개인의 권리로서의 자유
-. 법에 명시한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지금 나는 회사 경영자로서 판단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단호하게 하려고 한다. 이렇게 된 것은 '자유가 사용되는 용법' 중 첫 번째인 행동이나 생각의 제약 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 (출입의 자유, 영혼의 자유, 판단의 자유 등) 이런 자유를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 맘껏 누려 보며 깨닫게 된 덕분이다. 그래서 홀로 있는 시기에 스스로 체험적으로 많이 깨달아야 회사던 가정이던 큰 일을 할 때 판단하는 자유의 무서움에 신중해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어쩌다 혼자 지내는 우리의 모습들은 어떤가, 대부분 침대 위에서 아무렇게 입고 벌렁 누워서 책을 보다가 늦잠을 잔다. 아 얼마만의 해방감이며 진정 행복인가 아드레날린이 내적으로 폭발하며 흥분된 가슴은 지금도 충분히 게으른데 더 게으르고 싶다고 ‘하이 빅스비’만 외치고 방바닥에는 용맹스러운 전사들과 같이 투쟁을 하며 쓰러진 배달의 잔해물들이 뒹굴고 있어도 마냥 자랑스럽게 당당하다. 하지만 다음날 널브러진 방을 보고는 기겁한다. 어디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해야만 한다는 것은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판단도 그렇다 홀로 지내는 사람은 선택하는 모든 자유를 맘껏 누려본다. 혼자 있으면 결정장애란 없다. 판단은 내가 스스로 하니까 선택하기도 쉽고 늘 잘 된 선택만 남게 된다. 잘못된 선택은 후회하기 전에 마음에서 없애 버리기 때문에 바로 잊힌다. 비교대상도 없으니 모든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가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며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본인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무엇을 먹을지, 계속되는 사람과 일과의 관계 속에 이해와 책임이 따르는 판단의 결과들이 엄하게 기다리고 있어 마냥 원하는 만큼의 지유를 갈구할 수 없게 된다.
판단의 체험은 혼자 있을 때가 기회다
혼자 생활을 하다 보면 매사를 판단하는 사람과 판단을 요청하는 사람의 두 역할을 나누어하게 된다. 그래서 그 서로의 심리상태를 알게 되는 것이고 이런 체험은 될수록 많이 해보는 것이 좋다.
나는 가끔 우쭐하여 겁 없는 행동도 했다. IPTV나 넷플렉스를 마음대로 신청하고는 보지도 않고 심지어 나중에는 신청한 것조차 잊어버리고 매달 꼬박꼬박 가입비만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또 게슴츠레한 눈으로 TV에 정신을 팔다 몸에 좋다는 건강 약 광고에 솔깃하여 구입하고 또 생선을 잘 먹지도 못하면서 맛있다고, 하나를 더 준다고 또 주문을 하고, 쌓여가는 택배 박스에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만 계속 늘어 갔다.
판단하며 선택할 때와 후회의 입장이 계속 번갈아 반복되면 점점 쌓인 경험이 선택의 신중함을 일깨워 준다. 즉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면서 이런 일이라면 어떤 포인트 때문에 후회하게 되는지를 스스로 깨우치며 이해하게 해 준다. 이런 심리 상태는 회사에서 결재자와 결재받는 입장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똑. 똑.
결재받으러 왔습니다.
힐끗 보니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여유가 있다.
요즈음 회사 사정이 안 좋다던데 돈을 쓰자고 하면 화내실 텐데 하지만 지금이 꼭 필요한 시점이고 지금 안 하면 더 큰 피해가 생겨 돈을 더 지불하게 되더라. 이렇게 상황의 이해가 끝난 상태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자신감과 당당한 설득에 어떻게 사장이 결재를 안 해 줄 수 있겠는가, 휘갈겨 내리는 멋진 사장의 사인만큼 눈치 싸움의 승자는 더욱 의젓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