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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Jul 24. 2023

이 카페가 좋은 이유

촌놈들의 비밀이 생각났다

빗소리가 리듬을 탄다.

양철 물통에 길게 한번 짧게 여러 번 또 모아서 크게 한 번 그리고 사이사이 뜬금없이 유리창에도 매달려 화음을 넣듯 잔잔히 두드린다. 디저트가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아내와 함께 꼬불꼬불 어렵게 찾아 들어온 곳인데 열어젖힌 바깥이 요란하기만 하다.


달달한 케이크를 한입 머금고 멍하게 바깥을 보고 있으니 글감이고 뭐고 다 도망가 버리고는 뜬금없이 어디서 왔는지 두근거리는 가슴이 계속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한다.



어릴 적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시골 우리 동네에 빨간 벽돌 목욕탕이 하나 생겼다. 장마당을 가려면 그 집 앞을 지나야 해서 자주 쳐다보지만 그 안에는 한 번도 들가어가 보지를 못해 궁금했다.


그 집에는 덩치는 크지만 아이들에 놀림을 받는 그런 형아가 있어 목욕탕 안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웃으며 허리춤을 부여잡고 혼자  거리를 뛰어다니기가 바빴다.


그러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자 집안의 빨간 목욕통이 비좁아 진짜 목욕탕에 갈 기회가 생겼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처음 나선 목욕탕은 빨간 통에 비하면 운동장처럼 넓었고 물은 너무 뜨거워서 눈물이 날지경이었다. 돈 내고 들어왔다고 등껍질이 벗겨지도록 때 밀림을 당하고 풀려나니 이번에는 그 웃음 많은 형아가 우리를 보더니 자랑스러운 듯 풍덩거리며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참견하는 통에 아무 구경도 못하고 나왔다.


그때 아이들끼리 소문에 화장실이 목욕탕 안에 있어서 그리로 통해 뜨거운 물이 들어간다고 했다.


'아니 그 뜨겁던 물이 화장실을 통해 들어간다고?' 정말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신체검사 전날 친구들끼리 목욕탕에 갈 기회가 생겼다. 한창 바쁜 부모들의 허락을 받은 우리 세명은 장난을 치며 호기롭게 들어가자 탕에는 과묵하신 할아버지 두 분만 계셨다. 때 밀릴 염려도 없고 마침 그 집 형아도 없으니 그야말로 우리 세상이었다.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물도 퍼붓다가 갑자기


'우리 이 집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 나오는 거 보러 가자'

'아 맞다 가보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서로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여니 위에 줄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건가? 당겨봐 얼른'


서로 밀당을 하는 틈에 뒤에 있던 놈이 힘껏 잡아당겼다 쏴아 하는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나더니


'아흠 아~아아~'


할아버지들의 큰소리들이 탕 안에서 울렸다

큰일 났다.


놀란 우리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고 우리 촌놈들은 한동안 창피했던 그 비밀을 알게 될 때까지 목욕탕을 가질 못했다.




지금 이 빗소리에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피식피식 웃으며 오랜만에 보는 시골스런 양철통 물받이가 정겹게 느껴져 커피도 마시지 않고 계속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씨끄럽다고, 잘못 왔다고 투덜대는 아내는 나를 쳐다보며 자꾸 왜 그러냐고 다그 치지만


어찌 나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빗소리가 좋다. 아 ~아 이 카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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