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벽에 기대어 점점 길게 드러눕는 햇살이 아직 단지 내 소공원에 까지 내려오지 못해 손을 뻗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서재방 창문으로 넋 놓고 내려다보고 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들어온 터라 기분까지 상쾌한 지금이지만 왠지 모를 초조함이 햇살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지난주 이사를 마쳤다. 새집은 아주 만족스럽다. 주변 카페거리도 그렇고 상가들도 산책길도 마음에 든다 뿐만 아니라 둘이 살기에는 넉넉한 집안구조에다 어느 날 손님이 갑자기 찾아온다 해도 당황하지 않을 만큼의 공간의 여유도 가졌다. 그것은 한 달여 동안 딱지를 붙여가며 묵혀있는 물건을 과감하게 정리 폐기한 덕분이다. 거기에다 새집 인테리어까지 손을 봤으니 만족에 겨워 괜스레 오르락내리락 산보의 발품을 팔고 있다.
하지만 제일 맘에 드는 것은 인테리어 면담을 하면서 제일 끝방을 서재방이라 명명하였더니 정말 나의 서재방이 된 것이다. 방 한가운데 책상이 놓이고 큼지막한 모니터와 노트북 거기에 아이패드까지 마치 재택근무 하는 개발자의 모습니다. 더욱이 창밖으로 내려다보는소공원의 아름다움과 이를 둘러싼 듬직한 아파트들이 정겹게 서있어 안정감과 편안함에 완벽한 서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내가 바라던 모습 대로 되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안방에 비집고 들어가 작은 책상 하나 두고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글도 써왔다. 그러면서 늘 나만의 서재를 꿈꾸었다. 만일 그런 서재가 생긴다면 글도 매일 쓰고 책도 많이 읽으며 창작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어 가겠다고 핑계 아닌 변명으로 글타령을 해왔다. 하지만 막상 떡하니 멋진 서재방을 챙겨 받으니 할 말이 없어진다. 뭐라도 글을 써야 하겠는데, 매일매일 글쓰기로 했는데, 책도 많이 읽는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 너무 커 보여 초조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폴 브르제 '한낮의 악마' 중에서
유영만 교수는 역설적으로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기 어렵다 그래서 거꾸로 사는 대로 생각하자고 하신다. 동의한다. 생각보다 행동을 우선하면 자연히 생각이 바뀌는 것이니 생각 말고 행동을 먼저 하자 그러면 된다.
갑자기 위안이 된다.
사실 어제도 특별히 한 것 없지만 바삐 하루가 갔다. 그래서 한 것에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의 삶의 큰 목적과 방향이 일정하다면 그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 과정이야 말로 삶의 생동력을 불러일으키고 퍼즐을 맞춰가듯 시나브로 하나씩 쌓여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금 과정의 목표는 ‘주체적 자기 결정권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 배양’에 방점이 찍혀있다. 가장 좋아하는 방법인 글쓰기를 통해서 꾸준히 다가가는 그 과정을 즐기며 실행하는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 살고자 한다. 4년째 매일 Tistory에 올리고 있는 '롱혼 원명호'의 일기가 차곡차곡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허튼소리는 아니라 다행이다.
아마 새집으로 온 것도 서재방을 선물 받은 것도 차근차근 그 과정을 더 꾸준히 하라는 이유가 아닐까 변명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