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8월 중순이 되면 동해안에 찬물이 감돌아 해수욕장도 문을 닫고 으레 껏 가을을 준비하는 감성으로 돌아선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올해는 8월 중순이 넘어가는데도 밤을 꼭 붙들고 있는 게으른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오늘도 뻐근한 몸을 새벽운동으로 달래고는 아내와 차 한잔 하며 TV를 보고 있다. (참고로 우리는 정규방송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시청한다) 마침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나온다. 너무 씨끄럽게 웃고 떠드는 정신없는 방송은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라 건성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귓속에 뻑 하고 들어가는 팩폭이 꽂혔다.
차승원 배우가 나와 한참 이야기 하더니 갑자기 유재석 씨가 어떻게 유해진 씨와 오래가는 절친이되었나 하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대단했다.
'사실 유해진과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뭘 해도 풀리지 않는 사이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감각적으로 마지노선을 절대로 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친해질수록 상대의 영역의식에 둔감해지고, 그래서 여러 가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허물없는 사이니 괞챦겠지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무심코 한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어쩌면 상대방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친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청소년기에는 친구와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며 미주알고주알 네 것 내 것 없이 같은 길을 걸어야 절친이라 생각했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대체적으로 질풍노도의 시대에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존심이 지키는 자신의 영역이 분명 있는데 그 선을 내주는 인내는 점점 벽을 치게 된다. 사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 친구가 지금까지 절친으로 유지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동창으로 아니면 동향으로 그냥 추억을 간직한 귀한 친구로 유지될 뿐 마음까지 건네는 절친의 영역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만다. 어디 그뿐인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회사동료 그리고 이웃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결국 사소한 선 넘는 행동과 말로써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아픔이 되어 결국 멀어지게 된다. 그렇지 않던가?
나도 보면 지금까지 절친으로 유지하는 사람은 어쩌다 카톡을 주고받고 있으며 가끔 만나 소식을 나누는 정도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멀찍이 지켜보며 그의 행동과 말에 동의하고 같은 감정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깊이 간섭하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직접적인 궁금을 갖지도 않는 서로의 영역을 보호하며 유지해 나가는 좋은 사람들. 그 외는 팔로우/팔로워로서 맘껏 교류하며 관심을 나누고 산다.
그렇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다닌다고, 돈을 잘 번다고, 해외를 많이 다녔다고 절친을 가르쳐 든다면 서서히 멀어지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해도 절대 그렇지 않은 절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시험해 봐라 그럼 갑자기 그 친구 일상에 바쁜 일 많이 생겨 만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환갑이 넘어가서야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아내와 자식에게도 그렇다. 이제는동창이나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나도 일정 선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