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글쓰기 다시 살리기
글을 쓰지 않은지 300일이 넘었다고, 브런치에서 알림을 받은 것이 벌써, 오래전이다. 되짚어보니, 2021년 12월의 언저리에 글을 쓴 것이, 마지막이다. 오랜 필리핀 생활 사이에 끼어있던 일 년의 한국(타국) 생활을 계속하던 중에, 더 이상은 글을 쓰기 싫었더랬다.
지금은 벌써 필리핀에 돌아와서, 재 적응도 하기 전에, 십 년을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왔다. 현재까지도, 새 보금자리에서 좌충우돌하는 중이다. 원래는 내년에나 이사를 올 계획이었었는데…(쩜쩜쩜)
인생은 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벌써 ‘무리하게’ 이 동네에 와서, ‘무리하게’ 삶을 계속하고 있다. 삶이란 것이 개개인의 사정을 봐주던가? 전혀, 아니다. 나의 특이한 이력에 귀 기울여 주는 이는 하나도 없다. 나라는 개체는 나에게만 특별할 뿐, 남에겐 지옥이 되는 타인일 뿐이다.
얄미울 정도로, 내 아들 은찬이는, 적응 천재다. 이것이, 감사한 일이라면 한없이 감사한 일이겠지만, (솔직하게) 부럽다. 나름 적응을 잘하는 인간이지만, 서른 하나까지 삶을 한국에서 보낸 한국인이기에, 여전한 한국인으로서의 고유성을 가진 이민자로서, 이곳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그에겐 모든 것이 쉬워 보여서. 그는 여전히 행복해 보여서…
이곳이 불행하다면, 나의 불행은 어디서 오는가? 나의 불행은, 나의 불행한 기억으로부터 온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십 년 동안 사람들로부터 불행한 경험을 한 나는, 그 불행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알기에 의식적으로 행복하게 해석하려고 노력 중이다. 너의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위보다는 아래를 보려고 노력 중이다.
해석을 하기 위해, 나에겐 글이 필요하다. 철저하게 필요성에 의해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해석에 능통한 적응 천재가 되어보련다. 그런 척하며 살면, 언젠간 가면이 내 진짜 얼굴이 되어 주겠지. 삼백 몇십 일 만에 용기 내어 오늘은 ‘발행’을 눌러보련다. 그저 나를 위해. 나의 삶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