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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Mar 09. 2023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우려되는 이유

결국 신뢰의 문제

한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유난히 긴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OECD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는 연간 1,915시간을 근무하며, 비교국가 38개국 중 5위에 올랐다(2021년 기준). 1~4위는 대륙 건너편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다. 


   반면 GDP를 노동시간으로 나눈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하위권에 있다. 가장 많이 일하는데 효율은 가장 떨어지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는 우리나라 뒤에 줄 서 있다. 연구 결과를 제시하지 않아도 근로 시간이 생산성과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OECD 주요국 노동시간, 노컷뉴스


OECD 주요국 노동생산성, 중앙일보


   윤석열 정부에서 출범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도 근로 시간 단축과 유연성 확대를 제안했다. 

공장형 노동과정을 전제로 한 경직된 노동시간이 기술혁신과 디지털혁명 등 변화된 산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지당한 이유와 마땅한 방향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은 오히려 비인간적인 장기 노동을 합법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발표에 따르면 개편안은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따라 일이 몰리는 주에는 노동시간이 많아지고(최대 69시간), 일이 적은 주에는 반대로 줄어들 수 있으며, 분기 이상의 경우 연장근로 한도를 줄이도록 해 총 노동시간은 줄어든다고 안내했다. 연장 노동시간을 적립해 연차와 같이 사용함으로 한 달의 장기휴가도 가능하다.     


   개편안의 문구만 보면 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유연하게 하고, 총 노동시간도 감축하고, 적립한 휴가를 통해 ‘한달살이’도 가능한 것으로 보여 긍정적인 변화로 느껴진다. 실제로 정부도 이 점을 들어 홍보에 힘쓰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노사관계의 현실을 보면 개편안의 기대가 실없는 이상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연합뉴스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지 몇 년이 지났다. 

그러나 고약한 기업윤리가 허술한 법과 결합해 무력화되고 있다. 52시간을 넘긴 노동을 할 수밖에 없으나, 임금은 52시간까지만 산정한다든지, 포괄임금제를 불법적으로 적용하는 등이다. 포괄임금제는 시간 단위로 임금을 산정하기 힘든 직종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사무직이나 생산직도 추가근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남용되고 있다. 불법이지만 처벌이 매우 약하고 단속도 소극적이다.     


   명목이나마 불법이었던 주 52시간을 넘긴 노동이 합법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기업이 69시간에 달하는 노동에 적법한 보상을 제공할 지부터, 장시간 노동 이후 줄어들어야 하는 노동시간을 지켜줄지도 의문이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조차 퇴사를 종용하고 있는데, 하물며 초과근로 적립을 통한 장기휴가를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노조와 근로법이 있으나,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매우 낮고(12.5%) 그마저도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이다. 중소기업에서는 거의 전무하다. 근로법 위반에 대한 법적 처벌도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결국 노동자가 기업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노동시간에 대한 자율성이 높아졌을 때 그 자율성이 노동자에게 유익할 것인지,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법이 보호해 줄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사례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주된 여론인듯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낸 환영의 성명이 설득력을 더해준다.     


   노사 간의, 노정 간의 신뢰가 있었다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의 의도가 좋다며 국민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의 착취와 무관심을 통렬히 반성하고 강한 구제책을 마련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고용노동부(2022.12.12.).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권고문 [보도자료]. 

고용노동부(2022.12.21.). 2022년 6월 기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결과. 

OECD (2022), OECD Labour Force Statistics 2021, OECD Publishing, Paris,

OECD (2023), Hours worked (indicator).

OECD (2023), GDP per hour worked (indic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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