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실사영화 인어공주(2023)에 대한 논란이 눈에 띈다. 좀처럼 어긋나는 일이 잘 없는 나의 왓챠피디아(영화 별점 사이트) 예상 평점도 5점 만점에 0.8점으로 나온다.
나는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심히 좋아한다. 소울(2020)과 모아나(2016), 인사이드아웃(2015), 그리고 주먹왕 랄프(2012)는 나의 인생 영화다. 평생 딱 하나의 영화만 볼 수 있다면 이 중에서 고를 것이다.
특히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수자를 조명하고 다양성을 포용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부드러운 방식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소울에서는 무명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와 문제아 영혼인 22를, 모아나는 낯선 폴리네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인사이드 아웃은 슬픔이라는 소외된 감정을 양지로 끌어왔고, 주먹왕 랄프 또한 악당 역할의 외로움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서도 선과 악을 가르는 소리를 내지르지 않고, 오직 따뜻함으로 모두의 마음을 녹인다.
나는 이들이 21세기의 탈무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영화를 만드는 ‘월트 디즈니 픽처스’는 그 사옥의 위치처럼 도로 하나를 마주 보고 정반대의 길을 향하는듯하다. 지향하는 바는 같을지 몰라도, 그 방식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X 만큼 다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보편적 진리’, 즉 모두가 인정하는 개념이 어떻게 확산하는지를 논했는데, 그 생성 단계는 지식적인 ‘발견’과 윤리적인 ‘충실’이다. 예컨대, 야만과 폭력의 시대에 인권이라는 개념을 인지했다면, 그 발견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개념을 모두가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충실, 곧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윤리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바디우는 진리를 발견했음에도 충실을 저버리는 일을 배신(betrayal)이자 악(evil)이라고 표현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이 ‘충실’의 과정을 말 그대로 충실히 따르고 있는 듯하다. 포용이라는 진리를 포용의 방식으로, 위로라는 진리를 위로의 방식으로 꾸준히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즈니 픽처스는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다양성이라는 진리를 인식했으나,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실천의 과정을 저버렸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세상을 부드럽게 설득하려는 어떤 노력도 포기한 채, 그저 만들고 보여준 후 설득되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한다. 이런 면에서 인어공주의 흑인 캐스팅 논란은 디즈니 픽처스가 자초한 것이다.
만약 인어공주가 흑인이라면 어땠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면 기존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상상을 통해 부드러운 설득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 상상은 아마도 위와 같은 질문을 따라갔을 테다. 그러나 픽처스는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일에서 ‘충실’을 포기했다. 스토리와 배경과 다른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딱 ‘주인공의 인종’만 교체한 뒤, ‘발견’의 단계에 멈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여기 진리가 있으니 당장 따르라고, 따르지 않는 당신들은 단지 미개한 사람이라고.
내 생각에 흑인 캐스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편협한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본다. - 롭 마샬, 인어공주(2023)의 감독
나는 도무지 이 게으름에 설득당할 도리가 없다. 우리는 선한 지식을 선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은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