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나의 휴대폰 정리 4단계
몇 년 전 인터넷 어느 곳에서 이런 글을 봤었다. '연말에는 한 해를 정리하며 주소록을 보고 정리한다'라는 글을. 그 글에 마음이 동해 그 해부터 나도 12월 31일에는 꼭 나만의 의식을 취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간단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새해를 새로이 맞이하는 팁.
1단계. 주소록 삭제
일단 연락처 주소록에 들어가서 필요 없는 이름을 ㄱ부터 z까지 쭉 훑는다. 생각보다 필요 없는 일회성 연락처가 덕지덕지 붙어있기도 하고, 생각보다 내가 연락이 너무 뜸했구나 하고 마음이 아련해지는 이름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근엄한 마음으로 삭제를 시작한다.
한 때는 뭐든 버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연락할 일이 있겠지,,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하며 쌓였던 나의 주소록들. 하지만 휴대폰을 몇 번 잃어버리며 강제로 주소록을 정리당하고 그다음을 살아보니 '언젠가는'이라는 기대 하나로 쟁이고 살기에는, 나의 냉장고는 큰 용량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제로 주소록을 삭제당해서 심지어 가족 번호까지 생각이 안 나 곤란하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나'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고, 무리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은 주소록을 잃어버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렇게 끊어질 연이면 진작에 끊어졌어야 한다. 그 이후 이제는 내가 연말이 되면 '주도적으로' 내가 먼저 삭제 버튼을 누르는 의식을 집행한다.
2020년. 나는 주소록을 살펴보며 올해로 연락이 끝날 아이 관련, 학원 관련, 업체 관련 사람들을 지웠고, 부서가 멀어진 직장 관련 사람을 지웠다. 하지만 지우면 영영 연결고리가 끊어질 듯한 오래된 추억 속 지인 일부는 올해도 역시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보고 싶어 지는 소수의 연에게는 연락하기 좋은 연말을 핑계 삼아 따뜻한 커피 쿠폰을 편지랑 보냈다. 내가 '주도적으로' 연락처 주소록을 정리하는 것 만으로 내 인간관계가 깔끔이 정리되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 집중하고 뭐가 중요한지 바로 잡아가는 의식 만으로 '나'의 마음은 꽤 깨끗하고 명료해진다.
2단계. 앱 삭제
그다음으로는 앱을 삭제한다. 살다 보면 자꾸 늘어나는 옷장처럼, 내 휴대폰 역시 언제 설치했는지 모를 별 가지 앱들이 어느새 들어차 있으며 자꾸만 용량이 다 찼다고 앵앵거리던 한 해였다. 올해 나는 무엇을 새로 깔고 무엇을 가장 많이 사용했을까?
작년 말에는 SNS를 다이어트하고 싶어서, 카카오스토리와 네이버 밴드, whats app을 삭제했다. 육아기록을 나누던 카스 삭제가 처음엔 아쉬웠지만, 어느새 남의 일상이 궁금하지도 내 일상을 자랑하지도 않게 되었다. whats app도 해외 인연이 사그라지며 필요가 없어졌다. 올해는 브런치로 넘어오며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은 관심 피드만 알림 설정해서 그것만 본다. 내년에는 더 적어졌으면 좋겠다.
올해는 금융 앱이 늘어났다. 국내외 증권 앱, 은행 앱, 인베스팅 앱. 뭐 대단한 성과는 없지만, 경제와 세상의 거시적인 흐름에 무관심했고 편중됐던 나의 뇌가 말랑해지느라 요즘 들어 꽤 바쁘다. 내년에도 이쪽 분야는 더욱 시간과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 감을 유지하며 내 수입을 지켜가고 싶다.
올해 새로 설치한 유튜브, 챌린저스, 브런치 앱을 보니 내가 한 해 무엇에 힘썼는지 보인다. 유튜브 채널에서 보지 않는 채널을 삭제하고,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새 글 피드 목록을 삭제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 보니 실체가 있는 사람 보다도, 내가 웹 세상을 통해 이해하며 나를 이끌어가던 언택트한 2020년 자체였구나 싶다.
올해 내가 사용기록이 적어 삭제한 앱은 항공, 티켓, 쇼핑몰, 사진 편집 앱이다. 슬프지만 기가 막히게도 세상의 흐름과 내 휴대폰의 흐름은 동기화되고 있다.
3단계. 사진과 영상 삭제
이제 사진과 동영상 다이어트에 들어가 본다. 내 사진첩 유형은 매우 간단하다. 아이. 말. 덕질. 아이 사진을 가족밴드에 다 옮기고, 말 사진 일부는 노트북 폴더로 정리하고, 덕질은 개인 계정에. 플랫폼과 클라우드를 활용해서 혼란한 구슬 들을 각자의 위치에 다들 착착 저장해 넣는다. 워낙 많았어서 시간이 좀 걸리지만, 마치고 나니 이불 빨래한 양 개운하다. 새해 귀한 손님맞이하는데 이 정도 준비는 해야지.
마지막. 스팸 재설정
뭔 놈의 스팸 메시지는 끝도 없이 지치지도 않고 나를 찾아내는지 모르겠다. 온갖 광고가 휴대폰 메세지함과 이메일함에 자꾸만 늘어가 있다. 오늘이 이놈들 잡을 대 박멸의 날이다. 스팸을 재설정하고, 수신 거부하고, 다 지워버린다. 귀찮아서 자꾸 미뤘더니 1년 동안 참 많이도 쌓였다. 묵은 때를 빼듯이 한참을 지우다 문득 보이는, 진짜 메시지와 메일들을 발견하며 무슨 일을 했는지 사회에서의 '나' 자신이 보인다. 그래. 한해 살아내느라 고생했다 애썼다 나야.
하아.
정리 끝!
이제 새해가 다가온다. 이제 나는 성탄절과 한 살 먹음이 마냥 설레던 아이가 아니고, 새해라고 별거 없다는 것을 다 알아버린 어른이다. 어제 이어 오늘처럼, 같은 날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새 달력으로 바뀌고 나이도 한 살 바뀌는 새해의 전 날. 누워서 남의 시상식만 보기엔 뭔가 밋밋하다. 세월의 흐름이 재미없고 뭔가 아쉽기도 하다.
그렇다면 휴대폰을 열어 한 해의 나의 인연과 관심사를 돌아보고 비우고, 군더더기와 때를 제대로 지워가는 거다. 하나하나 지우고 또 지우고 정리하고 또 지우다 보면, 다가오는 새 손님맞이할 예의는 차려진 것 같다. 누가 한 해 동안 어떻게 또 머물다 가실진 모르겠지만 빈 방에 건강히 편하게 즐겁게 야무지게 잘 머물었으면 한다.
12월 31일. 이제 내 폰은 꽤 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