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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Oct 24. 2023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커튼콜

뮤지컬은 공연장에서 음압을 직접 받으며 그 순간의 공기를 오감으로 느끼는 일회성 현장감이 생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며 공연계는 생존을 위해 온라인 생중계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고, 도서 산간에 사는 나에게는 집구석에서도 뮤지컬을 맛볼 수 있는 엄청난 횡재가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나는 생중계 무료공연이 뜨면 아묻따 감사히 시청한다. 얼마전 네이버 생중계로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라는 뮤지컬 공연실황을 보았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극을 볼 땐, 공연 5분 안에 시작하는 첫곡으로 첫인상이 결정된다. 나는 보라색 교복을 입은 주인공들의 밝은 넘버를 듣고, 맹인학교 학생들의 성장 드라마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곡을 보는 내내 반전의 반전에서 육성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집에서 뮤지컬을 보면 내 맘대로 소리를 낼 수 있어서 너무 편하다.)


극이 끝나고 정신이 멍해졌다. 배우들의 맹인 연기와 대립들, 강렬한 넘버와 내용이 머리속에서 마구 뛰어다녔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이 압도적인 느낌은 뭔가 싶어서 검색을 해 보았다.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스페인 극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희곡이 원작이며 무려 1946년에 집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올해 최초로 뮤지컬 형식으로 초연을 올렸다. 정말 K-뮤지컬은 대단하다.


공연 내내 줄곧 두 사상의 대립이 이어진다. '절대자를 신뢰하며 안분지족 하는 유리병 안의 행복한 삶' vs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을 동경하며 현실을 통탄하며 빛을 쫓는 삶'  둘 중 뭐가 답인지 이 극은 답을 안 준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 없이, 내 감상으로는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신과 인간의 대립 같기도, 다수와 소수의 대립 같기도, 권력자와 하층민의 대립 같기도 하다. 그 곳이서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선생님인 도냐가 나는 처음에 신을 묘사한 것 같았고, 기존 사상을 흔드는 전학생 이그나시오가 뱀을 묘사하는 줄 알았다. 해석은 다양한 것 같다. 배우의 노선에 따른 다양한 해석 또한 뮤지컬의 묘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극이 끝난 후의 커튼콜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표정으로 한 명씩 나와서 고통스럽게 인사를 하는데, 그걸 보며 바로 앞에서 손뼉 쳐야 하는 관객의 멘탈도 찢어질 것 같다. 커튼콜의 단조 음악 멜로디가 정말 슬프고 애절해서 그 비통함이 극에 달했다. 찾아보니 '솔베이지의 노래'이고 해석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내용이다.


죽어서라도 빛을 갖게 된다면 죽음을 축하해줘야 하는 건지, 그렇게 죽어버린 사람을 패자라고 생각하며 유리성 안에서 행복하게 살다 죽는 게 맞는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원래 나는 혁명에 열광하는 재질인데, 이 극은 혁명 이전의 근원을 건드린다. 오래간만에 원작을 빌려보고 읽은 후 다시 생각의 늪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전혀 극이 낡게 느껴지지 않고, 이렇게 후세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니 놀랍다. 덕구 한 마리는 오늘 잠 다 잤다. 간절히 직접 보고싶다.


만세! 도서관에 정말 책이 있었다!! 오래되고 깨끗한 책



* 기억에 남는 대사와 장면


- 도냐 페피따, "행복은 포기하는 것 바라지 않는 것"

- 카를로스, "앞을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 죽음을 바라는 거야!“

- 후아나, 착한아이에서 나도 모르게 나온 급발진 버튼

- 이그나시오, ‘사랑해’라는 말에 반응한 너의 외로움


https://twitter.com/newpro_DARK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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