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적어야 할지 망설일 때가 있다. 보통은 마음이 차서 글로 터트리고 싶을 때 글을 썼다. 그런데 꾸준히 쓰기 위한 글쓰기 미션을 하다보니, 마음이 차기 전 어떤 것을 글감으로 쓸지 낚시하는 기분으로 내 마음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된다.
답글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읽자마자 드는 생각을 바로 쓰고 싶다가도, 다시 더 깊게 읽고 생각을 정제해서 써볼까 싶은 마음에 선뜻 글을 못적기도 한다. 문제는 그러다가 첫 생각이 옅어져 버리면서 답글을 더 못적게 된 날도 많다. 그러면 결국 내 생각 또한 어디론가 연기처럼 슬슬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나보다. 흘러가는 단상을 잡고, 더 기억하기 위해서. 왜 우리는 자꾸 회고하고 남기고 싶어할까? 인간의 본능일까? 내가 느낀 생각을 상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고, 내가 느낀 생각이 옳다고, 누군가에게 당신이 맞다고 공감을 받아야 안정이 되는 걸까? 왜 말하고 싶은 사람은 많고, 들어줄 사람은 부족한 걸까? 왜 누구에게 마음이 가닿아야 행복을 느낄까?
인간의 이런 특성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록하는 자와 읽는 자는 계속 있을 것이다. 이게 AI와의 차이가 될 것 같다.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AI 에게 의지하는 영화 HER의 시대가 이미 오고 있다. 그래도 나는 AI의 마음은 아직 안궁금하고, 평을 받고 싶지도 않다.
대면으로 해결이 안되는 수많은 관계의 단절과 고립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본인에게 더 깊게 닿아지는 세계에 기대기도 한다. 그게 동물이든, 미술 작품이든, 음악이든, 여행이든, 온갖 향락과 취미라 불리는 수많은 것들의 동굴 속으로 정착한다. 그 모든 각자만의 편안한 정착지가 있더라도, 그럼에도 글로 마음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그래도 글로 종이배를 하나씩 띄워보면 어떨까.
정착지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슬픔과 다짐 등 그 모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활자로 표현하면, 누군가는 활자 바로 뒤의 감정을 직송으로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자랑거리 사진에 감추어져,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던 내 깊은 마음을 직진으로 표현하고, 또 들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인간만이 써내려갈 수 있는 나만의 ‘글’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냥 지금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 한 명의 잠깐의 감정, 그 1분도 안되는 잠깐의 시간이 고프고 감사할 뿐이다. 나같은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 책방과 글 플랫폼으로 얽혀 사는 지금의 인간사회 속 글세계가 더이상 잠식당하고 소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글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덜 외로워지고, 더 충만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백년이 지나도, 지금처럼 누군가 적은 삶의 단상이 적힌 책 한권이 딱 그런 의미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