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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l 06. 2024

눈먼 상태로 날고 있어

뮤지컬 디어에반핸슨의 ‘엄마 시점’

뮤지컬 디어에반핸슨은 사실 엄청 보고 싶어 하던 극은 아니었다. 넘버가 워낙 좋은데 한 번쯤 직접 듣고 싶다는 호기심 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큰 기대와 심장떨림 없이 객석에 앉아 다소 건조한 마음으로 극 시작을 기다렸다.  


대극장 뮤지컬은 지금까지 딱 한번 본 게 다였다. 그땐 엄청난 안무와, 천장을 넘나드는 무대장치, 그리고 화려한 앙상블로 내 시각을 현혹시켰었다. 그런데 이번엔, 대극장 안을 들어가 보니, 이 큰 무대에 단출한 침대와 소파 정도가 소품의 다였다. 그렇다고 안무가 화려한 것도 아니고, 음압이 강렬한 것도 아니었다. 왠지 지루할 것 같기도 했다.


첫 시작의 신은 보통, 출연진들이 다수 나와서 극의 상황설명과 인물 소개가 친절하게 포함된 화려한 넘버로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사실 좀 산만해서 감정선에 바로 이입하긴 어렵고, 책의 프롤로그 정도 되는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정도의 분위기 파악 시점이다.


그 시점에서 놀랍게도 나는 대책 없이 눈물샘이 대폭발해 버렸다. 첫 5분도 안 돼서 내가 이런 적은 처음이어서 나 스스로도 너무 당황했다. (휴지 한 장 준비 못한 무방비 상태여서 더 당황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장면 때문이다. 사춘기 소년 에반과 학교 안 가려는 코너에게 각자의 엄마들은 밝은 모습으로 아침밥을 챙겨주고, 학교 잘 다녀오라며 과잉 파이팅을 해주며 치아를 최대치로 드러낸다. 하지만, 각자의 엄마는 아이가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이내 어깨가 처진다. 그리고 힘들어 하지만 자조하며 웃으며 노래한다. 내용과 반대로 음악은 신나고 씩씩하다.


I'm flying blind, And I'm making this up as I go.

난 눈먼 상태로 날고 있고, 날마다 꾸며내고 있어.


사춘기 아이의 가시 박힌 말과 무표정 속에서도 기어코 밝게, 좋은 말만 해주려는 나 자신이 코너 엄마 같고, 에반 엄마 같아서 난 그렇게 서럽게 눈물이 흘렀나 보다. 아이의 언행에 상처받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마음에 묻고, 그럼에도 좋은 엄마 역할을 보여주려는 나. 나는 지금 그들처럼 눈먼 상태였다. 그리고 아이들도 어딘가를 방황하며 눈먼 상태로 날고 있겠지. 다들 길을 모른다.


극의 클라이맥스에 그렇게 엄마를 외롭게 하던 에반이 엄마의 품으로 스스로 돌아가는 씬이 있다. 그걸 보는 나는 어떻게 되었냐고? 눈물이 흐르다 못해 목으로 다 내려가서 거의 물만두가 되어버렸고 극이 끝나고는 진이 빠져서 기어서 네 발로 나왔다.


지금까지의 극 설명은 이 극의 메인 줄거리가 전혀 아니다. 나는 주인공의 대서사가 아닌, 조연인 그의 엄마에 갑자기 이입하는 바람에, 극 내내 애새끼 에반 등짝을 눈으로 후려치는 게 수십 번이었고 조연 관점으로 극을 따라갔다. 조명받는 에반 뒤에서 애써 정신 챙기는 엄마의 뒷모습에 눈이 더 갔다. 그래도 클라이맥스에서 엄마에게 안기는 에반을 보니, 결국 에반은 나에게 꿈이자 실낱같은 미래가 되었다.


우리 집에는 요즘 특히 화가 많은 에반 두 명이 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니, 지도도 없이 눈먼 상태로 날고 있다. 그래도 너희가 돌아올 품을 꾸며서라도 준비해야겠다고, 샘솟는 사랑을 계속 담아 꾸려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그냥 여기 있을게. 네가 지도를 몰라 길 잃은 상황이 무서워진 날이 있다면 부디 나를 떠올릴 수 있기를, 그리고 부디 돌아오는 그 길만 잃지 말기를 난 희망 한다.


사진 : 에스앤코

https://youtu.be/--F-nTJM4kQ?feature=shared

Anybody have a map? 넘버. 브로드웨이의 에반 엄마들

https://youtu.be/6f1-QF9jvBM?feature=shared

디어 하이디, 신시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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