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무렇지 않게 내 알몸과 내 속겹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글쓰기 멤버들이다. 그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3년 전쯤 불현듯 온라인으로 만났다. 그야말로 시공간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던 여자 여섯이서 우연히 만났다. 우연히 만날 수 있었던 계기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지우 작가님과의 연결고리다. 정지우 작가님은 여러 차례 글쓰기 모임을 주관하고, 또 모임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이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에 굉장히 진심인 분이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후속 모임을 해보라고 친절하게 판을 깔아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지사항을 보고, 파생된 모임 들 중에 그야말로 우연히 짜진 팀이다.
둘째, COVID19 덕분이다. 코로나 이후 여러가지 온라인 회의와 모임이 급속히 발달되었다. 이는, 도서산간 남쪽 섬에 사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온세상 사람들 중 내가 원하는 결의 사람들을 선택하여 바로 화상으로 만날 수 있는 세상의 큰 흐름 속에서, 나는 정지우 작가님의 온라인 글쓰기에 제발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주기적으로 만나서 각자가 써내려간 여러 주제의 글을 읽고 평가해 주었다. 상대의 글을 하나 둘씩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점차 서로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나이와 거주지, 직업 등등 모든 것은 제각각이었다. 결혼한 사람, 결혼을 앞둔 사람, 싱글인 사람, 아이를 낳을 지 고민하는 사람, 아기 또는 사춘기 아이와의 충돌, 사랑스러운 일상부터 죽음과 이혼에 대한 생각까지 우리는 정말 다 달랐고 서로의 글이, 아니 서로의 삶이 신기했다. 서로의 인생은 잘 모르지만 서로의 글의 패턴은 누구보다 잘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이왕 쓰는거 한번 책을 써보면 어떨까 엉뚱한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급 물살을 타며, 우리 각각의 이야기를 ‘결혼’의 주제로 크게 잡은 후 써보았다.
출간기획서라는 초안이 나오기까지 여정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멤버는 결국 그 어려운 걸 해냈고, 여러 출판사에 일단 투고를 해보았다. 세상 평범한 여섯명의 일반인이 쓴 출간기획서를 읽고, 이 책이 팔릴 거라고 믿고 계약해줄 사람이 있을까? 나 조차도 의문이 가기도 했고 종이책 출판시장은 빛의 속도로 위축되고 있는게 요즘의 현실이기도 했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출판사에서 수락을 한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 멋진 출판사에서. 눈이 오는 어느 겨울날 우리 카톡방에는 출판사의 계약 소식에 다들 각자의 공간에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팔짝 팔짝 뛰며 기뻐했고, 카톡 방에서도 꽃잎처럼 눈이 내렸다.
하지만, 계약을 했다고 바로 출간이 되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초고만 완성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출판사의 편집 요청이 다시 오며, 글을 뒤집으며 여러가지 수정을 거치는 아주 거대한 본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판시장에서는 사실 수많은 신간을 늘 쏟아내고 있기에, 언제 우리 차례가 올 지 일단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다림은 조금 길었다. 아니 많이 길어졌다. 나라는 몇번이 뒤집혔다가 일어났고, 세상의 이슈들은 정말이지 끝도 없이 쏟아지던 혼란의 시국이 지나가며 기다림은 거의 2년이 되어갔다. 2년동안 우리 멤버 모두 각자만의 파도를 거치며, 세월과 싸우기고 상처입고 화해하기도 하며 우리는 2년 전과 달리 굉장히 다른 삶의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기다림마저 잊어갈 무렵, 그야말로 불현듯 원고의 수정 요청이 왔다. 편집자님은 새로운 주제 몇가지에 대한 새로운 글을 요청했다. 2년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부랴부랴 다시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주제는 우리에게 너무 어려웠다. 경제에 관해, 이혼에 관해서, 또 결혼의미에 관해서 글을 써보며 우리는 다시한번 알몸이 되었다. 나는 사실 사람을 잘 믿지 않고, 쉽게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 와중에 나의 가장 안쪽의 속살, 내 경제 사정, 이혼에 대한 상상, 후회스러운 결혼, 같은 이야기는 친한 친구라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아니 드러내기를 매우 꺼려하는 주제이다. 그런데 그걸 온세상에 드러날 글로 쓰라니 다시 겁이 났고, 이전 글조차 다 엎고 싶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옷을 하나하나 벗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우리 멤버들 속에서라면, 나는 그들처럼 기꺼이 알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행간을 읽으며 글의 구조와 논리에 대한 의견을 각자 제시한다. 이런 지적은 희한하게도 가까운 사람들의 같잖은 위로보다도 훨씬 더 깊고 정확하며 몹시 달다. 사실 우리는 서로의 삶의 방식에 대한 훈수나 개입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글에 대한 평가와 글 속의 작가가 써내려간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기꺼이 알몸을 보여줘도 두렵지 않을 수 있는 그 뽀인트이며, 내가 지금껏 이들과의 합평을 기다리며 의지하는 이유이다.
이번의 편집은 다소 고통스러웠다. 글을 몇번을 갈아엎고, 얼마를 울어제낀지 모른다. 글 속의 내가 한없이 가엽기도 하고,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내 결혼 인생을 내가 이렇게 잘 들여다보고 회고해본 적이 있는가 싶다. 올해 말에는 이 책이 탄생하게 될 것 같다. 나는 사실 이 책을 빌미로 우리 멤버가 꽉 엮여버려서 안도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담담히 이해하고, 모호한 구절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가며, 결국 모든 속살을 토해내듯 더 깊게 써내려가게 만들어주고 있다. 눈을 크게 뜰만큼 놀라운 평가와, 독창적이며 감각적인 사유를 쏟는 우리 하나하나가 정말 하나가 되어 쓴 이 책의 탄생이 벌써부터 소중해진다.
결혼을 앞둔 우리 달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언니, 저 결혼해요 말아요?(가제)'. 가 머지않아세상에 나온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어느덧 2년이 지나 달지는 이제 갓난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있다. 우리 달지's 베이비가 돌 즈음이 될 때는 이 책이 정말 세상에 존재할 것인가? 그 즈음 내 결혼생활은 어떤 상태일까? 우리는 정말 알몸으로 세상에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제법 설레이기도 하고 괜히 걱정도 된다. 하지만, 글 한장 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캐치하고, 아무도 이해 못하는 내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낸 글을 읽고 냉철히 평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겉도는 절차 없이 바로 내면으로 프리패스하는 이들이 이미 내 삶의 든든한 벗이 되가고 있다. 그것 만으로 나는 이미 충분하다. . 내가 언제부터 알몸을 까기 시작했는지, 내 변화가 참 우습고 고맙기도 한 여러 감정 속에서, 아침 운전을 하며 어제의 심야의 온라인 합평 생각을 하다가 슬쩍 웃으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