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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엔 도망쳤고, 40대엔 버텼다. 오십에는?-1/3

by 말자까


"야, 우리 네팔 가볼래?"

"오. 좋아."


때는 2016년, 어느날 친구가 나에게 낯선 나라 '네팔'에 한번 가보자고 짧게 물었다. 얘와는 긴 대화가 없는데도, 잘 굴러간다. 그 시절 내 삶은 직장, 육아, 학업까지 모든 것이 미친 듯이 나를 감싸는 30대의 도때기 시장 한복판이었다. 10년 차 직장인에게는 위아래로 쏟아지는 요청이 너무 많았고, 나 역시 인정받고 싶은 열정이 가장 높았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둘 엄마에게는 챙길 게 참 많았다. 눈망울과 표정만으로도 그저 사랑이었을 텐데, 그 때는 오롯이 누리지 못했다. 그저 나만의 여유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아쉬운 내 30대였다.


그러던 차에 친구가 제안한 '네팔'이라는 단어는 정말 낯섦 그 자체였다. 왠지 끌렸다. 사실, 그 나라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나는 낯선 곳으로 잠시 도망치고 싶었다. 남편에게 딱 일주일만 나 좀 없이 살면 안 되겠냐고, 그 시간을 결혼 10주년 선물로 주면 안 되겠냐고 슬며시 물었다. 남편은 쿨하게 승낙했다. 남편도 잘 아는 친구였고, 친구가 다 잘 알아봐서 안전하게 가는 여행이라고 말했더니 안심한 것 같았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나는 남편이 변심하기 전에 친구를 통해 항공과 숙박 결제를 일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설마 내가 그렇게 빨리 결제할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이라 했다. 내 수법이 통했다.


친구가 짠 일정은 네팔 히말라야의 일부인 '푼힐'이라는 곳을 4일간 트래킹 하고, '포카라'에서 2일간 휴양을 하는 계획이었다. 트래킹 4일은 가장 짧고 초보자도 할 수 있다는 히말라야 트래킹 초급 코스였고 셰르파 1명과 동행하기에, 안전하고 어렵지 않을 것이라 했다. 나는 사실 산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산을 잘 안 다녀본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대학 가고 결혼하고 직장 잡고 육아하는 릴레이를 거치며, 나에겐 여유롭게 혼자서 산에 가볼 시간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유로운 시간에는 널브러져서 티브이나 봤지, 호기롭게 내 몸을 움직이는 산행을 택하진 않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여행의 대부분을 '산행'에 보내야 한다니, 조금 고민스러웠다. 산행이 재미가 없을까 봐, 그리고 내 체력이 안될까 봐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내 친구는 나보다 더 체력이 약했다. 그리고 그 친구 역시 산행이 취미인 아이도 아니었다. 그냥 나랑 비슷하게 바쁘게 살아온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피차일반 우리 다 처음 도전이니, 친구의 선택을 한번 따라보기로 했다. '그래. 뭘 하든 뭐가 중요하냐. 둘이 가고, 도와주는 인력도 있는데 힘들면 그만 올라가고 돌아와도 된다고 하니, 그냥 일단 가보자.'


결론적으로, 여행은 정말 정말 좋았다. 일단, 산행 초보 느림보인 나와 친구가 체력이 엇비슷해서 좋았다. 하루에 너댓시간만 슬슬 걷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재촉하지 않았고 조급해 하지도 않았다. 우리를 안내하는 셰르파도, 우리 짐을 들어주며 우리가 쉬고 싶을 때마다 쉴 곳을 알려줬고, 무조건 다 괜찮다고 해주는 참 편안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딱 우리의 저질 체력에 맞는 속도로 적당히 걷고, 숨이 차면 앉아서 쉬고, 또 슬슬 걷다가, 해가 지기도 훨씬 전에 롯지에 도착해서 따뜻한 짜이로 몸을 데우고, 침대에서 몸을 뒹굴거려도 서로 불편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터지지도 않는 그 시골에서 우리는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멍하게 하늘을 보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혹여 산행 일정이 길어지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건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세르파 없이 무거운 가방을 번쩍 메고 트래킹하는 서양인들 사이에서 낀 히말라야의 대표 느림보 두명인 우리는, 그래도 어찌어찌 푼힐 정상까지 오르고 나름 사진도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정복의 쾌감보다는 모든 일정 동안 각기 다른 구역의 롯지에서의 묵는 하룻밤들, 그리고 오며 가며 만나는 그 마을의 풍경들을 누리던 여유가 훨씬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산 후에 우리는 포카라라는 도시에서 아주 좋다는 숙소를 예약했다. 드라마 '나인'에 나왔던 장소라며, 친구가 꼭 가보고 싶다는 숙소였다. 신기하게 우리에게 배정된 방번호도 '9'이었다. 침낭과 최소한의 도구로 춥고 불편한 롯지에서 자던 우리는, 갑자기 신분상승한 공주가 된 것 같았다. 숙소 대비가 극명하니 모든 서비스가 더욱 더 천국 같이 느껴졌는데, 그 와중에 물가가 싸다 보니 숙박비도 저렴해서 더욱더 신이 났다.


산행하느라 자제했던 맥주도 실컷 먹고, 안주도 원없이 시켜보고, 잔잔한 포카라 호수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룻배도 한번 타보기도 하며 여행 마지막날 우리는 '야. 좋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이 여행은 '여백'이 얼마나 행복한 지 알게 하는 경험이었다. 거기에, 산행 속도가 느려도 중간중간 롯지에서 잠을 자며 천천히 올라갈 수 있는 구조인 이 히말라야 트래킹의 방식 덕분에 나는 산이 처음으로 좋아졌다. 재촉하듯이, 몇 시간 만에 하산했냐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없이, 그냥 가다 힘들면 한잠 자고 또 가도 되는 이 곳이, 내 속도에 맞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낮 꿈을 잠시 꾼 것처럼 우리는 다시 각자의 원위치의 쳇바퀴로 돌아갔다. 마음속에 강렬한 큰 추억을 품은 채. 그리고 그 쳇바퀴는, 또 점점 속력을 내더니, 또 나를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일도, 육아도, 학업도 다시 돌아갔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돌아갔지만 큰 틀은 여전했다. 자연스럽게, 당연히, 나에게 그 마음속의 네팔은 점점 작아져갔다. 돌아온 직후에는 한국에서도 등산을 자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역시나 나의 꿀 같은 휴식일에 산에 갈 만큼 나는 산을 사랑할 체력이 남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산이 아니고, 일탈의 이질감과 그 여유가 좋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을까? 갑자기 친구에게 난데없이 연락이 왔다.


"야. 한라산 백록담 같이 갈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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