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0년이 흘렀다. 큰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의 키가 점점 커지고, 하교 시간은 점점 늦어지며 이제는 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깜깜할 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0년에 걸친 내 학업도 마무리했다. 박사가 되었다고 바뀐 것은 없었으나, 아빠의 어깨뽕이 아직도 올라가 있는 모습에 허무하진 않았다. 거기에, 올해 들어서 직장 부서이동이 있었다. 말임상수의사 이상향에 유독 몰입해왔던 내 삶의 긴 챕터 하나가 끝난 느낌이었다. 불과 작년 까지도, 야간 응급과 수술, 어려운 케이스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살다가, 내 업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초반에는 나를 조종하던 것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사라지면서 생긴 긴 시간이 너무나 어색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해갔다. 휴일의 긴 시간 동안 어쩔 때는 하루 종일 집안일만 해봤고, 어쩔 때는 하루 종일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유튜브만 보기도 했다. 초반의 무료함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무언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채워짐은 더 이상 의무가 주어지는 '역할'이 아니었다. 결정의 주체는 철저히 '내 맘'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 채워나 가야 하는 이 시간들. 이 시간들이 해가 가며 더 많아질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그건 바로 '건강' 이었다.
건강해야 가족에게 관대해지고, 건강해야 가족이 더 행복해지고, 나도 행복해지는 원리였다. 하지만, 40대의 내 몸은 눈도 침침해지고, 얼굴도 처지며 노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기에, 나는 더 노력을 해야 지켜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잉여 시간에 슬슬 운동을 시작해보고, 더 건강한 음식도 시도해보며 조금씩, 관리에 관심을 가지며, 나를 생각하며 살아가던 차에,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이 온 것이었다.
"뭐? 백록담?. 그래 좋지. 제주 내려오면 같이 한번 가보자. 우리 예전에 네팔 갔을 때 진짜 좋았는데.."
여전히 일에 매진하는 바쁜 친구는, 이제 드디어 제주에 여행올 만큼 시간을 낼 수 있는 것 같았다.
"야. 우리가 네팔 간지 벌써 10년이 지났어. 우리 이제 나이 들어서 조금만 더 있으면 오십이야. 진짜 금방이야. 신기하지 않냐? 우리가 오십이라니.."
"야. 나도 이제 휴가도 많고 시간도 많아. 우리가 살면서 언제 이렇게 시간이 많았냐. 그런데 우리 이제 이 나이 되니 시간도 있고 돈도 있네. 우리 진짜, 네팔 한번 다시갈까? 말 나온김에 우리 오십에 갈까? 오십 기념여행으로다가 어때? 우리 이제 네팔 가서 산행도 하고, 내려와서는 제대로 사치도 한번 부려 보자. 어때?"
우리는 대화하다 점점 흥이 나서, 50 기념 네팔 여행을 즉석 약조했다. 그리고, 이번 한라산 정상 산행을 50기념 네팔 여행의 전지훈련으로 삼기로 했다. 실컷 전화로 웃고 떠들다다가, 문득 우리의 나이듦이 생각나며 현타가 왔다. 사실 우리는 30데에도 꽤 저질 체력으로 둘째가면 서러울 느림보 트래커였기 때문이다.
"야. 근데 너 운동은 하냐? 한라산 백록담 가려면 장난 아니야."
친구는 자기 요즘 운동한다며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쫄기 싫어서, 나 역시 요즘에 운동하고 있고, 얼마전 윗새오름도 다녀왔다며 내 체력을 자랑(?)했다. 그건 30대에는 친구가 나보다 더 약하고 느렸다는 기억 때문이었다.
얼마후 갑자기 카톡문자 하나가 왔다.
'한라산 백록담 예약 안내' 메세지였다. 친구가 정말 등반 예약을 해버린 것이다. 와우. 그냥 말로 떠들던 게 아니고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우리 올라갈 갈 수 있을까? 친구가 체력이 약할텐데 내가 이끌어야 할텐데 나부터 퍼지면 안될텐데..(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근자감이 심했다.) 오마이갓. 한달도 남지 않은 기간동안 나는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왜냐하면 내 체력에 한라산 정상은 여전히 정말 큰 연중행사급이니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