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이 된 후부터 나는 올라간다기보다는 주위를 둘러보거나 내려갈 준비를 하는 삶을 주로 살고 있다.
아마도, 직장에서 내 역할이 그렇게 변해버린 게 가장 큰 것 같다. 그리고, 내 품을 벗어난 아이들이 이제는 사춘기도 넘어서며 그야말로 헤어질 준비를 하는 가정에서의 역할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일선의 일이 바뀌며 부서이동을 하며 시간이 상대적으로 급격하게 많아진 작년, 나는 의식적으로 본업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생각할수록 미련만 남을 것이며, 현재의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웠지만, 그냥 그대로 덮어놓고 살았다. 다른 곳을 쳐다보았고 또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았다.
오늘은 유준상 배우의 '나를 위해 뛴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50대의 연기자이자 작가인 유준상 배우는 연기에 대한 고민과 표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습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갑자기 과거의 내 모습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그 시절을 한번 적어보고 싶었다. 자랑도 아니고, 불만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다.. 그저 그 소중한 시간을 선명하게 글로 낚아 올리고 싶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수술'이었다.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반역이고 튀는 행위이고 개인주의자스러워서 많이 참고 살았고, 지금도 그다지 입으로 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순수하게 오로지 '수술'을 배우고 싶은 간절함이 매우 컸다. 사내에서는 정식으로 배움을 받을 수가 없어서, 처음에는 말의 뼈를 구해서, 그걸로 모형을 만든 다음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뒷다리 관절이 포함된 말의 뼈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체의 일부를 구해서 거기에서 뼈를 추출해야 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크기가 커서 그 작업을 집에서 할 수도, 밖에서 할 수도 없었다.
알음알음, 다른 병원 원장님이 그 뼈 모형을 가지고 있다고 하셔서 어렵게 빌렸다. 관절 안에서 내가 조작해야 할 타깃 여러 곳에 포스트잇 스티커를 여러 개 붙이고, 천으로 감쌌다. 그리고 회사의 관절경 수술 기구를 가지고, 그 모형을 활용해서 수술 기구를 잡고 그 포스트잇을 제거하는 연습을 해 보았다.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만든 게 어설프니 천이 자꾸 흘러내리고, 실제 관절이 아니니깐 내가 기구를 조작하는 자세가 전혀 달랐다. 수술기구를 연습하고 다시 멸균을 돌려야 하니 일이 많아서, 주로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새벽에 했다.
하다 보니 실제 관절로 연습을 정말 해보고 싶었다. 아는 생산농가에 부탁을 해서, 사체가 생길 경우 다리를 혹시 얻을 수 있는지 문의해 놓았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이 죽으면 주인 앞에서 죽은 말 다리를 절단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또 내가 치료하던 말이 죽었을 때는 더더욱 내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놓치다가, 결국 기회가 와서 다리를 얻게 되었다. 이 소중한 실습도구가 헛되지 않게 나는 성장하고 싶었다. 정말 진지한 마음이었다.
새벽 네시반에 일어나서 깜깜한 길을 운전해 아무도 없는 병원에 도착했다. 천천히 그 사체를 걸이에 걸고, 장비를 세팅하고, 관절경 연습을 해보았다. 사체가 워낙 크니 레일로 올리는 일도, 모든 준비와 마무리를 하는 일도 정말 정말 많았다. 조용한 새벽에 화면을 보며 책을 보며 뼈의 위치와 내 손의 감각을 확인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을 했다. 연습 후에는 모든 것을 다 치우고, 버리고, 수술기구를 씻고, 멸균을 돌리고, 수술방을 청소했다. 그러면 빠듯하게 아침 출근시간이 되었다.
나는 마법이 풀리듯,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원래의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몇 번을 반복했다. 당시 테크니션 직원만이 나의 사투를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어느 날은 그냥 기구들을 멸균 돌리지 말고, 그냥 세척해서 위에 올려만 놓으라고, 내가 정리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속으로 뜨거운 울음을 삼켰다.
쉬는 날에 다른 병원에서 수술 케이스가 있으면 무조건 옆에서 볼 수 있는지 요청했다. 내가 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몇 시간 동안 관절경 화면만 보고 있어도 내 머릿속은 마치 내가 수술을 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그 당시에 응급이 오면 나는 오히려 신이 났다. 혹시 사람이 부족하면 나라도 쓰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고,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정작 사람이 필요할 때, 내가 있다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더 늙기 전에 나는 혼자서라도, 아니면 그 어디에서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세월은 유한하고, 나는 더 밀리면 더 멀어지기 때문에, 따로 배워서라도 나도 그 선상에 서서 한번이라도, 아니 최대한 많이 쓰임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그렇게 쓰여지고 싶었다.
그땐 뭐가 그리 간절했을까. 그땐 뭐가 그리 좋았을까. 그저 위만 보던 시절이었다. 계속 나를 채찍질하며 닿지 않는 그 무언가에 다가가는 것에 온 마음을 주던 시절이었다. 꼭 발자국을 찍고 싶던 마음만 가득하다 보니 뭐가 행복하고 뭐가 슬픈지도 모르고, 주위에 누가 울고 웃는지도 잘 모르고, 심지어 나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 내가 다가갈 수 있다면, 그냥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뜨거운 시절을 지금이라도 꺼내보고, 이젠 아프지 않고 그저 감사히 추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여러 모로 좋은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