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일상적인 하루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평일에는 회사에 나가고, 휴일에는 집에서 쉰다. 일요일 저녁은 성당에 가고, 월요일에는 운동을 간다. 회사에 나가서 하는 일이 일정하고, 집에서 혼자 쉬는 날도 그럭 저럭 비슷하게 하루를 보낸다. 이런 반복되는 일상은 어쩌면 밋밋할 수도 있고, 어쩌면 평온하다고 할 수도 있다. 평범하고 무탈한게 최고라는 어른들의 말에 비추어본다면, 최고의 하루로 객관적으로 정의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하루의 끝에서, 오늘 정말 최고였어라는 탄식이 나올만큼 행복했는가 반문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어제 뭐했는지, 엊그제 뭐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똑같이 살고 있다. 어제 청소기를 밀었는지, 엊그제 청소기를 밀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별일 없는 하루 하루가 '최고'의 하루로 기억되기에는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살아온 날들 중에서 과연 언제가 나에게 '최고'라는 흥분을 느끼게 해 주었을까? 원하는 직위를 얻었을 때? 원하는 좋은 집과 자금이 생겼을 때? 주식이 대박났을 때? 내 몸이 더 건강해지고 예뻐졌을 때? 가족과의 관계가 가장 좋을 때? 원하던 물품을 구입했을 때? 원하던 작품을 보았을 때? 아이들이 대견할 때?
음. 이루어지기 힘들지만 간절히 원하는 그 무언가를 얻었을 때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행복을 얻기까지는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게다가, 그 무언가를 얻었을 때의 행복은 몹시 짧았다. 그 이후 바로 또 다른 결핍을 느끼게 되고 그 순간을 못참고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인고의 길을 걸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왜 그렇게 살까? 희안하다. 나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내 삶을 규정해 버리고, 스스로를 그 틀 속에 넣으며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그 무언가는 타인의 욕망, 공동의 욕망이 덧입혀져서 만들어진 이상향이다. 그 이상향 때문에 어쩌면 별일 하지 않은 평범한 나의 하루를 기억에도 남지 않는 그저 그런 똑같은 하루였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매일 별일 없는 같은 하루같지만,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정말로 다 같은 하루는 아니었다. 가령 오늘은,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이 제법 낯설었고, 졸업사진을 살펴보며 재잘대는 둘째가 다소 귀여웠으며, 야구가 져서 안타까워하는 남편이 살짝 우습게 보이는 하루였다. 또, 처음으로 매운 닭갈비를 만들었지만 역시나 망한건지 다들 남겨서 반찬통에 옮겨 담았던 날이고, 유튜브를 보며 과자를 먹다가 혈당스파이크로 낮잠을 때리고 나니 밤에 잠이 안와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날이다. 별일 없던 하루가 아니고, 별일 많았던 하루였다.
그리고, 자꾸 간과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모른 다는 것이다. 한치 앞도 전혀 모르는 일개 인간인 나는, 어쩌면 내일 차사고로 죽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일 세계 전쟁이 날 수도 있고, 내일이 우주인을 만나는 일생일대의 날일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순간은 정말 그 누구도 예측 못하는 미지의 하루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이상향이라는 감옥 속에 스스로 들어가 앉아서, 그 하루를 평범하다고 폄하하거나 밋밋하다고 기억에 저장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이상향은 때때로 나를 옭죄고, 복잡하고 안풀려서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는 개미부대처럼 파랑새를 다 놓치고 살아가던 것이다. 다행히 이 상황은 외적으로 나를 막는 재해 같은 것이 아니고, 내 자아가 만든 것이기에, 이 상황을 조금 더 멀리 보며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복잡한 대부분의 문제가 슬쩍 다 풀린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사실은 어쩌면 인류의 가장 큰 축복이다. 우리는 단 1초 뒤도 모른다. 그러므로, 규정된 틀을 대입해, '최고'의 하루가 아니라는 죄책감이나 불만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저 흐름대로 살면 된다. 문득 이 상황을 위트있게 알려주는 옛노래가 소환되어 흥얼거려졌다. 가사를 찾아보니, 당시에는 못느꼈던 공감이 크게 올라온다.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라니, 곰씹을 수록 명작이다.
노래 한판을 따라 흥얼거리고 나니 밋밋할 줄로 알아서 기대가 없던 내일이, 왠지 몹시 궁금해진다.
제목 :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 여행스케치 , 1994년.
너는 어떻게 살고있니 아기 엄마가 되었다면서
밤 하늘의 별빛을 닮은 너의 눈빛
수줍던 소녀로 널 기억하는데
그럼 넌 어떻게 지내고 있니 남편은 벌이가 괜찮니
자나깨나 독신만 고집하던 니가
나보다 먼저 시집갔을 줄이야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거야
누구도 알수 없는 것
지금도 떡볶일 좋아하니 요즘도 가끔식 생각하니
자율 학습시간에 둘이 몰래 나와
사 먹다 선생님께 야단 맞던일
아직도 마음은 그대로인데 겉모습이 많이 변했지
하지만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은
우리를 닮은 아이들의 몫인걸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수는 없지만
알 수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거야
누구도 알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