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
아이 방을 정리하다가, 엊그제 본 3월 모의고사 시험지가 구겨진 채 있길래 슬쩍 펼쳐보았다. 국어영역 첫 표지가 보였다. 첫 표지에는 이름과 수험번호를 적는 칸이 있고, 그 밑에는 필적 확인을 위해 아래의 문구를 따라 쓰라는 글이 있었다. 2026년 3월 서울시 교육청 모의고사의 필적확인 문구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누구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
'캬... 참 좋은 말이구나.'라고 괜히 감상에 젖으려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참 좋은 글귀인데, 하필 저 글귀를 적은 직후에는 하루 종일 가혹한 문항들이 수험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항을 다 풀고 제출하면 결국 점수대로 줄 세워지는 세상 속을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갑자기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반항심이 올라왔다. ”뭐? 누구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라고? 그러면 정말 1등급도, 9등급도 향기로운 거야? 진짜로?? 그러면 공부 안 해도 향기로운 삶인 거라고 애들한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아니잖아. 맨날 등급을 올리라고 그렇게 쪼아대면서, 그래서 이런 시험도 자꾸 보게 하면서, 왜 첫 표지에 모두 다 향기롭다는 멘트로 어쭙잖게 위안하려는 거야?“
세상은 사실 위선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소중하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여기저기서 말한다. 정치인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종교인은 신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정말 그럴까? 아니다. 순수하게 이상만을 실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라는 문구를 창작한 작가조차도, 한편으로는 향기의 경중을 따지는 시선이 삶의 어딘가에서는 표출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높을수록 더 우위의 삶을 쟁취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고 했다.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어쩌면 일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얻으면, 결국 '진한 향기'를 얻을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당장 동창회만 가도 바로 '향기로운 삶'이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또는, 재산, 직업, 명예, 가족 등의 여러 가지 재료가 아주 훌륭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며 스스로 향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우리는 심심찮게 많이 보아왔다.
그렇다면, 그놈의 나만의 '향기'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지키는 그 힘은 바로 '내면의 탄탄함'이라고 생각한다. 성적이 9등급이든, 주식이 폭망 하든, 배우자가 괴롭히든, 직장을 잃었든, 건강을 해쳤든 간에 휘둘리지 않는 유연함과 단단함. 그것을 나는 '내면의 탄탄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아무리 외부의 자극이 나를 흔들어대고, 짓밟든 간에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는 세상에 단 하나인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환경과 강한 자극이 죄 없는 나에게 오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내 인생은 억울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반면, 외부의 환경이 나를 시궁창에 넣는다 해도, 내가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면 내 인생은 의연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잔혹한 현실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아들을 안심시키는 주인공의 내면은 탄탄하다. 충분히 향기롭다. 하지만, 연극 '엘리펀트송'에서 아무리 외부에서 주인공에게 사랑과 헌신을 주어도 주인공이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그는 영원히 외롭다.
나 역시 '억울회로' '슬픔회로' '인정회로'가 누적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주어진 재료가 아무리 좋더라도 자꾸만 억울하고, 슬프고, 타인의 인정지옥 속으로 스스로 자꾸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많이 방황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지금도 내 에고, 내 회로를 지워버리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거대한 자연 속 하나의 생물체일 뿐이며, 나의 지문과 방어막을 계속 지워서 세상 그 무엇이 다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틈과 여백을 주어야겠다는 부단한 다짐을 한다.
내 향기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매일 기도하면서도 매일 죄를 짓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은 향기롭다'라고 출력할 수 있는 최적의 주파수를 찾고 싶다. 적어도,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속 주인공 '귀도'는 본인의 노력으로 만든 행동으로 아들 '죠수아'에게 멋진 향기를 물려준 것 같다. 문득 나는 내가, 또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귀도'가 되어보는 게, 모의고사 앞표지의 예쁜 문구보다, 아이들에게 훨씬 더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일단 밤늦게 집에 온 아이에게 야식을 주며 이렇게 행해보았다. 이 정도가 내 수준의 소소한 향기이다.
'잘하고 있어'
'궁디 팡팡'
'토닥 토닥'
*'틈과 여백' '내면의 탄탄함' 용어는 제가 즐겨듣는 유튜브 '황관장' 채널에서 감응하여 이 글에도 사용하고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