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는 것 밖엔.

by 말자까

한바탕 시끄럽던 태풍이 지나가자마자 응급 환마들이 태풍처럼 몰려들던 한주였다. 부족한 팀 인력이지만 다행히 고맙게도 다들 의견을 맞추고 애써준 덕분에 세마리의 수술을 할 수 있었고, 이들의 입원생활과 함께 예상치 못한 분주한 연휴당직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하여도, 여러가지 상황으로 수술 전후의 모든 것이 아쉬운 건 당연하다. 특히나 연휴에 관리 보조 인력을 찾기는 힘들기에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큰 빙산의 일부만이라도 도와줄 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혼자서 판단하고 잽싸게 처치할 수 있는 능력, 진단하고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전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일 수 있다는 꿈결같은 현재에 뜨겁게 감사할 뿐이다. 얼마나 고대했고 단 하루라도 이런 날을 인생에서 겪기를 바랬는지 내 자신은 너무나 잘 알기에, 세상 조용한 연휴에 혼자 뭐라도 하며 이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냥 벅차는 내 자신은 참 별나다. 누가 보지도 않을 수술일기와 그림을 매번 그리며 이번 역시 아쉬운 점과 헷갈리는 점을 물음표로 마무리한다. 퇴원시키는게 못미덥고 걱정되어 죽겠다.


늘 그랬다. 이렇게 배우기만 하다가 나는 사라질까? 말이 도대체 몇번을 죽는 것을 보고 부검해봐야 내가 완전히 통달할 수 있을까? 통달한다는 것이 나에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많고 질병도 많고, 나는 기술적 지적 능력이 출중하지 않은 사람이며, 내가 말 임상의 장인이 되기 전에 나는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도 안다. 그래도 이번 태풍에 비슷한 종류의 산통 수술 세 케이스를 겪다보니, 낙숫물이 바늘을 뚫듯이 내가 예전보다는 조금 더 수술일기를 편안하게 쓰고 물음표가 조금 덜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다가도 난해한 아이들을 만나면 또 세상 초심자가 되겠지만, 시간과 경험이 적어도 나를 뒤로 가게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현재에 대한 큰 감사가 올라오는 조용한 추석 당직날의 밤이다. 비판받고 미움 받다가 이런 감사한 순간도 온다니 참 놀랄 일이다.


늘 나는 뭐든 뒤늦게 해결했었다. 학교도 10년만에 졸업하고, 침술도 12년만에 익혔다. 급한 성격에 비해 능력치는 크지 않아서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나는 조준은 결코 잊지 않고 결국은 간다. 누군가는 집요하다 하고 누군가는 대단하다 한다. 뭐라 하든 그건 내 성질이 맞기에 이제는 나 자신을 질책하지 않는다.


비록 직장 속 미래에 비젼을 이제는 가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이 주어짐에 너무나 감사하고 나는 내가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그 날까지 일기와 그림을 그리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떠나게 된다면 평생 곰씹을 월드컵 같은 뜨거운 추억처럼 여기며 살겠지. 참 고맙고 소중하고 시간이 지나가는게 아쉬운 2022년이다. 오랜 비 사이에 가끔 보이는 세상 투명한 하늘 같다. 감사하다는 말을 표현하는 것도 불안하지만 오늘은 보름달의 힘을 빌어 기록으로 나를 믿어주고 기꺼이 도와주는 현재 내 주위의 여러 멋진 분들께 감사를 표현해본다. 18년 세월 속에 이런 좋은 하루도 있었음을 기록으로 각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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