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구 맥시멀리스트의 '잘' 버리는 여정
결혼 전, 나는 맥시멀리스트였다. 작디작은 투룸에 온갖 물건들이나 화장품, 고가의 향수, 저렴한 쇼핑몰에서 산 저렴한 옷들을 좁은 3평짜리 방에 꾸역꾸역 다 밀어놓고 비릿한 만족감을 얻었던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배우자와 살림을 합친 뒤 드는 생각은 내 짐을 다 몰아놓으면 배우자 짐은 어디에 어떻게 둬야 될까? 였다. 이 과정에서 한 발, 두 발 뒤로 밀려나 본인의 짐은 창고에나 처박아둘 것처럼 확 압축하여 그나 나나 잘 찾지 않는 공간에 묵은지 보관하듯 밀어 넣게 된 그의 처지에 심심한 고마움을 전한다.
2년 동안은 무식하게 면적이 큰 옷장에 잘 가려져 꽤 그럴듯하게 보냈지만, 옷장 안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마녀의 옷장처럼 덕지덕지한 껍데기로만 이뤄진 나의 짐과 같은 옷들과 화장대에는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된 쓰다 만 향수들, 거의 화석 수준이 된 화장품들과 브러시와 같은 도구들을 보며 어느 순간 환기점을 두기로 했다. 오래된 것들은 싹 다 정리하기로, 버리지 못했던 옷들도 싹 털어내듯 기부함에 넣고 화장품이든 공병만 남은 향수병들도 열심히 분리수거하였다.
코로나 시기 동안 잘 찾지 않던 화장품들은 딱딱하게 굳거나 세월의 흔적이 바랜 것처럼 마냥 메말라있었다. 마스카라든 뭐든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과감하게 싹싹 털었다. 립밤이나 선크림과 같은 기초 제품을 제외하곤 모두 처분하였다. 앞서 언급했던 무식하게 큰 옷장과 화장대도 중고거래 어플을 이용하여 잘 처분했다. 드레스룸을 새로 짜서 2인이 감당하기 딱 좋은 형태의 미닫이 옷장과 여분의 짐을 넣을 반장, 외투를 걸어놓을 행거를 준비했다.
신혼 생활 초기부터 줄곧 주장해 오던 미니멀리즘, 거실과 안방이나 서재에는 그 미니멀리즘의 사고가 잘 녹아들어 갔지만 수상(?)쩍게도 그 사상이 녹아들지 않던 유일한 장소인 드레스룸이 드디어 환골탈태하게 되었다. 어쩌면 결혼 전의 내 모습을 은연중에 놓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작은 평수의 방 치고 넉넉해진 사이즈의 드레스룸을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후회보다는 '후련함'이라는 감정이 더 잘 느껴졌다. 적막을 깨듯 뒤통수에 싸하게 느껴지는 시원섭섭한 감정과 조금은 숨을 돌리고 과거의 먼지가 쏙 사라진 공간의 새로운 공기를 느끼며 또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