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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석 Jan 06. 2020

천용성 인터뷰

2019년 11월 28일  &  12월 3일

 2019년 가장 훌륭한 데뷔 앨범인 ‘김일성이 죽던 해’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천용성과의 인터뷰를 정리해서 게재한다.

천용성은 2020년 1월 31일 첫 회를 시작하는 새로운 시리즈 공연 'Prism Break'를 앞두고 있다.


- 올해 훌륭한 데뷔 앨범을 발표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나 섭외가 많이 올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생각보다 진짜 연락이 없었어요. 그랬는데 서울 레코드페어에서 LP가 완판 되고 나서 연락이 좀 많이 오더라고요. 레코드페어의 영향력이 꽤 큰가 봐요.


- 평소에 음악을 많이 듣나요?

최근에는 저보다 잘하는 음악을 들으면 자신감 떨어질까 봐 그다지 많이 듣는 편은 아닙니다.(웃음)


- 다음 음원 발표 계획이 있나요?

1월 11일에 새 싱글이 나옵니다. 기대해주세요.


- 그 다음 계획은 어떤가요?

1집 때 넣을까 말까 했던 써놓은 곡들도 있고 그중 하나가 1월에 발표하는 곡이고요, 또 쓰면 되기 때문에 계속 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지금 열심히 알바도 하고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텀블벅을 또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작년 앨범 낼 때는 지인들이 참 많이 도와줬었는데요. (웃음)


- 그러면 여러 가지 오디션이나 지원사업에 도전해봐요. (웃음)

2019년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소소하게 지원받은 게 있긴 한데 제가 그렇게 선정 잘되는 스타일의 뮤지션은 아닌 거 같아요. (웃음)

경연 라이브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되는데 그다지 자신이 없네요.


- 1집 제작에 단편선 씨가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수고비는 많이 줬나요?

아니 전혀 못 드렸습니다. 손익분기점을 넘어 수익이 나면 지불하기로 구두로 약속했는데 얼마를 줄지 조건을 얘기하거나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요, 손익분기점을 못 넘을 것 같아 못 드릴 것 같아요. ㅠㅠ


- 영화 '벌새'를 봤나요? 거기도 ‘김일성이 죽던 해’가 명시적으로 그려지고 언급되는데요

네 봤어요.


- 어떻게 보게 됐나요?

그냥 재밌다고 해서 봤는데요, 저는 그렇게 아주 재밌지는 않던데, (웃음)


- '벌새'가 자기 노래랑 붙는 지점이 있다고 보지는 않나요?

'김일성이 죽던 해' 앨범보다는 1월에 발표할 신곡이 중학교 소녀 이야기라 더 통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벌새' 영화 장면을 삽입하려고 알아봤는데 이미 이상은 씨가 자기 곡에서 사용했더라고요. 아쉬워요.


- 천용성 씨는 아직 학업을 마치기 전부터 노래를 발표했었는데요, 처음에는 음악을 취미로 시작한 건가요?

지금도 그렇지만 음악이 제 인생에 메인인지, 서브인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별생각 없이 노래 만들고 발표했어요. 음악을 해서 먹고살 수 있으면야 좋겠지만 제 음악이 돈벌이가 될 걸로는 전혀 생각 안 하거든요.


- 음악을 본격적으로 찾아 듣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이고 계기는 뭔가요?

초6-중1 무렵인 것 같아요. 형이 인디음악 좋아해서 따라 듣기 시작했어요. 인디밴드에 관심이 있어서 그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찾아보고는 했죠. 형은 현실적이어서 대학 가고 직업 가지면서 덕질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요. 제가 지금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현실적인 형을 둔 이유가 커요.


- 내년이면 천용성 씨도 30대 중반인데 발표한 곡들이 대부분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의 10여 년간 만든 곡들이잖아요, 그 노래들 만들 당시의 젊은 천용성과 지금의 천용성은 어떻게 다른 사람인가요?

별로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거나 그러면 많이 변했을 수도 있겠지만 만나는 사람도 비슷하고 지금도 대학 때 생활과 큰 변화는 없거든요. 나이 들면서 세상일에 옛날보다 덜 예민하고 무감해진 건 있지만...


- 가사에 자신의 내밀한 감정과 이야기를 많이 담는 편인데, 저는 뮤지션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곡들을 발표하고 대중이 듣는다고 생각하면 막 부끄럽거나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지는 않나요?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10월에 발표한 '사골'이라는 곡은 흔히 노래에서 다루지 않는 가족 간의 불화와 충돌을 다룬 얘기지만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아요. 저는 세상에는 가치 있는 음악과 가치 없는 음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음악은 가치 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고 가치가 있으려면 저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30대에 쓴 곡 또 앞으로 쓸 곡은 20대에 쓴 노래와 어떻게 달라질까요?

'사골'은 얼마 전에 쓴 곡이고요 제가 주로 오래전에 겪은 상황을 노래로 만들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요.


- 경기도 이천 출신인데 어린 시절 그 동네의 음악 환경은 어땠나요?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와는 문화적 혜택, 정보나 취향면에서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음악을 찾아 듣거나 기타를 치는 친구를 보지 못했어요. 중학교 동창 중에 지금 음악평론가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음악 좋아하는지도 몰랐고요. 고등학교 때 스쿨밴드를 했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취향이 달라서 짜증이 많이 났었어요.


- 잘한다 못한다, 또 돈벌이를 떠나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고 곡을 발표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언제부터예요?

저는 지금도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고 공연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노래를 발표해서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요. 다만 곡을 발표하고 앨범을 만드는 건 제가 젊은 시절 뭐라도 하고 살았구나 하는 자기 설득에 가까워요. 내세울 것 없는 청춘이지만 이런 걸 하고 지냈구나 하는 그런 기념 음반 같은 거였어요.


- 그렇다고 본인을 아마추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요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요. 프로의 솜씨는 아닌 것 같은데. (웃음)


- 그래요? 아마추어로 생각하면 단편선 씨가 프로듀서로 붙어 같이 작업을 했을까요?

오히려 아마추어로 생각해서 승낙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앨범을 내고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 이런 건 단편선 씨의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 군 제대 후 스튜디오 엔지니어 생활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고 장비를 마련해가며 집에서 데모 녹음할 정도의 기술은 있었는데요 더 배우고 싶어서 지원했고 채용이 된 거죠


- 얼마나 있었는데요

8-9개월 정도요. 본격적인 음악 엔지니어 작업이 많았으면 더 오래 하고 진짜 엔지니어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치 없는 음악 녹음이 너무 많았고요, 심지어 음악이 아닌 영어교재라던가, 광고 녹음 이런 게 너무 많아서 배울 것도 보람도 크지 않더라고요. 녹음 엔지니어도 일종의 서비스업인데 제가 엔지니어로서 서비스 마인드도 부족했던 것 같고요.


- 이번 앨범 작업도 그 스튜디오에서 주로 한 걸로 아는데 싸게 한 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있던 곳이고 사장님도 잘 아니까 스케줄 빌 때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저렴하고 맘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죠.


- 그래서 그런지 녹음도 잘 됐고 인디 앨범 치고는 사운드가 아주 매끈하게 잘 빠진 것 같아요.

엔지니어였던 천학주 씨의 빼어난 솜씨 덕도 컸습니다.


- 처음 홍보할 때 '순도 1,000% 퓨어 포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고 '새 해의 포크'같은 기획공연에도 참여하는데 제가 보기엔 천용성 씨 음악을 단순하게 포크로 규정짓기에는 다양한 요소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캐치프레이즈는 재밌자고 붙인 거고요 저는 통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경우라도 포크로 뭉뚱그려 분류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요새는 통기타 하나로 R&B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제 음악은 어디서 백화점식이라는 표현도 썼지만 다양한 요소의 음악이 저라는 필터를 통해서 구현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 천용성 씨는 동세대 사람들과 달리 하나뮤직을 비롯한 8,90년대 웰메이드 한국 가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그런 음악을 어떻게 알고 접하게 됐나요?

그런 게 있잖아요, 평론가들이 선정한 한국 명반 100선... 이런 정보가 웹진이나 단행본 형식으로 발표된 거, 그런 걸 보고 얼마나 좋은지 한 번 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많이 듣게 됐어요. 제가 음악평론이나 음악 글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리고 제 전공이 문화사회학이었는데 그 학문이 문화연구와 교집합이 크고 평론과 붙는 지점이 많아요. 그래서 평론의 가치를 인정하고 참고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 대학 때 문화적으로 답답했던 지방을 벗어나 서울로 오게 됐는데 학교 밴드나 이런 건 안 했나요?

제가 사람들을 모아 주도적으로 뭘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주위에 저랑 음악 취향이 맞는 사람들도 거의 보지 못해서 그냥 혼자 음악 듣고 기타 치고 했던 것 같아요. 굳이 사람을 찾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리고 고등학교 밴드 활동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짜증이 많이 났던 탓도 있고요.


- 앞에서 천용성 씨가 자신을 프로 음악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1집 앨범을 그냥 기념 음반 비슷한 것이라고 했는데 앨범에 대한 평가는 다 좋았단 말이죠. 이런 상황이 자극이 돼서 생각이 바뀐 건 없나요?

평가가 좋아서 2집 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제가 남들 앞에 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도와주신 분들 생각하면 열심히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것 같아서요.


- 천용성 씨는 본인이 음악가로서 많이 실력이 모자란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더 못하고 실력이 없어도 스스로 뮤지션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밝히거나 자기 암시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제가 노래나, 기타나 작곡이나 뭐 하난 특출 난 장기가 있으면 그럴지도 모르는데요, 뭐든 다 애매해서요.


- 저는 평론가로서 뮤지션과 음악을 평가할 때 기술적인 우월함을 따지기보다는 얼마나 자기 생각, 감정을 잘 전달하느냐, 또 남들과 다른 어떤 개성이 있느냐를 보는데 그런 면에서 천용성 씨 음악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지만 전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기술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깔고 그 위에 말씀하신 것들이 더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만족스럽지 않아서요.


- 지나치게 자신한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은데 천용성 씨가 본인을 어떻게 규정짓든 제가 보기에는 음악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할 것 같습니다.

네, 뭐 그럴 거는 같습니다. (웃음)


- 음악 말고는 뭘 좋아하나요?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그게 음악이 됐던, 글쓰기가 됐던 나무로 가구를 만들던요.


- 가구도 만들어요?

네. 나무 사다가 책상도 만들고 녹음장비를 넣을 랙도 만들고 그래요. 음악도 제가 직접 뭘 만드는 창작활동의 하나예요. 그 상황의 소재가 악기와 장비였을 뿐인 거죠.


- 다음 앨범도 단편선 씨가 편곡, 프로듀서를 맡게 되나요?

저는 같이 하고 싶고 별 일 없다면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돈을 좀 드려야 할 텐데...(웃음)


- 오늘 인터뷰 고맙고 1월 31일 공연 기대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 & 정리 : 정원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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