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3일
일렉트로닉 듀오 '텐투텐'은 밴드'3호선 버터플라이'(이하 3호선)의 드러머 서현정과 런던에서 사운드 디자인을 전공한 프로듀서 이승규로 구성된 팀이다. 2018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2장의 싱글을 선보인 후 2020년 1월에 대망의 첫 EP [Sound And Vision]을 발표했다. 디스코와 K-Pop과도 통하는 대중적이고 복고적인 전자음악을 들려준다.
이들은 오는 4월 10일 올 해부터 시작된 새로운 시리즈 공연 <Prism Break vol. 2 - 일렉트로니카 특집>에 출연할 예정이다.
- 우선 제가 서현정씨를 3호선부터 알아서 그 이전 활동을 잘 몰라요. 3호선 이전에는 어떤 이력을 갖고 있나요?
3호선 전에는 2008년에 잠깐 '펑카프릭 부슷다'라는 팀의 멤버였고 그러다 3호선으로 넘어갔어요. 그 전에는 학교 다닌 것 말고는 없어요.
- 펑카프릭 멤버로 음원이나 음반 발표된 게 있었나요?
펑카프릭은 없었고요 펑카프릭 리더인 림지훈씨 솔로 앨범 [Organ Orgasm]에서 드럼 쳤어요.
- 그리고 바로 3호선으로 넘어갔어요?
거의 그렇죠. 2009년 겨울부터 3호선 했어요. 딱 10년 했네요.
- 드럼은 언제부터 쳤나요?
고3 때 처음 쳤어요. 처음부터 실용음악과 지망생은 아니고 원래 운동을 했었는데 부상을 당해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어요. 운동하느라 공부는 안 했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는 가고 싶고 그랬는데 고3 때 이것저것 알아보다 드럼 쳐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늦게 시작했어요.
- 그러면 청소년기에 그렇게 음악에 빠져 있던 사람은 아니었겠네요.
사실 운동하느라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음악을 몰랐을 거예요. 우리나라는 운동하면 운동밖에 안 하잖아요.
- 그러면 짧은 시간에 엄청 음악적 지식이 쌓인 거네요.
3호선 들어가자마자 멤버들하고 대화하는데 뮤지션이나 록밴드 이름을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학교도 재즈 위주 학교였고요.
- 그런데 왜 멤버로 데려갔을까요? (웃음)
하여튼 그래서 보컬 남상아 언니한테 '파일 좀 주세요'해서 이것저것 듣고 했는데 취향 아닌 것도 너무 많고 그랬어요. 몇 년 지나 다시 찾아보니 이젠 다 아는 이름들이더라고요.
- 대학 때는 주로 재즈를 들으라고 했을 거고요.
재즈를 들으라 했고 재즈 수업을 들었지만 재즈가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었어요. 공부하면 할수록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그런 게 없고 싫어졌어요. 그때도 혼자 일렉트로닉 듣곤 했어요. 후배들이 '언니 뭐 들어요?' 물어보면 '비밥'이라고 거짓말하고...(웃음)
- 대학 가려고 드럼을 시작했다? 특별한 다른 동기 없이? 예를 들면 '내가 뮤지션으로 살아야겠다' 이런 거 없이?
그냥 고향(포항) 벗어나고 싶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이거 하면 내 인생이 좀 달라질까? 이런 마인드였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음악에 목숨 걸고 한 다른 뮤지션들보다 여기까지 온 건 잘 풀린 거 아닌가요?
잘 풀렸다고 하기에는 아직 먹고살기 쉽지 않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한편으로는 운이 좋았던 건 맞는 거 같아요.
-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나요? 인맥이 좋아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인맥이 한몫 한 건 맞죠. 3호선 하면서 멤버 오빠, 언니들의 친구가 다 제 친구가 되면서 쉽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죠.
- 저는 3호선이 4집 [Dreamtalk] 앨범부터 일렉트로닉한 면이 부각됐고 본격적으로 마지막 앨범 [Divided By Zero]에서 'Sense Trance Dance'라는 노래를 듣고 그 신선함에 깜짝 놀랐는데 그 곡을 서현정씨가 썼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 친구가 일렉트로닉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본인이 밴드 리더가 돼 일렉트로닉을 들고 나올 줄은 몰랐어요.
저도요(웃음)
- 어떻게 된 연유인가요? 3호선 때부터 일렉트로닉 음악 할 생각을 했었나요?
사실은 [Dreamtalk] 때 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점점 나이 들고 드러머인데 무릎도 아파 물리치료도 받으러 다니니까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드러머는 또 누가 불러줘야 할 수 있는 포지션이잖아요. 그런 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주인인 밴드를 하고 싶었어요. 단순하게...
그런데 밴드를 하려면 또 사람을 모아서 해야 되는데 그게 또 귀찮고 싫은 거예요. 내 스케줄만 되면 할 수 있는 그런 걸 하고 싶은데... 그래서 처음에는 디제잉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제가 음악을 너무 모르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하면서 컴퓨터로 혼자 작업을 하다 보니 일렉트로닉이 된 거죠.
- 컴퓨터로 혼자 한다는 게 곡 만들면서 미디로 작업했다는 건가요?
대학 때 미디를 배웠는데 다 까먹었어요. 그러다 유튜브로 혼자 공부하며 다시 시작한 거죠.
- 지금 음악 파트너인 이승규씨는 처음부터 같이 작업을 시작한 건가요, 아니면 나중에 합류했나요?
이승규씨는 사실 고3 때 입시 때문에 연습실 다니다 만난 동네 후배였어요. 그러다 각자 바쁘니까 연락이 없었고 고향에 가끔 내려가 만나게 되면 '저 전자음악 전공으로 예대 들어갔어요.'이러고 또 몇 년 후 만나면 '지금은 전자음악 강의해요' 이렇게 띄엄띄엄 소식을 들었어요. 지금은 외국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전자악기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모르는 게 있으면 묻고 하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같이 음악을 하게 될 줄은 몰랐죠.
제가 믹스, 편곡 등 모든 일을 혼자 다 하고 싶어서 몇 년째 붙들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오더라고요. 답이 안 나와요. 그래서 승규한테 부탁을 하면 너무나 쉽게 완성도가 생겨서 피드백이 오고. '내가 몇 년을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할 수 있지? 신기하다' 이런 마음이 들었죠. 내가 못하는 부분을 그 친구가 완벽히 해결하니까 큰 도움이 될 것 같고 그래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어요.
- 사실은 서현정씨가 텐투텐 리더인데 처음에 저는 그걸 모르고 프로필을 보다 이승규씨가 전자음악 전문가고 하니까 이 사람의 프로젝트에 여성보컬로 서현정씨를 영입한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 형태의 밴드가 대부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 텐투텐 음악은 실물 신디사이저를 사용하나요? 아니면 MIDI 내 가상악기만 사용하나요?
제가 하는 파일은 다 MIDI안에 있는 걸로 만들어 보내는데 사실 이승규씨가 그 뒤 어떻게 작업하는지 저도 자세하게는 잘 몰라요.
- 그렇군요. 노래는 옛날부터 하고 싶었어요?
그건 아니고요 3호선 때 오빠들이 코러스를 한두 곡 시켜서 했는데 그게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까지 (웃음)
- 텐투텐처럼 일렉트로닉인데 디스코나 케이팝 느낌이 나는 노래를 원래 좋아했어요?
마돈나 좋아하고요, 마이클 잭슨이나 80년대 댄서블한 팝 넘버를 좋아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거기 멈춰있는 느낌도 들어요.
- 저는 서현정씨가 댄스나 일렉트로닉 한다고 들었을 때 놀랍지 않고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스타일로 가는 건 솔직히 의외였어요. 뭔가 좀 더 아티스틱한 전자음악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가요? 저는 노래할 때 제 목소리가 이렇게 밝게 나올 줄 몰랐어요.
- 누가 보컬 가이드나 디렉션을 해줬나요?
아뇨, 전혀. 누가 디렉션을 해줬으면 노래를 더 잘할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못 건드리고 있어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 지금 스타일이 잘 맞고 자연스럽고 또 뭐라고 해야 되나? 그래, 귀엽던데요 (웃음)
저도 제가 만든 음악이 귀여울 줄 정말 몰랐어요.(웃음)
- 공연할 때 관객들이 춤을 많이 추나요?
아뇨, 춤 안 추고 대부분 그냥 보고만 있어요. 사람들 춤추게 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공연 많이 하면 된다고는 하더라고요. 많이 하면 뭐가 생기긴 한데요.
멘트도 재밌게 잘했으면 좋겠고.
- 텐투텐 외에 서현정씨는 세션 활동을 많이 하는 드러머인데 지금 하는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프롬 있고, EOS 있고, 모임별은 정식 멤버고요, 케이시라는 발라드 가수 세션도 하고, 최근 신보 발표한 코어매거진도 하고요.
-그렇군요, 바쁘겠네요. 제가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봐도 텐투텐이라는 이름을 어떤 뜻으로 지은 건지 안 나오던데 텐투텐의 의미는 뭔가요?
텐투텐을 처음 들은 건 연극하는 친구들 통해서인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빡세게 연습하는 걸 뜻해요. 말이 너무 예뻐서 맘에 들었는데 검색을 해봐도 잘 안 나오는 흔치 않은 이름이고. 그래서 이걸 써야겠다 생각했고 저는 '밤 10시부터 아침 10시까지 빡세게 놀자'라는 의미를 붙였어요 (웃음)
- 첫 싱글이 2018년 말에 나왔는데 곡 작업은 언제부터 한 건가요?
3호선 마지막 음반에 실린 'Ex-Life'와 'Sens, Trance, Dance' 모두 제 솔로 음반에 수록하려고 만든 곡인데요, 로직 프로그램 시작한 건 2014-15년 무렵예요.
- 원래 드러머이고 이제 자기 밴드를 이끌고 노래하며 전자댄스음악을 하고 있는데 둘 중 자기 정체성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노래하는 텐투텐이 더 정체성에 맞다고 생각해요. 드럼이라는 악기가 기타나 건반악기보다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악기잖아요.
- 그런가요? 자신을 평생 북쟁이라고 생각하는 드러머도 많은데요. 시작을 드럼으로 했는데 본인의 관심과 흥미는 점점 텐투텐 쪽이다 그런 건가요?
네. 음악을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더 큰 것 같아요. 드럼 치는 건 특히 세션으로 드럼 치는 건 그냥 하는 일 같은 거죠.
- 그러면 자기 음악이 잘되면 나중에 드럼을 관둘 수도 있나요?
사실 제가 나이를 더 먹으면 드럼 못할 것 같아요. 이미 관절이 많이 아프거든요. 그래서 넘어간 것도 있어요. 40 넘어 50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돈하고 몸하고 바꾸는 셈이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어릴 때 기계체조, 육상선수 등 운동을 해서 더 심해진 걸 수도 있어요.
- 텐투텐하면서 레퍼런스로 삼은 뮤지션이나 음반이 있나요?
사실은 레퍼런스가 딱히 없어서 편곡하는데 애를 먹었어요. 아직도 레퍼런스를 못 잡았어요.
- 못 잡아도 잘 나오면 굳이 레퍼런스가 필요한가요? 방향이 없을 때 레퍼런스가 필요한 걸 텐데
근데 다들 작업하는 거 보면 레퍼런스를 놓고 하니까 작업이 빠르고 수월하던데 저는 남들보다 오래 걸리니까.
- 혹시 보컬이 삐삐밴드, 지금은 넘넘이라는 밴드 하는 이윤정씨 비슷하다고 하지 않나요?
오! 그거야 많이 듣죠. 안 그래도 윤정 언니한테 '남들이 비슷하다 그러는데 이거 듣고 어떤지 언니 생각 좀 얘기해줘요'라고 물은 적 있는데 윤정 언니가 '전혀 안 똑같은데? 오케이 그냥 해'라고 그러더라고요. 남들은 비슷하단 말 많이 하지만 윤정 언니하고 저하고 협의됐으니까 상관없는 거죠. 저는 이윤정 같다고 하면 오히려 기분 좋아요.
-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서 3호선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일단 남상아 언니는 당분간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 전혀 없고요.
- 그러면 남상아씨가 음악을 해도 프랑스에서 따로 하겠네요.
글쎄요 그렇게 부지런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웃음)
3호선을 다시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 서현정씨 음악인생의 고향 같은 느낌인가요?
서울에 가족이 전혀 없는데 한 밴드를 10년 했으니 가족 같은 느낌이 있죠.
- 앞으로 텐투텐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제가 리더로 뭘 해본 게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고요 회사가 여러 가지 활동을 제시하면 잘 따라갈 생각예요. 막 욕심부리면서 빨리빨리 뭘 해야겠다기보다 오래 활동하는 팀이 됐으면 좋겠어요.
- 요즘 어떤 음악을 많이 들어요?
지금은 특정한 음악을 듣기보다 컴퓨터로 독일 인터넷 라디오를 많이 들어요. 다양한 음악이 24시간 나오는 방송인데요, 시간대별로 완전히 다른 음악이 나와요. 음질도 괜찮고요.
- 맨날 뒤에서 드럼 치다 이제는 앞에 나와 춤추며 노래하는데 어색한 건 없나요?
완전 어색하죠. 그래서 사실 텐투텐 공연은 항상 술 먹고 해요.(웃음). 그러면 좀 편해지던데...
남상아 언니한테 이 얘기했더니 맥주 먹고 하지는 말라고 하더라고요. 맥주는 노래하는데 트림 나온다고 (웃음)
- 그렇군요. 오늘 인터뷰 수고하셨고요 4월 10일 프리즘브레이크 공연도 기대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 & 정리 : 정원석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