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쓰게 된 나의 이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박수근 작가의 화풍으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부모님 신혼여행 사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과수원을 지켜 오신 부모님의 삶이, 고단함 속에서도 꿋꿋했던 농민의 애환을 투박하게 그려낸 박수근의 그림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인간 고유의 내면을 관찰하는 일에 큰 가치를 두면서도, 저는 디지털 기술로 그 소중한 기록을 더욱 멋지게 남기고 싶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께 저는 이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입관식에서 책을 넣어 드리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그토록 열심히 사셨던 아버지의 인생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세상 사람들 모두 잊지 않도록 제가 이 책에 모두 기록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쉬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책을, 영원히 마음속에 살아계실 아버지와 지금 제 곁을 지켜주시는 어머니께 헌정합니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돈'을 가장 확실한 성공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들의 삶도 충분히 의미 있다.
나도 성공을 꿈꾸며 살아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했다. 강연장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말을 경청했고, 그들을 닮고 싶어 애썼다. 그러는 사이, 나는 가족보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 더 가까워지려 애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조차 "엄마가 성공해서 나중에 다 해줄게"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 말은 사랑도, 시간도, 효도도 모두 '나중에'로 미루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부모가 된 지금, 아이 둘을 키우며 부모의 삶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께 받은 것들이 얼마나 컸는지, 너무도 늦게 알았다. 여섯 아이를 키운 엄마, 자식들 학비를 묵묵히 감당하던 아버지. 그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감사의 마음이 자주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철없는 딸이다. 투정을 부리고, 감정을 앞세우고, 부모님을 하나의 개인으로 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책을 쓰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부모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아버지의 자서전을 써드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기억과 인지가 흐릿해지며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전지적 자식 시점'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자식인 내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 시선으로 써내려가는 방식. 부족한 자료는 대화로 채웠고, 그 속에서 우리는 평생 가장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 책을 ‘가족 에세이’라 부르고 싶다.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된 자서전이 아니라, 삶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엮은 공감의 기록이다. 무거운 효도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인생을 들어주는 따뜻한 대화의 기록이다.
효도를 미루는 사이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건강할 때, 기억할 수 있을 때, 함께 시간을 기록하길 권한다. 우연한 술자리에서 같이 있던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무말랭이 무침 비법을 못 배운 게 너무 아쉬워요. 엄마 무말랭이 너무 맛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그 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지혜였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작가 아마다의 말처럼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혜를 구하러 멀리 가지 말고,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물어보자. 그 안에 우리가 찾던 삶의 보물들이 숨어 있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그런 보물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신의 가족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부모라는 숭고한 존재를 다시 바라보는 이 작은 여정이, 더 많은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작은 별처럼, 우리 모두의 삶도 보잘것없지 않다.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존재에 감사하는 것. 그 단순한 진심에서, 우리는 진짜 행복의 본질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