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죽음 그리고 두려움
“효준이는 우석이 집에 갔냐?”아버지의 물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금 전 똑같이 물어보셨기 때문이다.“아버지! 효준이는 우석이 집에 간다고 금방 말씀드렸잖아요.” “응. 그렇구나.”이건 분명히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아니던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깨달으며 오랜만에 부모님을 위해 음식을 만들다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왜 좀 더 일찍 글을 쓰지 못했을까? 왜 하염없이 게으름을 피웠을까?
그렇다. 아버지는 어느 날 코로나에 걸리신 후 병원에 입원 하실 만큼 위중하셨다. 그나마 다행이였던 것은 고령자 위험군에 폐렴까지 걸리는 나쁜 조건에서도 무사히 퇴원하셨다는 것이다. 사실 코로나로 인해 주변 부모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분들이 꽤 있었다. 심각했을 때는 병원에서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장례식을 마친 슬픈 사연도 참 많았다.
문제는 그 이후로 아버지의 인지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파킨슨병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1년 전부터 부모님 인생을 정리한 글을 써 드리고 싶어 조금씩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아버지의 지난 과거 이야기를 영상으로 녹화하며 부모님 일들을 머릿속에 조금씩 정리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나의 바쁜 다른 일들로 인해 자꾸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철이 드는 순간부터 부모님의 1년은 나의 1년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1남 5녀의 막내라 부모님과 나이 차이가 가장 컸다. 어린 시절 나의 눈에 비친 부모님은 또래 친구들 부모님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시다는 것! 그 어떤 부모님보다 일을 몇 배 더 많이 하신다는 것! 어린 마음에도 그 사실이 늘 안쓰러웠고 힘든 부모님께 죄송해서라도 빨리 커서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늘 한자리에 있었다.
부모님 인생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먹었을 때는 아버지는 이미 80세가 넘으셨다. 걷기도 힘드시고 모든 행동이 슬로우모션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가깝게 느끼진 못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직 한참 남은 것처럼 이 프로젝트는 여유가 생길 때 하는 선택적 사항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몇 번의 고비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나는 멀리 산다는 이유로 아버지 퇴원하실 때마다 방문하며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위로해드렸다. 그것 외에 해드릴 게 주어진 상황에서 더는 없었다. 그리던 어느 날 같은 질문을 반복하시는 아버지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때야 비로소 직감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말이다.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영원히 마감 기한이 없는 미완성 원고로 끝나버림을 ..
그날 처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이별이 마음속 깊이 느껴져 삶이란 무엇인가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날의 슬픔은 나에게 자책이라는 일종의 주홍글씨가 되어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게 되었다. 한동안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슬픔에 나의 평범한 일상을 빼앗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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