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워지는 기억과 남겨진 기억

지평선 너머를 궁굼해하던 그 호기심 많던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by 디지로그마담앤

스마트폰 영상 녹화 버튼을 누른 뒤 여쭈었다. "아버지, 어릴 적 이야기를 이제 말씀해 보세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 가셨다.


아버지는 2남 4녀 중 막내였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막내아들의 바람을 다 들어줄 힘도 여유도 없으셨다. 제일 큰 형님과는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났으니, 아버지는 그야말로 손자뻘인 막내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배움에 대한 열망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유독 많으셨다.“논에서 일하다 보니 친구들은 다들 중학교에 다니는 거야. 그 길로 부아(화)가 나서 집으로 달려가 왜 나는 학교에 안 보내주느냐고 따졌지.”그렇게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 뒤에야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고 하셨다.


어렵사리 중학교를 마친 뒤, 고등학교 진학은 무리라는 것을 아시고는 멀리 외국에 사는 누님에게 직접 부탁하셨다. 다행히 학비를 지원받아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늘 ‘하와이 고모’라 부르던 분이다. 아버지는 그 누님에 대한 고마움이 컸기에 언제나 애정이 각별하셨다.



나는 어릴 적 저 지평선의 끝은 어디일까, 혹시 낭떠러지는 아닐까 늘 궁금했어. 그런데 중학교 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지구가 둥글다고 가르쳐 주시더라고. 그때야 비로소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았지.” 예전에는 자연현상이 인간에게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벼락과 천둥을 몹시 무서워하셨다. 그러다 과학 시간에 ‘벼락이 번쩍여도 천둥소리를 들었다면 살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무척 즐거워하셨다고 한다. ‘빛이 소리보다 빠르기에 천둥소리를 들었다면 이미 벼락은 나를 비껴갔다’는 그 명쾌한 앎이 아버지의 머릿속에 즐거운 깨달음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을 참 좋아하셨다.



어느 날은 배터리의 원리를 배우던 중, 한 번 충전해서 아주 오래 쓸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할 수는 없느냐는 질문도 던지셨다고 한다. 지금의 기술로는 어렵다고 답했던 선생님을 회상하며, 아버지는 은연중 자신의 총명함을 드러내셨다.


우리 아버지, 정말 총명하셨고 기억력도 좋으셨는데... 이제는 방금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기 위해 애를 쓰셔야 한다니!! 하룻밤 자고 나면 아버지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바보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부모님은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셨다. 워낙 넓은 과수원에 가축도 많다 보니, 눈 뜨면 마주하는 모든 것이 일인 환경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바쁜 농사일과 넘치는 집안일을 묵묵히 도와드리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 가족만의 ‘평화로운 암묵적 대화’였다. 더군다나 이미 육아를 거의 마친 부모님께 늦둥이인 나는 대화의 상대라기보다, 얼른 키워내야 할 ‘마지막 숙제’ 같은 존재였다.



부모님의 과거 이야기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가끔 아버지가 이웃이나 가족들과 술 한잔 나누며 툭툭 던지시는 말씀 속에 생생한 지난날이 담겨 있었다.


40년을 넘게 함께 산 가족이지만, 부끄럽게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에야 비로소 우리 가족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었지만 정작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했다.



자료 수집을 위해 친정을 방문할 때마다 짬짬이 아버지의 영상을 촬영했다. 질문을 던지면 아버지는 마치 며칠 전 일처럼 옛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셨다. 평생 아버지와 마주 앉아 이렇게 길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을 잘하셨나’ 싶어 속으로 놀라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70년 전, 10대 시절의 일들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신다는 점이었다.


나이 드신 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자식들은 안다. 먼 과거는 또렷하게 기억하면서도, 정작 며칠 전 일은 흐릿하게 지워져 간다는 것을. 그렇게 정성껏 녹화한 영상들은 아직도 노트북 속 폴더에 저장만 되어있다.


화면 속에서 마주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깊어진 주름이 너무 애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편집해야 할 날이 오겠지만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부모님의 삶을 정리하는 일이기에, 생각보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부모님의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순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1.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