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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딸기 Oct 12. 2023

[용산보기] 세계가 만나는 길, 용리단길(1)

발품의 미학 2번째 지역은 바로 용산이다. 용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컨셉의 매장들이 생겨나면서 인기 매장들이 늘고 있는 추세에 BTS 소속사 하이브와 아모레퍼시픽 사옥으로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지역이다. 여름의 마지막 온기를 품고 있는 9월에 마법의딸기 멤버들과 함께 용산을 방문했다.

용산의 매장들은 비교적 느지막이 오픈한다. 점심 손님을 받는 곳들도 11시 혹은 12시에 문을 열고, 대부분의 식당들은 4시 이후 저녁 시간에 오픈한다. 이른 아침엔 하이브 사옥을 향하는 팬들과 아모레 용산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거리로 쏟아지는 직장인들과 관광객, BTS 팬들까지 비로소 다양한 사람들이 용산의 각 브랜드를 향해 흩어지며 지역에 활기가 띠기 시작한다.

용산은 대로변 주변 외에는 높은 건물이 잘 없다. 대부분 1층, 최대 4층 정도의 건물로 이루어져 어디에서든 하늘을 보기 좋은 동네이다. 이색적인 매장들이 줄지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파란 하늘과 함께 외국어 간판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아니, 오히려 한글로 된 간판을 찾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외국어 간판이 많다. 한자, 일본어, 스페인어로 쓰인 상호를 보면 간판 어디에도 한글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방문했던 매장 중에도 간판을 읽을 수 없어 찾기 어려웠던 매장이 있는데 바로 <야키토리 쿠이신보>였다.


용리단길의 일본 : <야키토리 쿠이신보> <키보>

골목을 돌고 돌아야 찾을 수 있는 <야키토리 쿠이신보>는 옛집을 개조하여 출입구(옛 대문)가 대로변이 아닌 골목 안쪽 길에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일본어 간판만 달고 있어 자칫하면 매장을 놓치기 쉽다. 불편했던 매장의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맞이하는 일본풍의 이자카야 풍경은 이런 불편함을 모두 잊게 해 줄 만큼 이색적이었다.

주택 사이에 위치해 있어 사방이 막혀있음에도, 반쯤 지붕 없이 하늘로 통하는 인테리어는 마치 노상에 앉은 듯이 시원한 뷰를 선사했고, 일본식 제등과 작은 사이즈의 높은 테이블, 주방 벽면 가득한 일본 주류패키지들은 도쿄에서 경험한 이자카야를 그대로 닮아있었다. 일식 헤어밴드를 착용한 종업원의 낯선 한국말을 통해 주문을 마치면, 주문한 요리들은 일본의 이자카야 메뉴들이 으레 그렇듯 정성스럽게 한 종류씩 서빙된다. 어느 것 하나 한국이라고 느낄 수 없는 이 곳에서 일본 음악을 들으며 각자 산토리니 하이볼과 생맥주를 한 잔씩 들고 부드럽게 익혀진 꼬치를 먹고 있다 보면 소박하고 소소한 일본의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정말 디테일하게 일본스러운 공간이다.


야키토리 쿠이신보가 조금 찾기 어려운 탓이었는지 <키보>는 간판이 없어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도로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매장의 전면을 모두 오픈하여 일본 컨셉을 들어서기 전부터도 물씬 느낄 수 있도록 일본 컨셉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키보는 식사 전후에 가볍게 즐기는 일본 노포 컨셉이다. 공식 인스타에는 ‘약속 전, 혹은 진하게 마신 술도 왠지 아쉬운 날에는 망설임 없이 키보의 문을 열어졎혀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자신들을 캐주얼 스탠딩바로 소개하고 있다. 앉을 수 있는 좌석 없이 오로지 스탠딩 테이블만 세팅되어 있고, 메뉴들도 모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안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매장 안에는 일본 분위기를 내는 소품들이 빈틈없이 가득 비치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직원들의 돈독함을 보여주는 일본풍의 스티커사진/즉석사진, 직원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담아 골랐을 듯한 일본 잡지 화보, 일본식으로 제작된 포스터 등이 정신없이 도배되어 있다 보니 그 속에 적혀있는 한글조차 마치 일본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컨셉 아래 직원들의 개인적인 영역이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주인도 방문객도 서로의 벽 없이 어우러질 듯한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 이곳의 특징이다.



용리단길의 동남아 : <효뜨> <꺼거>

오픈 전에만 볼 수 있는 한가한 효뜨의 모습

용리단길에 위치한 매장들은 기본적으로 웨이팅이 필수인데, 그중에서도 웨이팅이 가장 긴 매장 중 하나가 <효뜨>이다.

주변 매장들에 비해 꽤 큰 규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두 시간 웨이팅은 기본이다. 우리도 3번째 방문만에 저녁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효뜨는 들어서는 입구부터 큰 나무와 파라솔, 노란 어닝으로 베트남의 느낌이 물씬 풍겨진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매장에서 보고 느끼고 만지는 모든 것이 베트남 현지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벽에 걸린 오래된 베트남 포스터와 빨간 조명, 원색에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접시와 플라스틱 테이블, 젓가락, 컵... 무엇보다 노랑・빨강 컬러의 메뉴판에는 베트남어를 기본으로 번역한 듯한 투박한 한글이 덧붙여져 있어 제대로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스러운 모든 요소들 중 오히려 음식이 새로운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데, 해물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입맛에 더 잘 맞는 얼큰 쌀국수 ‘분하이산’과 토마토를 넣어 달콤함을 더한 ‘냉분짜’, 각양각색으로 바삭한 튀김이 특징인 ‘짜조’ 등 현지스럽기보다 좀 더 한국에서 시도해 볼 만한 새로운 맛으로 제공되고 있다. 효뜨는 한국에서도 익숙해진 베트남 요리를 가장 베트남다운 매장을 구현하여, 신선한 시도를 통한 즐거움으로 제공하고 있다.


효뜨가 용리단길의 베트남이라면 <꺼거>는 용리단길의 홍콩을 담당하고 있다.

꺼거 매장 내부 분위기1(©️꺼거) / 꺼거 매장 내부 분위기2 / 꺼거의 시그니처, 사장님 아내분의 어린 시절 사진이라고 한다

이 두 곳은 모두 각 나라의 특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메뉴를 통해 새로운 시도나 해석을 더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꺼거는 홍콩의 옛 골목의 느낌을 살린 듯, 오래된 건물의 느낌이 나도록 하는 오픈 시멘트와 생활감이 물씬 느껴지는 식탁과 의자를 사용한다. 한문으로 가득한 원색의 소품도 홍콩의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홍콩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매장들이 작고 협소하여 오래된 건물을 인테리어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곳들이 많다. 꺼거 매장의 느낌이 이 지점을 잘 살려놓았다. 주문할 메뉴를 체크하는 종이도 홍콩 딤섬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매장의 내외부와 메뉴판에 사용된 여자아이의 사진이 압도적인 비주얼 효과를 주는데, 이는 주방장이나 자녀 사진을 걸고 정직한 자부심을 전달하는 매장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독특했던 대만의 망고 맥주 / 오이무침(©️꺼거)

꺼거의 가장 큰 특징을 고르자면 눈에 띄는 인테리어만큼이나 신경 쓴 메뉴들의 조화인데, 중식은 기본적으로 기름을 사용해서 볶는 음식이 많기 때문에 음식이 자극적이고 맛이 깊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중식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게 하는 사이드 메뉴와 음료의 밸런스가 좋다. 독특한 망고 맥주와 다양한 백주, 코코넛 음료 등의 이색적인 음료는 짠맛을 씻어내 줌과 동시에 이국적인 느낌까지 끌어낸다. 특히, 오이무침은 기름진 중식 메뉴 사이에서 산뜻하게 입맛을 돋아주는 역할을 한다. 부러 어설프게 꾸민 매장의 모습도, 음식에 집중한 것도 홍콩의 포인트를 잘 담아낸 꺼거의 센스가 돋보인다.


용리단길의 미국 : <쌤쌤쌤>

지극히 사장님이 경험했던 샌프란시스코를 그대로 담아내고자 의도한 레스토랑, <쌤쌤쌤>은 미국 옆집 이웃의 정성스러운 식사가 연상되는 곳이다. 보통 긴 연혁을 브랜드 헤리티지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since’를 자신감 있게 차용한 점은 ‘샌프란시스코의 정성’을 이어 나가겠다는 브랜드 메시지에 대한 자신감으로 느껴진다.

쌤쌤쌤은 매장에 방문하여 식사를 하는 모든 시간에 미국과 정성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게 한다. 매장 곳곳에 담긴 손글씨와 손그림, 기다리는 고객들의 시간을 배려한 마음이 돋보이는 소소한 얼음물 서비스는 따뜻한 온기와 친근함이 느껴지는 요소이다. 마치 더운 여름, 밖에서 땀 흘리고 들어와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어린 자녀에게 우선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브랜드 철학은 주장이 아닌 행동에서 드러난다. 키컬러인 레드&화이트는 미국 대표 아이콘, 코카콜라와 산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색으로 어닝과 티슈, 식기류 등에 통일되어 사용되었다. 토마토소스 캔, 파스타 패키지와 영문 신문 등 미국을 느낄 수 있는 소품들이 매장 내에 가득 차 있어 확연한 매장의 컨셉이 돋보이고, 그 덕인지 멀리서도 쌤쌤쌤 매장은 유독 눈에 띈다. 물건 하나, 레시피 하나에도 직접 경험한 샌프란시스코를 담아내고 싶다는 사장님의 철학이 매장 가득 풍겨 나오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매장 정보에는 ‘양식’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우리가 경험한 쌤쌤쌤 매장은 단순히 양식 식당으로 불리기엔 아쉬움이 크다. 보통 양식하면 떠올리는 파인다이닝 식의 식사와는 확연히 다른 포인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고기 맛 하나 혹은 원재료 맛 하나에 집중하여 세밀하게 계산된 맛을 구현하는 파인다이닝과는 달리 쌤쌤쌤의 음식은 마치 미국인 엄마, 이모가 나를 위해 가장 좋은 재료로 아낌없이 정성껏 만들어 주는 홈메이드 느낌이 강하다. 정확함 보다는 푸짐함, 깔끔함보다는 정성스러운 터치가 더해진 미국 컨셉의 정이 쌤쌤쌤이 브랜드로 표현하고 싶었던 ‘직접 경험한 샌프란시스코’의 맛과 매력이 아닐까.


글을 마치며,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의 시선과 경험이 짙게 담긴 브랜드를 체험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나라의 특징을 발견하고 감성을 떠올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운영하는 사람의 시선이 담길수록 왠지 모를 친근함이 드는 이유는 브랜드를 형성하는 요소마다의 추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디테일 때문이 아닐까. 그런 디테일이 소소하면서도 새롭고 정겨운 용리단길만의 색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더 자세한 글을 읽고 싶다면?

> '브랜딩 초보를 위한 브랜드 산책'을 읽어보세요! 

- 교본문고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907625


당신의 발품, 만들어질 새로운 미학

글을 읽고 와닿는 브랜드가 있다면 직접 방문해 보세요.

발품의 수고로움으로 발견할 수 있는 당신만의 미학이 있을테니까요 :)


- '발품의 미학' 전체 브랜드 리스트 : https://kko.to/73lffol4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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