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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Apr 25. 2022

달리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아닌 걸 알면서도 계속 하는 이유.


당연히 벽에 구멍을 내본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도 이미 알지 않나? 그런데도 그는  그런 낡은 연장을 짊어지고 다니는 걸까?


"달리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그게 이유였다.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달리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아닌 걸 알면서도 계속 하는 것. 아니면 달리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게 맞는 건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


미로안의 치즈정거장 C 주변에서 풍족한 치즈를 먹으며 (그 치즈가 어디서 왔는지 왜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무 걱정 없이 살던 헴과 허. 그러던 어느날 치즈가 사라졌다.


둘은 낙심하며 며칠을 보내다 결국 허는 새 치즈를 찾아 떠나고 헴은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그냥 그 곳에 주저 앉아 무작정 새 치즈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안되겠다 싶어 헴은 새 치즈를 찾으러 떠나기로 결심하고 나서려는데 망치와 끌을 발견한다. 아주 오래 전에 허가 망치와 끌로 미로 벽에 큰 구멍을 내며 치즈를 찾아다니던 것이 생각났다. 헴은 망치와 끌을 챙겨 미로속으로 떠난다.


새로 만난 친구가 무거운 연장은 왜 가지고 다니냐고 물어보자 헴은 말한다.


"벽에 구멍을 낼 때 써야 하니까."


"그게 효과가 있었어?"


"당연히 그랬지. 이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최고급 끌이라고!"






무언가를 하는 것 같은데도 항상 제자리인 이유는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뭔가 막연히 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아 관성적으로 그 일을 할  뿐, 사실 그 일은 어떤 효과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달리 할 게 없어서 무거운 연장을 가지고 다니는 헴을 보며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일이 뭔가 잘 안되고 답답한데 그냥 매일 하던 걸 하고 있는 내 모습. 달리 할 게 없으니까.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점검도 해보지 않고, 아니 해보려 하지도 않고 그냥 무작정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아무거나 열심히 하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엔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해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웃풋이 안 나오는 이유는 인풋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풋이 잘못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풋이 잘못 된 경우에는 잘 못 된 아웃풋이 나올 수도 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한번씩 멈추고 숨고르고 쉬며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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