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8년차 두 아이 엄마인 난 뭘 해야 할까?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날 움직였다. 경력단절된 8년의 시간동안 항상 무언가를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지 실제로 무언가를 하려고 움직여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날 움직인 것은 내 자아를 찾아야겠다는 욕망도 내 꿈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도 아니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살지? 라는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에 대해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매월 꼬박꼬박 남편은 성실히 월급을 갖다줬고, 크게 낭비하지 않고 사니 부족하지 않았다. 막연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해왔다.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본적은 없는 듯 하다. 중국어를 전공했으니 아이들을 가르치던지 통번역을 하며 살지 뭐. 그냥 이정도였다.
그런데 작년 겨울즈음. 남편이 회사를 더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당장 잘리는 것은 아니지만, 힘들다고 했다. 오래 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고 버틸때까지 버티다 나오느니 한살이라도 더 젊을 때 나와서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남편은 마흔한살이다. 그런 생각은 막연히 해 오긴 했다. 언젠가 남편은 회사를 나올거고 그때가 되면 다른 일을 해야겠지. 그런데 내가?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남편은 뭔가를 같이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는 나도 같이 경제활동에 참여를 해야 하지 않겠냐 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런 의미이기도 했다. 남편이 나 혼자 이걸 감당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는 억울한 마음이 앞섰다. 8년전 첫째 아이를 낳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일이 생각났다. 첫째 아이를 친정에 맡기며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우리 부부에게도 친정엄마에게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부부 둘 다 새벽 6시 전에 일어나서 한시간 반 이상을 전철타고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1년간 육아휴직을 어렵게 얻었지만, 육아 휴직이 끝나고 나서도 복직할 엄두가 안 나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잘 다니던 회사 그만 두고나니 이제와서 돈을 벌라고? 내가 무슨 수로? 그동안 경력단절된게 몇년인데?
남편이 미웠고 억울하고 화가났다.
그런데 마냥 화만 내고 있을수가 없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둔다는 것이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1년뒤, 아니 단 몇개월 뒤 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중국어 교습소를 하는 통번역대학원 준비할 때 같이 공부했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뒤 찾아가 교습소를 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저것 물었다. 그런데 왜 그전에는 이럴 생각을 못한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동안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몸이 움직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날 바로 언니가 소개해준 지점장님과 통화가 되었다. 지점장님은 교습소를 넘기고 싶어 하는 원장님이 계신데 그 교습소 이어받을 생각 없냐고 물어왔다. 나는 다음날 바로 그 교습소로 찾아가 원장님과 상담을 하고 그 교습소를 넘겨 받으리라 마음의 결정을 했다.
단 일주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8년간이나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남편이 퇴근하길 기다렸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교습소를 이어받기로 한 일을 이야기 했다. 남편도 분명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경험도 없이 교습소를 내겠다니 겁이났나. 당장 임대료도 꼬박꼬박 내야하고 비용도 들어갈텐데 좀 더 경험을 쌓고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너무 화가났다. 나를 불안해 미치게 할때는 언제고, 이제 일 좀 해 보겠다니 또 저렇게 반대를 하네? 어쩌라는 거야 도데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습소를 하면 아무래도 엄마가 종종 오셔서 아이들을 챙겨줘야 할 것 같아 엄마에게 먼저 알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엄마도 반대를 하신다. 아. 안되려나 보다..
교습소 원장님께 전화해 못 하겠다고 하고 다시 나는 좌절했다. 무언가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리고나서 한달 뒤 코로나가 터졌다. 아찔했다. 교습소를 넘겨받았더라면 시작과 동시에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10살 5살 아이 둘과 집콕생활을 시작했다.
어쩔도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집에 있고 아직은 엄마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다. 중국어 학원 강사자리라도 알아볼 요량이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도.
남편은 어쩔수 없이 퇴사를 무한 연기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어쩌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도데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쉬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작년 겨울 이후 맘 편히 드라마 한편을 본적도 없다. 집에 있는 내가 마치 죄인 같다. 하루종일 쉴새 없이 아이들 삼시세끼 챙겨주고 공부봐주고 놀아주고 집안일 하느라 너무 힘든데도 이상하게 죄책감이 든다.
유튜브에 있는 돈 벌 수 있는 팁을 주는 영상들을 모조리 듣기 시작했다.(집안일 하며 이어폰을 끼고 살아 듣는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블로그, 유튜브, 인터넷쇼핑몰 등등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블로그를 시작해 보라고 한다. 이제는 내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
블로그를 열었다. 무슨 콘텐츠를 써야 할까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엄마표로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런데 블로그 세상에는 엄마표 영어 고수들이 너무 많다. 내가 낑길 수 있는 공간조차도 없는 듯 하다. 그동안 엄마표영어하며 블로그에 기록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아무리 만원 전철이라도 내가 발 하나 디디면, 엉덩이 밀고 들어가면 내 한 자리는 생긴다 라는 김미경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이것말고는 딱히 방법도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블로그 글쓰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돈은 아직은 하나도 못 벌었다.
돈 벌기 위한 노력들을 기록해 나가보자고 다짐하며 설레임 반, 걱정 반으로 이 글을 쓰고있다.
과연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