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은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 인식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강해서 잠을 잘 들지 못했다. 자려고 누우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났다.
‘ 언젠가 죽어 - 부모님은 언젠가 내 곁에 없어져 - 나도 언젠가 죽어 - 죽으면 어떻게 느껴질까? -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 텐데 -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았어 ’
이러한 생각은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전에 나는 생각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불안함은 일찍 잘 수 없게 했다. 매일 자는 시간이 고통이었다. 오늘도 얼마나 생각이 유지될지 모르는 불안함은 자기 전 상태에서는 유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고 바로 자겠다고 다짐했다. 이 이후로 느낀 가장 큰 사실 하나는 생각은 내 마음대로 컨트롤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연하듯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불어나기 시작했다. 매번 나는 생각인데 질리지도 않고 불안해했다. 이런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못했지만. 그저 내 일상 중의 하나였다. 남들보다 자기 전에 하나의 행동이 더 있었을 뿐이다.
그 당시의 나는 그런 것이 일상 었다. 그래서 내 초등학교 때 가장 큰 기억 중 하나가 이 죽음에 대한 불안함이다. 다행히 이러한 현상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하지만 몇 년간 지속된 이 행위는 아직도 명확하고 깊게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이러한 것들이 쌓이면서 불안함이 커져왔던 게 아닐까 싶다. 누구든 마음속에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들의 크기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을 인식하는 순간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이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불안함을 한 번이라도 인식하게 되면 그 이후는 그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내 인생을 내준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인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해진 느낌이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