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slump : 운동 경기 따위에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가 길게 계속되는 일.
사전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운동선수와 같다. 슬럼프라는 시기는 누구나 올 수 있다. 문제는 시작부터 슬럼프 같은 것이 오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애초에 이룬 것도 없고 해 나갈 것도 없어진 상태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장 놀랍고 신기한 것은, 이전의 나를 현재의 내가 느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정말 이전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내가 정말 그랬나?
이러한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자신감과 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어떠한 것도 무기력해지고 안정적인 것들만 찾게 된다. 안정적인 것만을 원하는 것은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다. 단거리 선수처럼 뒤도 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다가 멈추게 되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온다. 다시 달려야 하는데 서 있는 것이 최대한의 시도인 상태가 된다. 그것을 아는 자신은 더욱더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의식은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뒤로 달리듯 점점 멀어진다. 달리는 것은 물론, 걷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안정적인 것은 사실 필요악과 같다. 필요는 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기 어려워진다. 시대가 변하고 예술의 의미도 이전보다 달라졌지만 안정감은 새로운 창작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예술가들이 성공 후에 극심한 매너리즘과 자기 복제에 빠지는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전보다 나를 더 생각하게 되는 상태가 된다. 무턱대고 나아가던 순간에는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어떤 취향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멈춘 순간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이다. 여태까지의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했는지 두 번 정도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작은 충격에도 민감해지고 시도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 어떤 것보다 안정적이고 유지되는 것에 초점을 두며 계산 없이 무턱대고 하는 행동을 멀리하게 된다. 정반대의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