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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mee June Youn Mar 21. 2020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11-1)

11월 6일 20시,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콜라보프로젝트 1.

이지나 연출, 정재일 음악감독.


이 극을 선택했던 건 이전에 이지나 연출이 연출을 맡았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뮤지컬에 대한 호평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곡이나 무대 구성이 좋았다는 평들과, 시아준수가 선택했던 뮤지컬이라는 게 크게 작용했다. (그의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실력은 신뢰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음악감독 정재일이 새로이 참여하면서 일반적인 뮤지컬보다는 음악극을 표방한 공연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토록 극적인 스토리라인을 좋은 연출가와 음악감독이 어떻게 풀어냈을지를 목격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쉬운 공연이었다. 

연출과 음악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모든 요소가 좋았다고 해도, 전체적인 공연에 누를 끼칠만한 너무 큰 흠이, 이 공연에는 있었다. 공연장 그 자체였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면 안 된다지만, 공연은 공연장 탓을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필수적이다. 어떤 뻑적지근한 재료를 섞어 배합을 한다 해도, 막상 담는 그릇이 너무 별로면 전체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특히 공연은 더 그렇다. 음식이야 플레이팅이 별로여도 보는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공연은 다르다. 음향 설비, 조명 설비, 무대 세팅 하나하나가 퀄리티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전에 어느 상사가 내게 '퀄리티는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말했듯이, 공연에서도 디테일 하나하나가 너무 중요하다. 디테일까지 따질 것도 없다. 조금이라도 좋은 스피커, 좋은 조명 쓰는 게 공연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 너무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 대학로 유니플렉스의 이번 세팅은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웠다. 이전에 1관에서 공연을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본 것이 기본적인 세팅인지, 이번 공연에만 해당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마 기본적인 세팅일 것 같은 느낌이라 아쉽다.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우선 큐브형 무대에 거의 어떤 변화도 주지 못하는 무대 장치가 아쉬웠다. 위에 천이나 가벽 하나, 그림 몇 점을 걸어두는 정도 외에는 거의 아무 변화가 없었다. 대극장처럼 버라이어티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 단조로움이 이 극에 필요했다면 오히려 칭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극은 작은 공간에서도 격정적인 분위기를 끊임없이 선사해야 하는 극이었고, 그런 면에서 무대의 단조로움이 극에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덧붙여 바닥 외에 위, 양쪽 옆 3면을 채우고 있었던 조명이 달린 회색빛 철제 골조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카고>와 같이 기본적으로 화려한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들의 이야기이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곳은 격조있는 갤러리, 작가의 작업실, 섹시한 분위기가 흐르는 클럽, 심지어 병원이기까지 해야 하는 공간이었는데, 회색 철제 봉들이 그 공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 조명을 그렇게 설치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조명이 눈에 띄어야 하는 콘서트 무대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명이 멋지게 쓰였을 리 만무하다. 굳이 꼽으라면 여러 개의 핀 조명을 활용해 그림자를 만드는 연출 정도가 볼 만했다. 그 외에 무대에 전반적으로 패턴을 끼얹어서 추상적이고 묘한 분위기를 꾀하는 연출이 있었는데, 그것도 무대의 가벽을 크게 변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빔을 쏘다보니 뭔가 조악해보였다. 가벽의 사이에 틈이 있었고, 무대 전체를 커버하는 게 아니라 일부분에만 세워져 있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음향인데, 좋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관객석 중에서도 행으로도, 열로도 정 중앙에서 관람했는데, 통상 그쯤 되는 자리가 음향이 좋은 편일 것이다. 그럼에도 크게 좋은지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라이브로 연주를 할 게 아니라면 음원 자체가 좋아야 하는데, 음악을 음향이 너무 못 따라갔던 것 같다. 음원의 질의 문제인지, 음향 시설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주변머리에 신경을 쓰다보니 사실 공연 자체에 몰입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 와중에 배우들의 연기는 나름대로 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나, 인물 개개인의 스토리도 어느 정도 전달된 것 같고.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더 좋은 극장에서 이 극을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

총평을 하자면 결국 이거다. '공연은 공연장 탓을 해야 한다,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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