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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mee June Youn Mar 21. 2020

인테리어즈 (11-3)

11월 17일 15시, 명동예술극장

이 공연을 보게 된 건 순전히 행운이었다.

못 들어 본 극단, 못 들어 본 제목, 변변찮은 주머니 사정에, 실은 이 공연에 크게 혹하지 않은 상태였던 나는, <알리바이 연대기>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내 앞에 있던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듣게 됐다.

"나 <인테리어즈> 예매해놨어, 재밌을 것 같아서." "나도."

의외로 재미있으려나? 라는 생각에 고민하다 예매를 시도해보니, 인터파크에서 예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명동예술극장 웹사이트에서는 이미 거의 매진사태인 거였다. 실수할 뻔했구나, 싶어 부랴부랴 나와 사촌동생(이라고 쓰고 나의 공연 메이트라고 읽는다)의 티켓을 급히 예매했다.


보고 나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 봤으면 후회를 했을 것 같다. 정말로.

전달 자체는 명료하고 쉬우면서도, 그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공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문법으로 삶의 일부를 잘라 보여주면서도, 그 사람 한명 한명에 대해, 혹은 그 극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의 가지를 치게 만드는 극은 분명 좋은 극일 것이다. 이번 극은 그런 극이었다. (써놓고 보니, 내가 단편소설에 매혹되는 이유 중 하나를 그저 풀어놓은 것 같다. 공연과 단편소설은 분명 닮은 데가 있다. 삶의 일부를 툭 잘라 멋진 방식으로 내 앞에 펼쳐놓는다는 면에서.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메시지에서도, 기법적으로도 새롭게 던져 준 부분이 많았다. 내가 그걸 목격할 수 있었던 관객이라는 것이 기분 좋았다.


가장 새로웠던 면이라고 한다면, 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음악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운드 말이다. 굳이 활용되는 소리라고 한다면, 추운 겨울바람을 연상시키는 휙휙거리는 소리, 인물들이 전축을 틀 때마다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정도였다. 그 외에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있었는지도 모르게 쓴 효과음 정도일 것이다.


관객들은 한 면의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한 집안의 풍경을 그대로 목도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풍경에 순간 어리둥절할지 모르지만, 실상 그건 상당히 관음적인 구도이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배우들)은 관객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렇게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집 안을 왔다갔다 하는 것뿐이지만, 창문 밖을 내다보는 배우의 표정, 벽을(사실은 관객을) 바라보며 머리, 겨드랑이, 성기 부근에까지 편안하게 향수를 뿌리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관객은 서서히 자신이 '이 집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극의 대부분을 채우는 유일한 소리는 '나레이션'이다. 그 나레이션은 기본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해설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지적 작가에 가깝다. 그(녀)는 그 인물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그 날의 저녁 메뉴를 좋아하는지, 그가 말을 아끼면서 실상 무슨 음탕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심지어 과거에 그들이 무엇을 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까지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건조한 어조로 전달하는 게 또 다른 묘미이다. 어쩌면 소설을 대본으로 삼은 낭독극의 나레이션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겨울의 한복판, 야생동물이 돌아다니는 한적하고도 외롭고 위험한 어느 지역의 외딴 집, 눈발을 동반한 매서운 바람, 어두운 밤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마치 검은 무대 속 유일하게 조명이 닿는 집안의 모습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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