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끝까지 읽어본 적 없는 디자이너의 고군분투 이야기
나는 교과서를 끝까지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도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얼마 전 가족 여행에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고3 시절, 내가 “공부는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중요한 시기에 학원을 그만두다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참 막막했을 것이다. 어찌어찌 좋은 회사에 들어와서 다니고 있지만 만약 내가 책을 더 잘 읽었다면 훨씬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책과의 인연도 그리 깊지 않다. 학창 시절 유행하던 소설책조차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이런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걸까? 의지력이 부족해서일까?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우연히 웹소설 하나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몇 개월째 매주 새로 올라오는 회차를 기다리며 읽고 있다. 아마 종이책으로 따지면 수십 권에 해당하는 양일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단지 재미있는 책을 찾지 못해서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서 흥미로워 보이는 책들을 또 사봤다. 한 달 무료 체험을 제공하는 밀리의 서재도 구독해 봤다. 하지만 흥미를 느낀 책들은 책장에 장식처럼 남았고, 밀리의 서재는 한 달도 채우지 못한 채 해지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책을 읽지 못할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며 몇 년 전, 독서 관리 앱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책을 읽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서비스는 출시되지 못했고, 제대로 운영하지도 못했다. 만약 이 서비스를 출시했다면, 내가 독서를 할 수 있었을까? 이를 확인하고자 다양한 독서 관리 앱을 사용해 봤지만, 역시 독서를 해야 독서 관리도 할 수 있는 법이었다.
내가 책을 읽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아이디어를 메모장에 정리해 두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나와 비슷하게 책을 읽고 싶지만 읽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조사해 보니 3명 중 1명이 책을 읽고 싶어 하지만 잘 읽지 못한다고 한다. 의외로 잠재 독자가 많았다. 이 사실이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내가 적어둔 아이디어와 독서 습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나의 답에 도달했다. 이 방법이라면 나도 책을 읽을 수 있겠는데? 그렇게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던 두 친구가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했고, 그 친구들이 또 다른 능력 있는 동료들을 소개해주어 현재는 7명이 모여 함께 개발하고 있다.
서비스를 준비하는 동안 외부에서도 독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에 평소 관심이 없는 친구가 한강 소설을 어떻게 구해서 읽으면서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화제가 되고, 텍스트 콘텐츠의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도서 박람회에 가보니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많았고, 출판사와의 미팅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출판사 업계의 오픈 톡방에 참여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잘 몰랐던 분야의 세상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정주영 창업 경진대회에 참관하며 창업자들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직접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 회사에서 해결하던 서비스의 작은 문제들이 너무 사소해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이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만드는 독서 앱이 세상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서비스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독서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책과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책을 읽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독서를 시작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작은 성취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디자이너에서 창업자로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가고, 더 넓은 세상을 어떻게 느끼며, 어떤 방향으로 이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지 계속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