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거지가 된다니 가슴은 아프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우리는 결국 죽음의 문턱에 이른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서로 다투지 않는다. 법구경 6
10년 이상 만난 모임이 하나 있다. 몇 년간 못 만나다 우연히 모임이 열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한 분께서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에 다녀오셨다며 거기에서 인근 타운하우스에 사는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병원에 일정 금액 이상을 기부한 경우 VIP로 진료 우대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말씀하시며 "하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병원의 VIP로 세계적인 의료진의 진료를 받아도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다.
노후에 가장 인기 좋은 곳이 빅 3나 큰 대학병원 인근에 있는 신축 아파트라고 했다. 하지만 거기 산다고,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서 120살까지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죽음은 가진 자, 못 가진 자, 착한 자, 나쁜자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하나보다.
헌병으로 군생활을 한 나는 매일 아침 사고사례를 확인해 출력하고 보고했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매일 어이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는다. 회사에 올라오는 부고장은 매일 십여 개 이상 된다. 먼 거리를 운전하며 출퇴근하다 보면 죽음이란 것이 멀지 않다는 것을 더 체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고라니가 얼마나 많은 지는 모르지만 거의 매일 한 마리의 고라니나 작은 들짐승들이 내 출퇴근길에 누군가의 차에 치여 죽어 있다. 출근길에 만난 접촉사고 차들의 숫자를 세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들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렇게 죽음은 먼 남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지금처럼 아파트가 폭등하던 때가 있었다. 신용대출 금리가 2% 남짓했던 적도 있었다. 공무원은 연봉의 2배 가까이 대출이 나오기도 했다. 누가 시작한 지 모르지만 모두들 미친 듯 대출을 받고 실물자산을 사기 시작했다.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자체로 손해인 시대가 왔었다. 인플레이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자체로 손해다.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가 되어 버렸다. 다시 세상이 그런 분위기로 흐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은 요즘이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이 말은 염세적으로 살라는 게 아니다. 아등바등 어떻게든 재산을 불리려 애를 쓰거나, 서두르다 실수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내 마음대로 또는 상대의 말을 듣다 잘못됐다고 서로 탓하는데 소중한 삶을 낭비하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겠다. 우리 삶은 영원하지 않는데, 우린 그걸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으면 후회한다. 어느 영화에서 처럼 남은 시간이 표시되는 날이 온다면 삶은 더 알찰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면서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고 늘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면 우리 삶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영원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