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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Apr 06. 2022

봄은 왔고, 노래만 오면 돼

눈이 오잖아

음악 스트리밍 앱의 월정액 요금을 내고 있지만, 저장되어 있는 플레이리스트는 없다. 봄날의 노래라며 추천리스트에 뜨지만 무시한다. 대신 차트의 곡들을 전체듣기 해 놓으면 아이가 어느 한 곡에 꽂힌다. 그때부터 아이는 정말 토 나올때까지 반복 재생을 요구한다.


그렇게 난 또 아이 때문에 나만의 BGM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가 보다. 이젠 의식적으로 아이 때문에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구나 나처럼 아이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개인의 취향을 잃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 노래도 좋고, 저 노래도 좋고. 차에서 잠시라도 노래를 듣는 건 갑자기 마음의 여유를 수혈하는 일이다. 출퇴근길 혼자 듣다 내게 들어오는 노래가 있으면, 아이에게 소개한다. 이 노래 어때?


그래서 아이는 유아기에도 발라드를 불렀다. 나는 아이 때문에 특별한 취향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싶다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의 취향대로 노래를 배웠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학생이던 시절까지는 노래가 하나 마음에 들면 그 가수의 앨범을 모두 샀다. 4시간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듣고, 주말에는 걸으면서 들었다. 대학교 때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한 땀 한 땀 선곡하여 다운로드해 준 MP3 파일이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다.


핸드폰 하나면 원하는 노래 모두 쉽게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왔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가 없다니. 또 개인의 취향이 없다는 슬픈 인증을 하고야 만다.


이럴 바엔 앱 월정액을 해지할까? 경제 관련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이런 지출도 줄이라고 나오던데. 하지만 난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음악과 더욱 멀어지는 기분이 별로라서.


요즘 자주 듣는 노래 중 10살 아들에게 추천한 노래는? 이무진과 헤이즈가 부른 <눈이 오잖아>이다.


이제 인정하자
수많은 끝도 끝났어
찬란한 그때의
우린 이젠 없으니까
돌아온 계절
남아있는 건 없으니까
추억을 지우는 게
내 이별의 숙제
창문 너머
그저 바라봐 그때 마침
눈이 오잖아
우리 처음 만난 그 밤에도
한참 동안 눈이 왔잖아
지금 내가 생각나지
않을 리가 없잖아


템포가 빨랐다 느려졌다 하는 나름 발랄한 멜로디. '추억을 지우는 게'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라 슬픈 가사. 게다가 '지금 내가 생각나지 않을 리 없다'는 집착과 미련 쩌는 궁상. 언제부턴가 이런 이별 노래가 좋다. 그래서 아들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목 놓아 이별 노래를 불렀다.


그래도 그렇지. 일부 지역에 벚꽃이 휘날리는 이 4월에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  눈 노래를 듣고 있다고 말하는 뒤쳐지는 반항심은 무엇인지.


어쩔 수 없다. 온 세상 사람들 다 사랑스러운 봄을 좋아해도, 난 현재 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눈도 대충 보면 벚꽃하고 비슷하니까 계속 이 노래를 BGM으로 써도 되겠지?


4월이 되자 누구나 그렇듯, 아들 역시 <벚꽃엔딩> 가사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다만 '봄바람 휘날리며어어!!! 흩날리는 벚꽃 잎이이이!!! '의 '흩날리는'을 몇 년째 '연날리는'으로 발음하고 있다. 정정해 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연 날리는 노래>로 알고 느끼는 동심을 파괴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엄마 때문에 강제로 암송하게 된 사랑 노래, 이별 노래. 가사 뜻을 이해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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