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1. '아버지가 죽었다.'
정지아 작가 '아버지의 해방일지'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고 든 생각은 '뭐야, 이미 마지막이 보이네?'였다. 장례식으로 넘어간 순간, 이 책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 3일간의 여정을 쓰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책이 클리셰로 느껴졌다. 덮을까?
하지만 이 책은 독서모임에 읽어가야 할 책이다. 덮을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래서 계속 읽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 원래 그런 게 쉽지 않지. 내가 또 섣불리 책을 덮으려고 했구나.
2.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딸 '아리'가 아버지 '상욱'의 조각들을 만나는 3일 동안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다. 하지만 제대로 노동을 하지 않는 우스운 인물이다. 여기서부터 이미 재밌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아버지는 참 올곧으면서도 새롭다.
이 책은 딸이 아버지의 면면을 되짚고, 다시 생각하고, 새롭게 깨닫는 과정을 따라간다. 아버지가 32면체였다면, 한쪽만 보고 있던 딸이 아버지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모양새랄까. 아리는 3일간 아버지 삶 면면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만난다.
3. 사실 어떻게 아버지를 사랑만 할 수 있을까. 존경만 할 수 있나. '그냥' 아버지여도 안될 판국에 상욱은 '빨갱이'였다. 그 말은 연좌제가 있던 시대에 가족의 삶에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상욱조차도 빨갱이 4년에 평생 발이 묶였다. 상욱과 상욱을 대하는 세상에 상처를 입은 주위 인물은 동지애를 가진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작은아버지와 아리다.
하지만 이 둘만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를 마냥 사랑하고 존경한 사람도 있다. 아버지 덕분에 다음을 준비한 사람도 있다.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도 있고, 아버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음에도 아버지의 평생을 함께 한 사람도 있다. 몇십 년 동안 아버지를 아물지 못한 상처로 생각하면서도, 친구로 살아온 이도 있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깊은 사람, 의무와 배려로 살아온 사람, 그저 함께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 사람, 사람, 사람... 결국 오만 사람이 상욱 삶의 기록이 됐다. 참 단순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까지 지난하게 힘들게 했지만 또 그들에게 끝까지 사랑받은 아버지.
4.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가 궁금해졌다. 시사인 인터뷰가 있더라.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979
꽤나 자전적인 소설이란 걸 인터뷰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째 너무 와닿더라. 인터뷰 중간에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못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많은 인물이 입체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일 입체적인 인물인 아버지조차도 그렇다.
하지만 딱 좋았다고 생각한다. 표면장력 같은 느낌으로.
5. 인터뷰까지 읽고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용서도, 이해도 사랑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는 아버지를 끝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랑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삶도 있으니까.
인터뷰 말미에 언급된 정지아 작가님의 대하소설이 기대된다. 당사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으니까 말이다. 언제쯤 집필을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