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에도 글은 내 친구였다.
잊을만하면 하는 교내 논술대회.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다른 아이들은 일찌감치 원고지를 책상 한 편으로 밀어둔 채 머리를 팔 사이로 파묻었다.
제대로 내는 사람은 서른 명 중 대여섯 명. 그렇게 논술대회 때마다 나는 떠밀리듯 상을 탔다.
“넌 인마, 글 하나는 참 잘 쓴다.”
지나가듯 선생님이 하는 말에 나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랑스러운 글이 아니었는데, 난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들이 하지 않아 우연히 탄 것뿐인데 칭찬을 받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참 사람이 교활한 건 그 어색한 웃음 뒤에 우월함의 싹이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글도 상을 타는데, 진심을 다해서 쓰면 얼마나 잘 쓸까.’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등 뒤를 기어올랐다.
정작 그때까지 나는 내 글을 다시 읽어 본 적이 없다.
여름방학이 지난 어느 가을 가까이.
역사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아인아. 너 이번에 있는 학생 역사 논문 공모에 나가라.”
지금이야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되어 자는 사람을 찾기 힘들지만,
우리에게 있어 역사시간은 누가 먼저 자는지를 비교하는 시간이었다.
곧잘 역사시간은 나와 선생님의 질답이 되었고, 선생님은 논술대회로 몇 번 상을 탄 나를 기억하고 말씀해주셨다.
타인이 나를 진심으로 높게 평가해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공부는 보통에, 체육은 공이 내게 오는 것 자체가 무서운 도서관 지킴이.
기억에 남을만한 것 없는 내가 관심을 받은 첫날이었다.
어떻게 승낙했는지, 선생님이랑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생각나는 것은 그때의 감정뿐, 최선을 다해서 무조건 상을 타야겠다는 일념이었다.
그 후 두 달 정도, 나는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다.
산더미 같이 책을 쌓아두고 글을 썼다 지우는 매일이었다.
직접 아무도 찾지 않는 폐위된 왕묘를 찾아가 묘 한편에 기대 다시 글을 썼다.
그렇게 30페이지 정도 되는 내 인생 첫 논문이 완성됐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수백 페이지 논문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글을 인쇄해 손에 쥐었을 때의 그 두꺼움을 잊을 수 없다.
도서관에서 논문을 뽑은 뒤, 선생님께 논문을 제출하러 가는 길이었다.
논문의 그 무게가 현실감이 들지 않아 문득, 첫 장을 펼쳤다.
정말 지독하게 못 쓴 글이었다.
정확히 어떤 글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그 글이 어린 내가 두 달 여를 바친 글이라기엔 너무나도 초라했다.
너무 평범했고, 도전적이지도 않았으며, 발상의 전개도 빈약했다.
학교 계단참에 앉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이 글은 논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잡기였다.
결국 두 번, 세 번쯤 글을 읽었을 때
충격은 곧 부끄러움으로 바뀌었고,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몸을 사로잡았다.
석양이 길게 걸치는 모두가 하교한 저녁 교실.
누구도 볼 사람이 없지만, 혹여 누군가 와서 이 글은 뭐냐며 읽어볼까 봐,
내 글을 높게 평가한 역사 선생님의 실망한 얼굴을 보게 될까 봐,
아니, 그 역사 선생님이 이제는 나를 비웃게 될까 봐.
마치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리는 듯 나는 황급히 학교에서 나왔다.
그리고 분리수거함에 논문 뭉치를 던져 넣었다.
잠시 운동장을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논문 제출 마지막 주였다.
실제로 내 글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는 훨씬 잘 쓴 글이어서 상을 탔을지도 모른다.
전부 흙이 되었을지, 다른 종이가 되었을지 모르는 지금에 와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정말 내 글은 어땠던 걸까.
나는 나를 그날 처음 마주 보았다.
그 전까지도 글의 퇴고는 해왔지만, 그건 해야 하니까 하는 기계적인 퇴고였다.
그 날 계단참에서 난 진심을 다해 쓴 내 글을 처음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이 내 전부를 담아 만들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게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글도 상을 타는데, 진심을 다해서 쓰면 얼마나 잘 쓸까’
대충 쓰고 넘긴 글로 상을 타며 올라간 내 우월감이 어쩌면, 최선을 다해서 쓴 내 글에 의해서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나는 떠밀어져서 상을 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니까.
최선을 다한 나를 마주 본 나는 그래서 평가받기를 포기했다.
아름다운 청춘을 그리는 작품들을 가끔 보게 되었다.
눈물을 흘릴지언정 최선을 다한 자신을 바라보고 도망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런 작품들 말이다.
작품 속 만이 아니라, 어디나 그런 사람은 있겠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분명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유명하던 아니던.
왜냐면, 나와는 다르니까.
내 글을 마주 본 것만으로 무서워 분리수거장에 던지고 달아난 중학생과는 다를 테니까.
아직까지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해 자신이 잘하는 것도 정의 내리지 못하는 스물일곱의 무명의 남자와도 다를 테니까.
자기 자신을 마주 보고 당당하게 심사대에 올리는 그들은
분명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