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렇지만 한 가수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리고 그 가수가 데뷔한 지 10년이 될 때, 나는 고3이었다.
10주년은 기념할 만한 날이니 가수가 나를 기억하게 할 만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늘 가수가 음악을 만들어 주니, 반대로 팬이 음악을 만들어주면 둘도 없을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런 도발적인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음악 하나 가지지 않은 채 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실현해보고 싶었다.
어딘가 홀린 것처럼 그럴듯한 프로젝트명을 붙여 모집글을 올렸다.
겨우 구색만 맞춰 써낸 모집글에 이끌린 팬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나만 빼면 말이다.
그들 모두가 참 부러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들이 자신을 부른 사람이 어정쩡한 노래실력과 별 것 없는 지식만 가진 사람인 걸 알면 어떻게 볼까.
그런 생각을 차마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모였고, 나는 일을 벌였다.
나는 총괄 프로듀서라는 직함을 가지고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보컬의 오디션을 보고, 내가 가장 믿는 실력을 가진 친구를 불러 악기를 맞췄다.
작곡, 작사 조의 스케줄까지 조정하다 보니, 정말로 내가 무언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수가 감동할 선물을 줄 수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있을 수 있다. 그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그에 맞춰 앨범도 점점 완성에 가까워졌다.
보컬과 악기는 충분한 퀄리티로 올라섰다.
곡과 가사가 나오기만 하면, 언제라도 레코딩을 할 수 있었다.
나도 제대로 작성해본 적도 없는 오선지를 잡고 작곡에 착수했다.
당연히 잘 될 리는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뭐 하나 제대로 가진 거 없는 내 글에 끌려 온 사람들에게 실망은 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그래도, 조금은 볼만한 곡을 만들었다.
이제 내 곡을 공유폴더에 넣고 레코딩만 기다리면 됐다.
하지만 이 최선을 다한 몸부림이 보잘것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내가 속 빈 강정이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내 곡이 앨범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이 곳에 있어도 될 자격이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휘저었다.
어느새 불안한 생각은 어정쩡한 자신을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되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한 페이지 정도의 사과문을 곡 대신 공유 폴더에 올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친구가 계속해서 나를 찾았다. 다른 사람들의 카톡도 물밀듯 들어왔다.
나는 친구를 제외한 사람들을 차단했다.
결국 또, 나는 어정쩡한 나를 마주 보지 못한채 도망쳐버렸다. 그런 나를 들킬까봐.
비겁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비겁자다.
지금 그들을 만난다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바짓춤의 핸드폰이 계속 울렸지만 그 조차도 마주보지 못하는 비겁자가 되었다.
해가 지나고, 도망간 나에게 친구가 앨범을 내밀었다.
내가 사라지고 나서 많은 이들이 수습해 앨범은 성공적으로 나와 가수의 손에 쥐어졌다.
그래도 발제자인 나에게 결과물은 줘야 할 것 같다며 친구가 따로 빼둔 앨범이었다.
나는 그 앨범을 듣지 못했다. 앨범조차 마주 볼 수 없었다.
재능이 가득한 이들이 만든, 어설프지만 서로 제대로 마주 보고 만든 가수를 위한 선물이었다.
자기 자신의 무능력함조차 인정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내보이지 못한채 도망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앨범은 지금까지 이삿짐들 사이에 한 번도 듣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7년이 넘게 지난 오늘, 이 글을 쓰며 어떻게 연이 닿게 된 기타리스트가 생각나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그는 CM 음악 작곡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스튜디오에 있다고 했다.
자신은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취업을 했다는 내 소식에 축하를 전했다.
프로필 사진 속 나와 같은 나이인 그는 자신을 확실하게 바라보는 참 멋진 음악가가 되어있었다.
핸드폰이 꺼지자 7년 전 속 빈 강정인 것을 마주 보기 두려워 도망간 겁쟁이가 비쳤다.
울고 싶은지 자신을 비웃고 싶은 건지 모르는 비겁자가 겨우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축하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을까.
나만 후회와 자조감 사이에 표류해 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한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