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정작 연락할 사람은 없으면서.

by 아인

근래 '빼앗긴 아싸'라는 글이 인터넷에 떠도는 걸 봤다.

연애도 하고, 참여한 카톡도 많지만 자신이 아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리플의 '진짜 아싸'들은 반 농담, 반 진담으로 그들의 기만을 성토했다.

'하루 온종일 있어봐야 카톡 하나도 안 오는 게 진짜 아싸지'

'생일날 SNS만 내 생일을 추천해

이런 느낌의 댓글들이 게시판의 서너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기준으로 따지면, 나는 소위 '아싸'는 아닐 것이다.

카톡은 언제나 바쁘며, 집에 있는 시간보단 밖에 있는 시간이 많다.

주말에도 늘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회생활도 못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하루를 보내며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아싸'를 아는 이들의 기준에 비춘다면 난 '아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인싸'냐고 묻는다면, 인싸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난 뭘까.

그저 인싸와 아싸 사이에서 어설프게 사회생활 흉내만 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뭘까.


예전에는 아싸보다는 왕따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말을 하는 것보다는 책과 대화를 하는 게 더 편했다.

공놀이는 그냥 감각이 없는 것인지 차도 던져도 목표를 향해 뻗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 자리는 도서관 구석 햇빛이 살짝 가려진 곳이었다.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재주가 있다면 좀 낫겠다만, 나는 그런 것도 없었다.

같은 친구가 말을 걸었을 때도 당황해 말이 빨라지는 나는 그냥 별종이었다.

당연히 용서받지 못할 행위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왕따가 됐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내 삶에 그 이후 왕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청소를 하다가 물벼락을 맞아 바라봤더니 화장실에서 발길질당하기도 하고,

웃으며 다가오다가 그대로 내 뺨을 돌려버린 적도 많다.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유는 그거면 충분했다.


그렇게 내 학창생활은 끝이 났다.

학교 내에서 좋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대학을 가야 했다. 두려웠다.

폭력을 당하진 않겠지만, 더 교묘한 폭력을 마주할 것을 익히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악의와 나는 어울릴 수 있을까.


결국 나는 흉내를 내기로 했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이들과 비슷해지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을 끊어내고 나 혼자만의 세상으로 빠지기엔 나에게 걸린 기대가 너무 많았고,

내 성격대로 살기에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단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리로 어떻게든 들어갔다.

회화에 맞장구치고, 웃는 시기에 웃고, 욕지거리에는 같이 욕지거리로 답했다.


최선을 다해 많은 이들과 어울려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내가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면 좁혔다고 생각했던 그들과의 거리는 다시 멀어져 있었다.

어정쩡하게 따라 해 봤자, 진짜 어울리는 삶을 사는 이들이 보기에는 맞지 않는 꼴로 보였나 보다.


'친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나한테 연락을 했대?'

몇 주 전 누군가를 걸쳐 들은 지인의 당황스러운 목소리는 내가 영원히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증명이었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며칠 전, 문득 카톡을 정리했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 얼굴, 이름들을 지워냈다.

내가 말을 걸면 그래도 반갑게 몇 마디라도 해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1500명이 1000명으로 줄었다.

일하면서 만난 거래처 사람들, 상사,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만 아는 협력사 직원. 얼굴 본지도 꽤 된 동기들.

어쩔 수 없이 남겨야 하는 사람들을 빼면 100명이나 되려나, 그중 가족들과 교회 사람들을 빼면 또 얼마일까.

이 사람들 중에 정말 나를 축하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른이 되었고, 지금은 대학 시절보다는 능숙하게 사람들을 따라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따라 할 뿐 정말 가까워질 수는 없단 걸 이제는 안다.

그저 '도서관에 한편에서 책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라고 중얼대며 '세상살이'라는 이름을 붙여 나를 속일 뿐이다.


정작 연락할 사람은 없으면서.

오늘도 어정쩡한 자세로 흉내 내는 나에게 마지못해 맞장구를 치는 이들의 전화번호가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