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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21. 2021

82. 먼지 쌓인 게임기.

집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다.

어른이 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꿈꾸던 소비 중 하나가 콘솔 게임기를 사는 것이었다.

뭔가 유튜브의 스트리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제 내가 돈을 벌고 한 사람 분의 몫을 하니 게임도 원 없이 하고 싶었다.

휴일이라면 좀 느긋하게 앉아서 게임에 푹 빠져서 놀면서 하루를 보내도 재밌겠다 싶었다.

 

그렇게 기대를 가지고 샀지만, 결국 결과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플레이스테이션에는 먼지만 쌓여있다.

한 사람 분의 몫을 한다면 다시 그 위에 몇 사람 분의 일을 더 해야만 한다. 돈 버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시간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시간이 아주 조금 생길 때도 있지. 그럴 때면 게임 컨트롤러를 잡고 있을 힘이 없다. 얼른 눈을 붙이고 잘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힘도 남고, 시간도 남는 시간이면 더욱 게임을 못한다.

무언가 해야지. 근데 그게 게임은 아니다.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아무튼 그 많은 시간을 모두 게임에 쓰고 싶지는 않다. 뭔가 조금 더 생산적인데 시간을 쓰고 싶다. 얼마 만에 난 시간인데.


느긋하게 앉아 게임에 푹 빠지고 싶은 내 생각은 결국 상상이다.

시간이 많다고 게임을 하지 않는다. 짬을 내서 게임을 하지도 않는다.

이미 팔기에도 너무 늦어 가족들이랑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데다 쓰고 있다.

그냥 내 생활 패턴과는 맞지 않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냥 어른의 로망으로만 꿈꾸던 것이었지.


결국 내 플레이스테이션은 먼지만 묻은 채 오늘도 잠들어있다.

이처럼 바보 같은 소비가 있을까. 쓰지도 않는 장식물로 남아버린 게임기만 한 소비가 또 있을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샀을 뿐이다. 어쨌든 아주 가끔은 조금씩이라도 게임, 하고 있고.

하지만 먼지 쌓인 플레이스테이션을 볼 때마다 남 같지 않아 더욱 손대기 쉽지 않아 진다.


어쩌다 보니 원하던 대로는 살지 못하는 인생, 내 본모습은 분명히 따로 있지만 누구도 본모습은 봐주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참 멋있는데, 정작 손은 잘 가지 않는다.

일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생각했던 만큼의 가치는 창출되지 않는다.

거실 한편에 까만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나나. 어딘가 길을 잃은 것만 같이 그저 살아있다.


그래도 오늘도 의외의 쓰임새는 있어서 버림받지 않고 살아있다.

그 정도로 살고 있다.

이번 주에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조금이라도 안 하던 게임을 해야겠다.

저 게임기의 먼지를 닦고 사용하면 내 마음도 조금은 깔끔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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