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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연 May 19. 2022

마지막을 기억하는 방법: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2)

두 번째 방문,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놀이 활동에 초대받다.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를 찾아가다. 그 두번째 만남


 책방지기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첫 번째 방문 후 일주일째이자 공간 비움을 9일 앞둔 4월 20일.

다시 한번 개똥이네책놀이터에 찾아가 보았다.


 책방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서니 어김없이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왔다. 두 번째로 마주하는 책방의 모습은 이별을 앞둔 공간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것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는지, 서점 안에서는 주민들이 재고 정리를 돕느라 분주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책장 곳곳에는 재고를 판매하니 많은 구입을 바란다는 문구가 붙어있고, 바닥에는 다른 곳에 보내질 책들이 끈으로 동여매져 있다. 일주일 만에 방문한 서점은 이전의 모습보다 더 한적해진 듯싶었다.


재고와 집기 판매전을 알리는 포스터 / 정리 중인 책장


 두 번째 방문에서는 이곳을 이용하는 아이들과 부모님(혹은 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한다. 답사에 앞서 책방지기와의 사전 소통이 있었으며, 책방지기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이 전통놀이를 나가는 날에 맞추어 답사를 다녀왔다. 우선 오후 4시에 있을 아이들의 전통놀이를 따라가기에 앞서 책방의 정리를 돕는 중인 부모님과의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민과 함께 한 인터뷰

인터뷰이: 백만송이(별명)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의 변화와 이별, 그리고 앞으로에 대한 기대


Q. 성미산마을은 육아공동체에 뜻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신 곳이잖아요. 어떻게 이 마을에 오게 되셨는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 경우에는 결혼하기 전부터 이쪽, 그러니까 마포구에 살고 있었어요. 성산2동에서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던 것 같네요. 결혼 전에는 잠시 종로구에 살았는데, 그때도 '결혼을 하면 다시 여기 와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서 자연스레 여기에 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부터 두레 생협을 이용하면서 아이들 먹거리를 해결했었고, 그리고 아이들 육아 품앗이라고 하죠. 그런 프로그램이 있을 때 참여해서 많이 이용하기도 했었어요.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그러면서 차츰차츰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개똥이네랑 와글와글 작은 도서관 이런 곳들은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긴 했어요. 제가 미술, 무대 쪽 일을 하고 있어서 이쪽 문화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네요.


Q.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라는 모습을 계속 보아오신 건데, 이곳을 이용하면서 아이들이 달라지거나 그런 점이 있었나요?


 저는 사실 비포(Before)가 없다 보니까... 근데 집은 연남동에 있거든요. 아이가 4세 때부터 4년 정도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계속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사실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네요. 마을에서 다 같이 자연스럽게 골목문화 이런 것들을 익히고, 통합 돌봄을 통해서 제가 어렸을 때 커왔던 문화를 아이도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으니까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Q. 부모로서의 삶에 있어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변화는 사실 아이를 낳으면서 제 삶이 너무 많이 변해서... 공연 무대 쪽 일을 하다 보니까 저녁에 일을 많이 하거든요. 리허설이라던지 공연이 거의 다 평일 저녁에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더라고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일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긴 했는데 그래도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간다던지 하는 게 아니면 거의 독박 육아라 맡길 곳이 없었어요.


근데 여기서 아이를 키우는 다른 부모님들과 같이 돕고 지내면서 저는 굉장히 숨통이 트였었고, 일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게 좀 달라졌죠.


활동을 지원하는 주민(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


Q. 이곳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아닌 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책 모임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네. 저도 하고 있어요. 제가 그림책 관련 일을 했었어서 그림책 서점을 운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책 읽는 모임을 진행했었어요. 아이가 여기에 들어오면서, 작년 2021년부터 방과 후 돌봄을 매일매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같이 들어오게 된 사람들이랑 주변 사람들까지 해서 12명 정도 같이 하고 있어요.

 그때는 사람들이 그림책으로 시작을 하자고 했는데 제가 좀 다른 걸 보고 싶다고 말해서 청소년 동화, 소설 그런 걸 보고 있어요.


Q. 개똥이네 놀이터가 부모님에게 있어서 어떤 장소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한테는 뭐 그냥 놀이터. 아이한테도 놀이터고 저한테도요.


(네 그렇군요. 이곳이 내년 3월까지 쉬어갈 예정이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여기에 취재를 하러 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용자이자 아이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맨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물론 사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희 아이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2학년이 되고 나니 그렇게 되면서...
 

사실 이렇게 옛날 주택의 모양을 갖추기는 힘들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처럼 마당이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여기서 재건축이 되어도 지금과 같이 문화 놀이터나 아이들 방과 후 활동을 할 테지만 그런 역사를 느낄 기회는 사라지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좀 아쉬운 감이 있는데 그래도 보리 출판사 대표님께서 조성 후에도 아이들이 쓸 수 있게 한 층을 다 내어주신다고 하니 굉장히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서점 정리를 도와주시느라 바쁘실 텐데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통놀이 시간에 함께하다

관찰 시간: 오후 4시~6시 30분


놀이를 통해 체득하는 책임감과 규칙

부모님, 책방지기와 함께 놀이공간으로 이동하는 모습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전통놀이 활동 햇빛이 너무 뜨겁지 않은 오후 4시경에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책방에 모여 놀던 20명 즈음의 아이들은 책방지기와 부모님 둘의 인솔을 따라 성미산 자락에 위치한 모래놀이터로 향했다.


 전통놀이라기에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 던지기 등 거창한 놀이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놀이에 필요한 것은 물주전자와 작은 돌멩이, 그리고 줄넘기 하나가 전부였다. 야외 활동은 총 3개의 놀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물주전자로 운동장 양 끝에 선을 긋는 것과 동시에 첫 번째 놀이인 '먼지놀이'가 시작되었다.



규칙을 지켜야 놀이가 즐겁다!

먼지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놀이는 술래의 역할인 '먼지'와 술래가 아닌 아이들이 운동장 양 끝의 선에 서며 시작된다. 먼지가 놀이의 시작을 외치면 술래와 아이들은 서로 반대편의 선을 향해 달리게 되는데 이때 술래인 먼지에게 잡힌 아이는 다음번에 먼지가 되어 다른 아이들을 함께 잡아야 한다. 지켜본 바에 따르면 한 명으로 시작했던 술래가 과반수가 되면 놀이가 끝나는 듯싶었다.


 이때 책방지기와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놀이의 규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지도한다. 누군가 놀이의 규칙을 어기는 순간 놀이는 즐거움을 잃게 되며 질서를 잃게 된다. 그리고 질서를 잃어버린 놀이에서는 서로의 신체뿐 아니라 마음에도 불편함이라는 상처가 생길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놀이'에서의 규칙이 아니라 '사회'에서 정한 규칙을 어겼을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모와 아이, 가족 간의 돌봄과 책임을 경험하다!

떡장수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 부모님과 책방지기가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준다

 두 번째 놀이 역시 물주전자와 함께 시작된다. 물주전자가 운동장 모래 위에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을 그리고 나면 아이들과 활동 도우미가 같이 하는 '떡 장수 놀이'가 진행되는데 이때 아이들은 떡장수, 엄마(혹은 아빠), 아이의 역할을 나누어 맡는다. 달팽이를 연상시키는 선은 담장을, 가장 안쪽의 공간은 집을 상징한다. 그리고 선의 가장 끝에는 떡장수의 가게가 자리한다.


 엄마의 역할을 맡은 아이가 선이 만든 길을 따라 이동하고 그 끝에 가서는 떡장수와 떡을 두고 흥정한다. 그러다 엄마가 떡을 던지면 아이들은 집을 향해 도망가고, 떡장수는 떡을 주워 자리에 둔 뒤 아이와 엄마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쫒는 놀이이다. 얼핏 보아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비슷한 놀이 같지만 사실 이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엄마도 떡장수도 아닌 '주변인'의 역할이다.

아이를 집에다 두지는 않아요. 왜? 아이 혼자 있으면 법에 걸려~
엄마가 얘들이 빨리 못 걸으니까 기다려 주시네. 아주 엄마가 됐네
아유 이 집은 아이도 많이 키우는데 아주 다정한 아빠네요!
이 집은 형이 동생을 잘 챙기네~ 착하네
떡이 너무 비싸다! / 거긴 먼지가 많으니까 여기다 둬야죠 / 떡이 너무 맛있어 보이네~

 책방지기나 활동 도우미는 '주변인'(필자가 붙인 역할의 이름), 즉 이웃주민의 역할을 수행한다. 아이들의 놀이 과정 사이사이에 추임새를 넣음으로써 엄마가 어린아이를 집에 두고 나오진 않았는지 점검하고, 떡의 상태가 어떤지 살피게 하는데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가족 간의 돌봄과 책임을 학습하게 된다. 또한 떡을 두고 벌이는 대화에서 협상의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



함께하는 즐거움, 협동을 배우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대부분의 독자에게도 익숙한 단체줄넘기로 야외 전통놀이 시간이 마무리된다. 꼬마야 꼬마야 하는 노래에 맞춰서 아이들이 한 명씩 안에 들어오고 노래에서 요구하는 동작을 전부 수행하면 놀이가 끝나게 되는데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협동하는 방법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배울 수 있다.



아이와 부모 모두를 위한 제3의 공간


여기는 다니는 곳이에요. 와서 놀고 그러면서 전래놀이처럼 방과 후 같은 것도 해요.
근데 거기가 리모델링해서... 그래서 저희는 집으로 잠깐 왔다가 공사 끝나면은 다시 저기 터로 와요.


 다음은 단체줄넘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도중 한 아이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아이는 먼저 질문을 던지지 않았음에도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리모델링으로 현재의 공간이 사라지게 되는 것에 대한 소감이 어떤지를 이야기해왔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배움'의 장소이기도 하고 '놀이와 만남'의 장소이자 '생활'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동네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과 관심은 비단 필자에게만 느껴진 것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개똥이네책놀이터 출신인 아이가 감사 인사를 하러 들리기도 하고 지나가던 아이와 부모님이 인사를 하거나 흡족한 표정을 짓고 바라보기도 했다. 이렇듯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주민들의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동네서점 개똥이네책놀이터가 있으리라.



아이들의 삶이 어른들의 가치와 동기로 정한 시간표에 따라 끊임없이 뒤틀리고 성형될 때, 우울증과 만성적인 권태 같은 어른들의 증상을 보이리라는 점은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제3의 장소 주변에는 어른들이 있다.

-레이 올든버그. 제3의 장소 p394~395


 위의 인용문에서 말하듯이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제3의 장소 주변에는 어른들이 있다고 믿는다.

특정 대상을 위한 공간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을 때에서야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자랄 수 있다.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어른(부모)에게는 새로운 커뮤니티와 육아에서 해방되는 시간을, 아이에게는 소꿉친구들과 존중받으며 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제3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갑작스러울 수 있음에도 방문과 인터뷰를 흔쾌히 허락해주신 그대로와 백만송이, 그리고 낯선 사람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주었던 따뜻하고 밝은 성미산마을의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두 번째 기록을 마친다.

마지막 기록은 4/29에 있을 공간비움 행사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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