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부숴버립시다!

by 농소

도쿄에서 처음 본 북한 아저씨들의 몸짓, 말투, 표정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머리 속을 휘젓는 날들의 연속이다. 또 다른 분단국가 독일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횡재를 누렸다. 부럽다 못해, 멍하다 못해, 어질어질했다. 그다음엔 우리 차롄가? 김칫국 마시는 걸까? 아무렴 어떤가.


1990년 12월 5일 밤 11시 30분 쾰른에서 출발하는 모스크바행 야간열차를 탔다. 베를린 무너진 장벽 터, 브란덴 부르크 게이트 Brandenburg Gate에 다녀 올 참이다. 베를린까지 대략 7시간 정도 달리는 동안 동독 출신 청년이랑 동석하게 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동독과 서독의 관계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그의 말을 재구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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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자살로 막을 내린 나치 독일은 네 조각으로 나뉘어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지배 아래 놓였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가속화됨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는 각자의 지배 영역을 하나로 통합해 서독(독일 연방 공화국)을 만들어 소련의 통치 영역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후 서독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정상국가로의 회복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침내 1954년 파리협정을 통해 잃었던 주권을 회복하였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1955년 ’할슈타인 독트린‘ 선언을 통해 서독만이 독일의 유일한 합법 국가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반발한 소련 지배하의 동독은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세워 모든 교류를 차단시킴으로써 동서독 간의 갈등은 점점 커져갔다.


1960년대가 저물어 갈 즈음 서독이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미국과 소련 간의 그칠 줄 모르는 군비 경쟁은 서로를 지치게 함으로써 국제 세력 판도가 미. 소 양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변화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로써 데탕트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서독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여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등장하였고 이에 따라 동서독의 관계도 점차 부드럽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독이 내세운 할슈타인 독트린은 폐기되고 1972년 동서독 간 기본조약이 체결되었으며 1973년 UN 동시 가입을 이루었다. 빌리 브란트를 시작으로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로 이어지는 국가수반들은 10여 년에 걸쳐 동방 정책을 일관되게 실행하면서 경제 위기에 빠진 동독에게 차관 형식의 엄청난 지원을 하기에 이르렀고 동독은 지원받은 데 대한 대가로 베를린 장벽에 설치한 자동화기를 전부 철거했다.

지원하면 개방하고, 또 지원하면 또 개방하는 등 상호적 관계는 점점 호전되어갔지만 그럼에도 통일은 그림의 떡이었으며 동독의 경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시민들의 여행을 제한하는 등 강경책을 고수하였다.


히어로즈


1987년 6월 초, 영국의 글램 록 glam rock 가수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즈 Heroes 콘서트’가 베를린 장벽 인근의 서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앞 야외광장에서 열렸다. 그는 지난날 마약 중독에 빠져 폐인이 되다시피 하자 서베를린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 데, 어느 날 밤 동독과 서독에서 각각 살고 있던 한 연인이 베를린 장벽에 기대어 서서 포옹을 나누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져 노래 한곡을 만들어 1977년 발표했는데 바로 ‘히어로즈 heroes’였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바로 그 노래를 들고 베를린을 다시 찾았다. 사흘간 이어진 콘서트 동안 주최 측은 공연장 스피커를 동베를린 방향으로 돌려놓았고 장벽 너머 동독 청년들과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장벽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장벽을 사이에 두고 ‘히어로즈’를 떼창 하자 지레 겁을 먹은 동독 경찰은 물대포로 진압하려 들었다. 이에 동독 청년들과 시민들은 항의함으로써 반정부 시위의 서막이 열렸다.


히어로즈는 베를린 장벽에 균열을 일으킨 찬란한 가락이었다.(* 2016년 1월 10일 데이비드 보위가 1년 6개월 가까이 암투병을 하다가 6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독일 정부는 공식 SNS를 통해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라는 글을 남겼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와 교황의 설교 중 전 지구적으로 어느 쪽이 더 힘이 셀까?


이 문을 여십시요!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실시하여 소련은 물론 동유럽의 위성국가들까지도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틈 타 1987년 6월 12일 베를린 시 건설 7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을 찾아 연설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님!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자유화를 원한다면, 이 문으로 오십시오! 고르바초프 서기장님, 이 문을 여십시요! 고르바초프 서기장님, 이 장벽을 허무십시오! General Secretary Gorbachev, if you seek peace, if you seek prosperity for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 if you seek liberalization: Come here to this gate! Mr. Gorbachev, Open this gate!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


결정적인 장소에서 결정적인 연설을 한 지도자의 품격과 덕목은 땅을 가로막고 마음을 짓누른 벽돌을 허물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분출하였다.


세월이 흘러 1989년 동유럽의 분위기는 긴박했다. 6월에는 폴란드에 자유민주주의 정권이 탄생했고, 그로부터 3개월 뒤에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철책을 철거해버렸다. 이에 자극받은 동독 주민들이 국경 탈출 러시를 이루자 10월 3일 동독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폐쇄해버렸는데 이에 라이프치히에 수십만 명이 모여 국경 개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소련군의 출동을 요청했지만 고르바초프는 불간섭 정책을 내세우며 거절했다. 결국 호네커는 10월 17일 서기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은 크렌츠 서기장의 개혁 정책은 국민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1989년 11월 4일, 10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동베를린 광장에 모여 언론 자유와 여행 자유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크렌츠 서기장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11월 6일 여권과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를 내용으로 하는 여행 자유화 법안을 공포했다.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오후 7시, 공보 담당 정치국원 귄터 샤보프스키는 전국에 생방송되는 정례 기자 회견 막바지에 휴가에서 막 돌아온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회견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하지 못한 채 어리바리한 상태에서 이렇게 발표했다.


“동독인들은 앞으로 여행 목적이나 방문 대상자 등을 밝히지 않아도 자유롭게 외국 여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기자가 물었다.

“언제부터 시행하는가요?”

샤보프스키는 머뭇머뭇하다가 답했다.

“즉시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여행 가능 지역에는 서독이랑 서베를린도 포함되는가요?”

그러자 샤보프스키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마 그럴껄요?!”


그럴껄요? 라니! 정확한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내놓은 답변이 바로 즉시 어떤 파도를 몰고 올지를 당사자도, 기자들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대답을 들은 이탈리아 안사(ANSA)통신 특파원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내용으로 긴급 타전하였고 이 소식을 받은 다른 통신사들도 앞다투어 보도함으로써 전 세계에 알려졌다.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기자회견 내용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라는 뉴스로 둔갑하여 전세계에 전파된 것이다.

TV 보도를 본 동베를린 시민들은 밀물처럼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서독 시민들도 달려왔다. 그들은 장벽에 올라 부르짖었다.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한편에서는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동독 경비들이 시민들을 향해 물을 뿌려댔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누군가가 외쳤다.


벽을 부숴버립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망치와 곡괭이를 들고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불도저도 동원되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린 장벽 위로 눈물과 환호성이 뒤범벅되어 덮어 내렸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어디 한 두 번 일까마는 ‘베를린 장벽 붕괴’ 뉴스는 세계 인류사에 길이 남을 경천동지 할 사건이 된 것이다. 가짜 뉴스가 역사의 굵은 한 획을 긋는 사건을 만들어 낸 지독한 아이러니다.


동독은 이미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으며 서독도 처음에는 얼떨떨했으나 이내 정신을 추슬렀다. 1990년 5월, 서독, 동독,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한 자리에 모여 독일 통일에 관하여 논의하는 절차를 거쳐 5개월 후인 1990년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은 공식 절차를 밟아 통일 국가로 등장했다. 분단된 지 45년 만의 일이었다.

동독 청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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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베를린 역에 내리니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가 마음을 설레게도 하고 심란하게도 한다. 물어물어 버스 타고 드디어 브란덴부르그 게이트에 도착했다. 허허벌판에 뎅그렇게 남아있는 잔해들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저 벽을 넘다가 죽음을 당한 숱한 생명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되살아난다. 자유를 노래하는 거대한 함성이 공중 위로 가득 차 오른다. 차가운 벽에 기대에 몰래 사랑을 나누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도 그려진다. 마침내 어찌할 도리없이 무너져내리는 벽돌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동독 군인들이 사용하던 군용 칼, 군용 모자, 그리고 케이스에 담긴 부서진 벽돌 조각 등을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장사꾼들이 동양인을 처음 보는 듯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묵언수행하는 승려처럼 아무 말 없이 통일의 환희를 가득 품은 벽돌 조각 하나를 사서 호주머니에 담는다.


지금 나의 책장 선반에 자리하고 있는 부서진 벽돌 조각은 다그친다. ‘한반도는 무얼 하고 있느냐?’ 한반도는 독일의 경우를 흉내 낼 수 있을까?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서독=남한, 동독=북한 식으로 이해하는 우를 범한다. 무식의 소치일 뿐이다. 분단 배경도 다르고 지정학적 조건도 다르니 접근법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터. 무엇보다 국가수반들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나 생각이 달라지니 독일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냥 판도라 항아리에 갇혀 있는 희망일 뿐이다.


베를린 광장.

뻥 뚫린 광장을 분주하게 오가는 시민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 한 편의 깜짝쇼처럼 무너져 내린 장벽을 역사로 접고 마침내 한 몸을 이룬 게르만 민족이 너무도 부러웠다. 내리는 비를 그냥 맞은 채 베를린 광장을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은 영락 없이 정처 없이 길 가는 나그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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