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by 농소

북녘 동포들을 직접 만나 밥 먹고 웃고 떠들고 노래했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독일을 둘로 가른 벽이 하릴없이 무너진 현장을 직접 걸어보고 나니 부러움은 잠깐이요 괜한 부아가 끝 모르게 치밀어 오른다. 독일이야 전범 국가이니, 싸움에서 졌으니, 두쪽이건, 네 쪽이건 아니면 갈래갈래 쪼개져도 박수칠 일이지만 또 다른 전범 국가 일본은 말짱하게 그대로이니 무슨 조환가? 애먼 한반도가 두쪽 난 이유는 뭔가? 오랜 세월 짓밟힌 것도 서럽거늘 엎드려 절 받기라 할지라도 위로를 받아야 할 마당에 밟힌 데를 또 밟혔으니 도대체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치고 분단의 후유증에서 자유로운 이 누가 있는가? 분단의 찌꺼기에 파묻히지 않은 이 누가 있는가? 분단이 없었다면, 동족상잔의 전쟁도 없었을 것이고, 반공을 앞세워 독재도 없었을 것이고, 민주화 항쟁하느라 목숨 건 에너지를 쏟아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평화요 통일이요 하면서 엎치락뒤치락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우선 먼저 왜 분단되어야 했는지 한번 돌이켜 볼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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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히로히토는 무조건 항복했다. 욱일기를 휘날리며 끝 모르게 승천하던 일본이 원자폭탄 두 방으로 속절없이 무너지자 40년 간의 식민통치는 막을 내렸다. 일본은 분할 점령당하고 한국은 해방되어 독립되는 일만 남았다.

<<식민통치 기간을 40년으로 계산한 이유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했고 그에 따라 대한제국의 외교기관은 모두 폐지되었으며 통감부를 서울에 설치하여 실제로 식민통치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되고 자유인이 된 과정이 좀 뻘쭘했다. 십수 년 동안 치열한 독립항쟁을 벌여왔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밤도둑처럼 순식간에 왔으니 어안 벙벙한 채 벅찬 환희를 누리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당당하게 해방과 자유를 쟁취했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으니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새 세상이 도래했다. 새날이 열렸다. 일본의 강제로 여러 모양으로 끌려간 3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은 서럽고 서러웠던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기 위해 하나둘 귀국길에 올랐다. 피눈물을 흘리며 떠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나라는 일본에 병합당한 ‘대한제국’이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병합한 순간부터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되돌려버렸지만 2차 대전 전후 처리를 위해 모인 국제 지도자들은 한국을 지칭할 때마다 ‘Korea’라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해방된 시 공간에 대한제국이 다시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3.1 항쟁 이후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제적으로 승인을 받지 못했으니 해방된 한반도는 나라가 없는 기이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독립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국민의 추앙을 받는 지도자들은 한시라도 속히 자리를 함께하여 생각을 나누고 뜻을 만들어내야 할 때였다. 글자 그대로 말 그대로 ‘스스로 서는 나라’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대동 단결해야 했다. 그들이 짊어진 책임의 무게는 어떠한 저울로도 잴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프랑스 총사대가 충성을 맹세하며 외친 구호를 빌려서라도 번듯한 나라를 세우려는 함성이 한반도 전역에서 울려나게 할 때였다.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all for one, one for all”

그러나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마땅한 역할을 해야 했던 국내 지도자들은 외눈박이 주장만 고집하면서 도를 넘는 권력 탐욕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강자들의 속셈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 불길한 느낌은 현실로 드러났다. 무슨 영문인지 일본 분할 점령 계획은 틀어졌고 한반도는 두 동강 나버렸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트루먼은 1945년 7월 6일-8월 1일, 독일 포츠담에서 아틀리에, 스탈린과 자리를 함께하여 회담하던 중 7월 16일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원자폭탄 성공으로 미국의 시간이 오래갈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그때까지 유지해오던 소련과의 경쟁적 협력 관계도 루스벨트가 주장한 탁치 정책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점령 정책으로 돌아섰다. 소련과 공동으로 일본을 점령하기로 한 약속을 즉시 폐기해버렸다.


‘내 밥그릇에 손대지 마!’


그 말인즉 미국은 다른 승전국들을 물리치고 통째로 일본을 삼킨다는 의미였다. 원자폭탄으로 일본 항복을 받아냈고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스스로 원탑이라 생각하니 파이를 다른 나라들과 나누어 먹고 싶은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더해 트루먼은 부통령직에 있는 동안 루스벨트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루스벨트가 사망할 때까지도 현안들에 대한 정보를 일체 받지 못했다. 탁치 정책에 대해서 루스벨트에게서 들어본 적도 없었고 함께 의견을 나누어 본 적도 없었다. 부통령직 재임 3개월 동안 루스벨트 대통령을 단 두 차례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왕따 신세였다. 전임자에게 개무시당했던 터라 전임자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은 도무지 없었을 것이다.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로서는 탁치 정책에서 점령 정책으로 선회한 이유가 단순히 원폭 성공 때문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개인의 마음과 생각이 국가의 정책으로 변환될 수 있을 개연성은 너무나도 많다.

<<포츠담 회담은 1945년 4월 루스벨트가 갑자기 사망하자 졸지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이 처음 등장한 국제무대였다. 영국의 경우 회담 초기에는 처칠이 참석하였으나 국내 선거에서 아틀리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회의 도중에 짐을 싸서 귀국해야 했다.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정상들의 회담이 황당하면서도 어이없게 웃기는 장면이었다.>>

미국에게는 대서양 못지않게 태평양도 중요한 전략지였다. 소련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은 곧 미국 대륙으로의 진출로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환경에서 일본은 풍부한 군수물자 생산 인프라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마당 태평양을 수호하는 완충지대이자 공동의 이익을 챙기는 동반자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은 따라서 태평양을 독점하기 위해서는 4년 간이나 치고 박고 싸웠던 주적 일본을 이제는 동지로 삼아야 했으니 일본을 공동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한 포츠담 선언을 망설이지 않고 내팽개쳐버렸다. 일본 열도에 소련 군대가 들어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소련도 만만찮았다. 일본 본토 공동 점령 계획은 틀어져버렸지만 아직 한반도가 남아있었다. 한반도에서 극동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당한 모욕감으로 기회를 엿보던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으로 탄생한 후에도 단 한순간도 일본에 대한 보복을 기억 속에서 지우지 않았다. 일본이 핵폭탄으로 파멸 위기에 빠지자 소련은 마침내 치욕을 대갚음해 주고 강제로 넘겨주었던 재산도 되찾을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사실 미국이 자국군의 손실이 너무 클 것을 염려해서 이미 소련에게 참전을 요청했으나 소련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물론 유럽에서 독일과 치열한 싸움을 치르느라 너덜너덜해져 버린 군사력으로 태평양전쟁에까지 참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참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미국과 일본 간의 전투 상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도청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8월 9일 새벽 2시, 소련은 일본의 항복이 멀지 않았음을 간파하고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듯이 잽싸게 참전했다. 스탈린은 소. 일 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고 소련군 150만 명이 전쟁에 뛰어들어 한반도 북쪽 지역의 일본군을 삽시간에 쓸어버리고 자리를 틀고 앉았다.


한심한 흥정


소련의 의도를 간파한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한반도 진주를 결심하였다. 미국은 소련의 일본 점령은 좌절시켰지만 그렇다고 한반도를 고스란히 소련의 손에 넘겨줄 맘도 없었다. 1945년 8월 10일 소련이 북쪽 지역에 진주한 바로 그날, 자정쯤 트루먼은 국무성 장관 던에게 일본 항복을 처리할 군사 분할선을 작성하라고 지시하였고 던은 전쟁성 수석 대표 링컨 소장에게 명령을 하달했고 링컨 소장은 본스틸 대령에게 전화로 서울과 인천이 포함되는 분할선 작성을 지시했다. 예상치 못한 명령을 하달받은 본스틸 대령은 러스크 대령 함께 허겁지겁 한국 지도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벽에 걸린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보고 북위 38도를 기준으로 30분 만에 뚝딱 분할선을 작성하여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자 국무부는 38도선 북단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트루먼은 군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38도 분할선을 재가했다. 38도 분할선은 최종적으로 <일반명령 제1호>로 확정되어 맥아더에게 전달되었고, 맥아더는 소련 측에게 전달했고, 소련은 그대로 수용했다.


이로써 미국과 소련은 패배한 일본은 그대로 두고 일본에게 긴 세월 식민통치를 받았던 한국을 두 쪽 내버렸다. 반쪽씩 나눠먹기가 이루어졌다. 꿩 대신 닭인가! 한반도가 그리됐다. 자연 지리 환경이 제국주의적 탐욕으로 오염되어 지정학적 요충지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해방된 한반도의 운명은 그랬다.

서로가 서로의 반응에 놀랐다. 소련은 분할선이 예상보다 38도선으로 내려간데 대해 놀랐고 미국은 소련이 38도선을 수용한 데 놀랐다. 미국은 왜 38도선을 택했을까? 서울과 인천을 미군 관할 하에 두려 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수도이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인천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이유는 당시 그곳에 미군 포로수용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만약 소련이 38도 분할선을 반대할 경우 미군을 부산으로 진주시키려 했다. 또한 삽시간에 일본을 패퇴시킨 소련의 군사력을 두려워한 것도 38도선을 택한 또 다른 이유였다.


그렇다면 소련은 왜 38도선을 수용했을까? 신흥 강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역시 신흥 강자로 떠오른 미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이를 위해 어느 정도는 양보할 수 있는 미끼였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원자폭탄을 가진 터라 군사적으로 매우 신경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련군은 8월 21일에 이미 함흥과 원산까지 진주하였고 8월 24일에는 15만여 명이 평양까지 내려와 터를 잡았다. 미군은 그로부터 보름이나 더 지난 후인 9월 8일에야 9만 2천여 명이 부랴부랴 인천에 상륙하였다.

해방을 누리고 자유를 노래하기도 전에 더 센 자들이 들이닥쳤다. 해방의 환희를 속 시원하게 토해낼 틈도 없이 신흥 강자 미국과 소련은 해방 한반도를 둘로 쪼개 똬리를 틀고 앉았다. 두렵고 절망스러운 장면이다. 그다지 챙겨 먹을 것 없는 한반도였지만 전 지구적으로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제국주의적 탐욕의 도구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38도선은 본래는 종전 처리 목적을 가진 분할선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패망한 일본군들로부터 총을 빼앗고 군복을 벗겨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못하도록 무장해제시키는 각각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그어진 것이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이미 서로가 상대방의 속내를 알아차렸으니 상대의 속내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방어벽이며 동시에 자신의 속내를 더 멀리 더 넓게 확산하려는 보호막이었다. 극동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소련이나 이들의 확장을 막고 자신들의 야망을 팽창하기 위한 전략 요충지가 필요한 미국에 한반도는 충분한 가치가 있던 전초였다. 온전히 차지할 수 없다면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38도선은 신흥 강자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상징이었다.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 자본주의 진영이 서로 견제하는 엄혹한 국제정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표시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미국이 딱 그렇다. 한반도에 아는 것 하나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로지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정신이 팔려 식칼로 무 자르듯 분할선을 그어버렸으니 말이다. 한반도의 생명은 어찌 되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길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우리의 생각이나 주장은 한마디도 끼어들 틈도 없이 우리의 터전은 그렇게 두 동강 났다.


번듯한 나라 세우기 준비를 시작도 하기 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38도선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졸작이었다. 휴전선 거리가 미국 거리 단위인 ‘마일’로 측정되어 155마일이라고 지금껏 불려 오고 있는 이유이다. 소련은 또 어떤가! 불도그가 오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꼬리를 내린 백구가 따로 없다. 미국의 바보짓은 한심스러웠고 소련의 바보짓은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은 ‘확정된’ 분단선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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