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냐 카이로스냐

by 농소

2021년 태양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려 고개 짓을 한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고...” 전인권의 “돌고 돌고 돌고”를 몇 차례 흥얼거리고 나니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분주하게 흘렀던 세상의 나이테는 어느새 또 하나를 깊이 새겼다. 80억 인류가 보내고 맞이하는 세상은 똑같지만 사는 길은 80억 가지다. 코로나 광풍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송구영신 한다고 법석을 떤다.


50억 년 전 탄생한 이래 태양은 단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 태양은 뜬 적도 없고 진 적도 없다. 그럼에도 sun rise, sun set이라고 노래한다. 그 태양을 바라보면서 송구영신한다면서, 옛사람으로부터 새사람으로 변하겠다고 해마다 결심하고 결심하지만 몇 걸음 못 가서 엎어지고 만다.


그리스 신화 ‘크로노스’ 이야기이다.

태초에 몸집이 어마 무시하게 크고 젖가슴은 끝도 없이 넓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 Gaea가 있었다. 많은 자식들에게 젖을 먹여야 했기 때문에 젖가슴이 크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가이아는 ‘지구’를 뜻하는 어휘로 사용된다. geography, geology도 가이아에서 유래했다. 가이아 여신은 스스로 하늘 신을 낳고 자신의 남편으로 삼았다. 우라노스다. 두 신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식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바로 6남 6녀, 12 남매인 티탄 Titan족이다. 거인을 의미하는 타이탄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열연했던 영화 타이타닉으로 잘 알려진 빙하에 의해 침몰한 거대한 유람선 타이타닉 Titanic도 바로 티탄에서 비롯했다.


헌데 12 남매 이외에도 외눈박이를 비롯해 둘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이 하나같이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었으니 이를 보다 못한 우라노스가 제 자식들임에도 태어나는 순간 가이아의 자궁 속으로 도로 밀어 넣어버렸다. 그러자 가이아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자궁 속에서 아우성치는 자식들 생각에 한에 사무쳐 몸서리치는 날들을 하염없이 보내야 했다. 그런데 철딱서니라고는 벼룩이 눈곱만큼도 없는 우라노스는 변강쇠를 오금 저리게 만들 정도로 넘쳐나는 정력을 주체하지 못해 밤이면 밤마다 가이아를 덮쳤으니 가이아는 그 좋은 성생활을 악몽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탐닉하는 남편 때문에 무슨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남편을 제거하기로 맘먹고 아들들을 불러 모아 의중을 물으니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면서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다.


허나 막내 크로노스 Kronos는 달랐다. 성정도 포악한 데다 야망도 우주만큼이나 큰 신이었기에 아버지를 죽이는 청부를 자원해 날이 설대로 선 낫을 품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아버지 우라노스가 그날 밤도 변함없이 일일행사처럼 성이 오를 대로 오른 ‘거시기’를 들이밀며 아내 가이아 위로 엎어지려 할 찰나 아들 크로노스가 잽싸게 낫으로 아버지의 거시기를 단숨에 싹둑 잘라버렸다. 거시기는 피가 낭자한 채 나뒹굴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온 피범벅이 된 정액은 바다로 떨어졌는데 바로 거기서 만인의 연인 여신, 아프로디테, 비너스가 탄생한 것이렸다.


세월이 흘러 대권을 잡은 크로노스는 자식들 중 하나가 자신을 죽이고 대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들었으니 하루도 속이 편할 날이 없었다. 해서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자 아내인 레아와의 사이에서 자식들이 태어난 쪽쪽 먹어치워 버렸다. 이후로 크로노스의 막내아들 제우스가 천신만고 끝에 크로노스를 피해 살아난 이야기 등등 줄줄이 이어지니 이는 서스펜디드로 남기고.


이 크로노스 Kronos가 바로 시간의 신이다. 크로노스 시간은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 개념이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선적線的 개념의 시간이다. chronicle이 Kronos에서 유래했다. 크로노스는 과거에 아버지를 제거해버렸고 그것으로도 성이 차질 않아 미래의 자식들조차 모조리 없애버렸다. 시간의 무서움을 말하려는 것일까. 시간은 모든 걸 먹어치운다. 시간 앞에 살아남을 자 아무도 없다. 가는 세월을 막을 자 누가 있는가. 신도 막지 못하는 게 시간이요 세월이다. 시편 기자는 읊조렸다. “우리의 세월은 한숨처럼 스러지고 맙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은 두려운 존재다. 사라져 간 과거를 그리워하고 다가올 미래를 기대함과 동시에 두려워한다. 과거에 연민의 정을 가지면서 동시에 자신의 미래가 자신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파멸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 미래를 죽이려 든다. 현재의 즐거움. 자족함을 모른다. 오늘을 허우대며 살면서 내일을 염려한다.


시간 경영? 웃긴다. 크로노스 시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먹어치운다. 인터넷 시대, 스마트폰 시대. 빠른 게 좋다고? Andante가 맨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보통 빠르기’였단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느리게’로 변했단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미국 가수 Glenn Campbell이 부른 ‘Time’이란 노래다.


Some people run 어떤 사람들은 달려가고

Some people crawl 어떤 사람들은 기어가고

Some people don’t even move at all 어떤 사람들은 전혀 움직이지도 않네

Some roads lead forward 어떤 길은 앞으로 나아가고

Some roads lead back 어떤 길은 뒤로 후퇴하네

Some roads are bathed in white 어떤 길은 흰색으로 포장되고

and some wrapped in black 어떤 길은 검은색으로 포장되어있다네

Some people never get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가 하면

and some never give 어떤 사람은 베풀지 않네

Some people never die and 어떤 사람은 죽지 않으려 하는가 하면

Some never live 어떤 사람은 살려고 하지 않는 이도 있네

Some folks treat me mean 어떤 이들은 나를 무시하고

Some treat me kind 어떤 이들은 나를 친절하게 대하네

Most folks just go their way 사람들은 모두가 제갈길만 서두르고

and don’t pay me any mind 내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네

Time oh good good time 세월아! 오 좋고 좋았던 세월아,

Where did you go? 너희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느냐?

Time oh good good time 세월아! 오 좋고 좋았던 세월아,

Where did you go? 너희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느냐?

Sometimes I’m satisfied 어떤 때는 나는 만족해하고

Sometimes I’m not 어떤 때는 그렇지 못하네

Sometimes my face is cold 어떤 때는 내 얼굴이 냉담하고

And sometimes it’s hot 또 때로는 흥분되네

At sunset I laugh, sunrise I cry 해질 무렵에 나는 웃고

sunrise I cry 해 뜰 때 나는 울지

At midnight I’m in between 한밤중에 나는 웃고 울고 한다네

and I’m wondering why 그리고 나는 왜 그런지 이상하게 생각하네.

Time oh good good time 세월아! 오 좋고 좋았던 세월아,

Where did you go? 너희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느냐?

Time oh good good time 세월아! 오 좋고 좋았던 세월아,

Where did you go? 너희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느냐?


크로노스적 삶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동시에 염려하는 삶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허우대며 살아가는 크로노스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종착은 어디일까? 솔로몬의 영화를 꿈꾸는 것일까?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막내아들인 제우스의 막내아들이다. 크로노스의 손자. 그는 기회를 잡고 결단하는 신이다. 카이로스 시간은 마음이 결정하는 시간으로서 마음의 작품이다. 그것은 신비 자체다. 어거스틴은 말한다. “만일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묻는 자가 있어서 그에게 시간을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모릅니다.” 카이로스적 시간에 따른 삶은 내일 일을 염려하는 대신 현재적 삶의 자족함을 누리는 삶이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은 자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충고한다.

어느 날 다윗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멘붕에 빠진 신하들은 밤새 토론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자 하는 수 없이 지혜가 뛰어났다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서 해법을 물었다. 솔로몬은 빙긋이 웃더니 단 한마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여


Lanta Wilson Smith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음미해본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이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될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순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크로노스적 삶은 과거에 빠져 미래를 기대하고 동시에 두려워하면서 자칫 현재를 무시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카이로스적 삶은 크로노스적 삶의 아쉬움과 허망함을 넘어선다. 카이로스적 삶의 결정체는 한마디로 들풀의 현재적 생존력이다. 인생의 참맛을 누리고 삶의 희열을 누린다. 언제나 현재를 사는 삶이다.


지금 여기서 here and now!


카이로스적 삶의 슬로건이다. 인간은 과거나 미래에 대해 연연하기에 앞서 지금의 현실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집착과 욕망을 넘어서야 가능한 삶의 방식이다.


삶은 목적이 아니라 강물처럼 흐르는 과정이다. 과거의 미련과 미래의 기대를 넘어서 카이로스적 현재를 즐기는 과정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내가 흐른다. 나의 삶이 흐른다. 흐르면서 새 삶, 새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즐긴다. 거기에 존재의 깨달음이 있으니까.


작별 인사를 뒤로 하고 이제 막 자리를 떠나려 하는 소 등에 올라탄 호랑이가 우렁찬 포효를 뿜어내며 힘차게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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