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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Feb 08. 2021

다같이 자취를 합시다

요리를 귀찮아하던 자취생의 변화


한국과 일본에서의 '자취'의 의미는 좀 다르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취'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한국의 경우 방 사진이나 요리, 원룸 구하는 팁, 무엇보다 가장 많은 셀카.. 등 다양한 사진이 나오지만 일본어인 自炊로 검색하면 다 같이 약속이나 한 듯 요리 사진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자취'는 방을 얻어 혼자 사는 '독립'에 가깝고, 일본에서의 '자취'는 직접 요리하는 '집밥'에 가깝다. 




ソナ、自炊してんの? 소나, 자취해?

はい。週末くらいですけどね。네, 주말만요(ㅎㅎ)

でも、えらいね~。그래도 대단하네

일본인의 '너 자취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면 거의 100%로 '대단하네~'가 자동응답처럼 흘러나온다. 처음 이 같은 반응을 들었을 땐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건가 싶었지만 코로나로 매일 집밥을 해 먹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 나의 식사패턴은 점심은 회사 근처에서 대강 해결하고, 저녁은 밤이나 돼야 먹을 수 있었으므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샐러드를 사 먹는 식이었다. (기분과 체력이 내킬 때만) 주말이 되면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해진 2020년부터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밖에서 사 먹는 것이 망설여질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매끼 자취를 시작했다.


집에서 도보 10분 정도의 거리에 2개의 커다란 슈퍼가 있다. 역 앞에 있는 슈퍼는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도시락이나 바로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많다. 게다가 그 반찬 중에는 한국 나물 모둠이 있는데 나는 많은 날을 이 한국 나물 모둠에 의지하며 산다. 또 하나 도로변에 있는 슈퍼는 역 앞 슈퍼에 비해 저렴하고 무엇보다 덜 붐빈다. 여유롭게 장을 보고 줄 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은 나는 이 슈퍼를 애용한다. 이런 시국이다 보니 밀폐된 공간에서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자 일주일에 한 번만 슈퍼에 가기로 했다. 한번 갈 때마다 일주일치 식재료를 짊어지고 와야 했는데 백팩과 에코백에 한가득 담아 미묘하게 숨이 차는 오르막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드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2L짜리 물을 2-3병씩 사 오는 날이면 어깨가 가라앉을 듯했다. '아, 어깨 아파. 오늘 물 사는 날인데 식재료까지 많이 사서 더 무겁네. 어차피 걸어서 10분이면 가는데 또 가면 될 것을 왜 이렇게 한 번에 사서 고생을 하냐'며 혼잣말이 길어졌다.


한 번은 산책을 하다가 계획 없이 슈퍼에 들렀다. 몇백 원 아끼자고 작은 사이즈의 비닐봉지를 샀는데(일본은 슈퍼에서 주는 비닐봉지가 모두 유료고 대, 중, 소 사이즈별로 판매한다) 슬픈 예감은 왜 매번 틀리지 않는 건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반이나 남은 그때 비닐봉지가 찢어졌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우두두두 길가로 쏟아지는 식재료들을 보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오랜만에 겪는 좌절스러운 상황이었다.(이게 뭐라고)


다행히 온 팔과 손가락의 힘을 총동원해 집으로 돌아왔고 무사히 집밥을 해 먹었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이지만 슈퍼에 식재료를 사러 가는 일은 사실 수고스러웠다. 가기 전에 냉장고에 뭐가 남았나 확인하고 먹고 싶은 걸 대충 생각한 뒤 필요한 재료를 메모지에 적는 사전작업이 필요했다.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매번 검색을 통해 새로운 메뉴나 식단을 찾느라 1시간씩 유튜브를 헤매곤 했다. 그리고 나면 슈퍼에서 산 식재료를 이고 미묘하게 숨찬 오르막길을 걸어 돌아오는 식이었다. 물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2.

피곤함을 깔고 사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좀처럼 요리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직접 만들어 먹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하나는 외식과 비교할 수 없는 가성비다.


한 번은 호기심에 마라탕을 먹으러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내 취향인 것이다. 마라탕의 세계에 이제야 입문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간장과 설탕으로 맛을 더하는 일본요리들 사이에서 마라탕의 매콤함은 콧물도 나고 간혹 기침도 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속 시원한 맛이었다. 한국의 매움과는 다른 종류의 매움과 특유의 향까지. 왜 그렇게 마라탕이 유행이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마라탕에 빠진 나는 다음날 또 마라탕이 먹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코로나와 가격이었다. 고기 조금, 청경채 조금, 두부 조금, 고작 이거에 1500~2000엔 정도였다. 보통 밖에서 혼밥을 할 때 대략 1000엔 정도를 예산으로 잡는 내겐 조금 비쌌다. 이렇게 된 바엔 직접 만들어볼까 싶었다. 검색해보니 평소 잘 쓰지 않는 몇 가지 조미료가 필요할 뿐 조리법은 굉장히 간단했다. 당장 슈퍼로 달려가 두반장과 팔각, 산초 그리고 닭고기 완자와 먹고 싶은 야채를 수북하게 샀다. 야채가 좀 더 있었으면, 고기가 좀 더 있었으면 했던 아쉬움을 모두 털어버릴 셈이었다.


중화요리의 만능 조미료인 샨탄을 넣고 물이 끓는 동안 야채를 먹기 좋게 썰어 둔다.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두반장을 넣어 기름과 두반장이 잘 어우러지게 섞어준다.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고 불맛을 더해주면 끝. 여기까지 하면 완성이나 마찬가지다. 샨탄으로 만든 육수에 두반장 볶은 것을 넣으면 마라탕 국물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주인공인 팔각과 산초를 넣어주면 마라탕 특유의 칼칼하고 톡 쏘는 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시원한 맛을 원한다면 파를 잘게 썰어 넣어줘도 좋다. 썰어둔 야채와 고기완자를 넣고 마지막으로 당면을 넣면 완성! 식당에서 먹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채와 고기를 양껏 먹은 든든한 한 끼였다. 게다가 아직 한 번 더 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재료가 남아있었다. 영수증을 확인한 순간 해 먹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요리가 즐거운 순간은 기대를 안 하고 만든 요리가 의외로 맛있을 때다. 귀차니즘이 창궐하는 날에 대비하여 냉동 파스타를 사두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건 간장 버터 파스타. 주로 가지나 시금치, 송이버섯과 베이컨을 넣고 간장과 버터로 고소하고 짭짜름한 맛을 낸다. 이것 또한 야채가 너무 적은 데다 냉동식품이라는 걸 의식해서인지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된장국에 넣으려고 사온 시금치를 보다가 간장 버터 파스타를 만들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면이 익는 동안 가볍게 데친 시금치와 버섯, 베이컨을 볶다가 물 100ml에 간장을 적당히 넣는다. 면을 넣고 마지막에 버터를 추가한다. 오, 냄새부터 좋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성공각이다. 프라이팬에서 갓 건져 올린 파스타를 포크에 돌돌 말아 한입 넣은 순간, '아, 내가 만든 게 냉동보다 맛있다..'며 감탄했다. 그 뒤로 나는 냉동식품 코너를 기웃거리지 않는다. 나는 간장 버터 파스타를 사 먹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고작 그거? 라며 비웃을 수 있지만 분명 작은 성취감이었다.   




3.

엄마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먹는 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거라고. 작년 내내 집밥을 해 먹으면서 끼니를 챙기는 것이 귀찮아질 때 그 말을 자주 되새겼다. '내가 먹는 게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장바구니에 산 것들을 차곡차곡 넣으며  '아, 이게 내가 일주일간 먹을 것들이구나.' 이것들이 내 입으로 들어가서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하니 직접 장을 보고 정성스레 요리하는 건 꽤 대단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일의 내가 될 것들을 스스로 고르고 만드는 과정이 아닌가. 어쩌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좋은 옷을 입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보다 더 공들여 노력해야 할 일이었다.


혼자 사는 누군가, 회사 일이 바쁜 누군가에게, 여전히 자취自炊는 귀찮고 수고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드는 수고스러움을 아까워 하지 말자. 나처럼 식비가 절약될 수도 있고, 작은 성취감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무기력으로부터 나를 건져주기도 한다. 양어깨가 가라앉을 듯한 장바구니의 무게는 거뜬히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이자 나를 위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임무다. 


자, 그럼 오늘도 임무 수행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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