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선 흔한 일이지만 지독히도 참지 못하는 것이 있다. 다른 건물이 내 집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일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유일하게 바깥과 연결되는 베란다마저 콘크리트 건물에 막혀버리면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베란다 앞에 건물이 없거나 그 건물보다 더 높은 층의 방만 찾아다닌다. 새로 이사한 오사카의 집 역시 그렇다. 맑은 날이었다. 베란다에 나가 고개를 돌리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보였다. 삭막한 청량함이었다. 하늘이 이리 맑은데 도심의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시골에서 크고 자란 나는 늘 도시에서 살길 바랐고, 그 바람대로 어른이 돼서는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7년을 살았다. 그런데 문득, 자주 되뇌었다. '자연에 가고 싶어. 어딜 향해도 자연밖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심의 답답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흔히 '회색도시'로 표현되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콘크리트의 특성에서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모든 건물들의 외관에 마치 숲 속인 듯 색을 입히고 그림을 그린다면 조금 상쾌한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되지도 않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그곳은 답답했다.
이 집 바로 뒤편에는 강이 흐른다. 그 강을 따라 교토까지 조깅 코스가 펼쳐져 있고, 중간중간 쉼터와 낚시터, 잘 정돈된 스포츠 코트와 들판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오사카 역에는 목적이 있을 때만 발길을 옮기지만 이 곳에는 별 목적 없이 때로는 달리기 위해, 때로는 멍 때리기 위해, 때로는 사람과 새를 구경하기 위해 간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가뿐해져서 돌아온다.
자연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말장난 같아 우습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이란 「흔들림」이다. 나뭇잎은 작은 바람에도, 잗다란 가랑비에도 곧이곧대로 흔들린다. 강물은 끊임없이 물결치고, 새들은 물결에 맞춰 춤추듯 떠 있다. 해가 뜨면 밝아지고, 해가 지면 어두워진다. 때가 되면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도심의 풍경은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려선 안 된다. 건물은 높고 곧게 서 있어야 하고 24시간 편의점은 종일 불이 켜져 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서도 누군가는 이미 지하철을 타고 있고, 아무리 늦은 새벽에 퇴근해도 누군가는 아직 건물에 남아 불을 켜고 있다. 나보다 더 빠르게 혹은 더 늦게까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 회사는 나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고 돌아간다.
흔들림과 멈춤을 보여주지 않는 도시의 '부자연스러움' 은 어느새 당연함이 되었다. 나 또한 도시의 일부로서 무던히도 멈추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느끼던 도심의 답답함은 그런 마음이었고, 그 마음은 조금씩 단단하게 굳다가 똑하고 부러져 버렸다.
에어컨의 냉기가 실외기의 열기를 만들듯, 멈추지 않으려 노력한 만큼 충분히 멈춰 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 발은 도시에, 한 발은 자연에 딛고 서 있는 이 도시 덕분에 다시 말랑해진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