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변화
현실과 변화
1.
이사를 권해보았다. 방을 빌려 함께 사는 것은 어떻겠냐고.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면 나도 너도 출퇴근할 수 있고, 독립된 공간을 누릴 수 있으니 내 스트레스도 사라질 거라고. 가만히 생각하던 그가 말했다.
‘그건 합리적이지 않아’
이 곳은 그의 자가다. 이곳에 살면 월세가 들지 않으며 출퇴근 따위에 시간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욕심이 없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벤 그는 이곳에서 생활을 영위하는데 한달에 30만원이면 충분했다. 사는 데 필요한 비용이 적기에 돈을 덜 벌어도 되고, 노동을 덜 해도 되므로 대부분의 시간은 다 자유시간이었다.
물질이 아닌 시간을 누리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삶. 집을 가꾸고 동물을 키우고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은 그가 원하는 삶을 실현할 수 있게 지난 몇년의 시간을 들여 그가 만든 시스템이었다.
나와 함께 다른 집에 산다면 월세가 들고,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들며, 자유롭게 누워있을 뒷마당도, 동물들을 기를 공간도 없을 것이다. 고정비가 들기에 그 비용을 충당할 추가노동을 할 것인가, 손님을 더 확보할 것인가 검토해야 한다. 이 집에서 나오면 그동안 자신이 일군 라이프스타일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얻어지는 것은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이다. 부정할 수 없었다. 입장을 바꿔봐도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연인의 입장에서 저 말을 들으니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 나 때문에 네가 원하는 삶을 버릴 필요는 없지. 더이상의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사회학적으로 인간은 함께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득이라고 생각할 때 결혼이란 걸 한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라고 웃어 넘기던 그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직접 들었을 때 이렇게도 차가운 말인지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금 내게 필요한가'에 계속해서 생각의 초점을 맞추려 애썼다. 머리로는 그냥 나가버리자고 몇번이나 생각했고 집까지 알아봤지만 스스로에 확신을 못하는 듯 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나는 변할까? 세상에 나 하나 바꾸는 것에 이렇게 확신하지 못할 수가. ㅋ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할까?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해야 한다. 한다.
2.
내가 이사를 나가면 우리의 관계는 서서히 끝날 것이다. 주말에 쉬는 나와 주말에 일하는 그. 평일에 그가 내집에 온다 해도 아침 저녁으로 케어해줘야 하는 그의 애완동물들 때문에 그는 내 집에서 묵고 갈 수 없다. 오고가는 데만 4시간이 걸리는데 묵고 갈 수 없다면 그것 또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사를 나가면 우리는 만날 시간이 없다. 물리적으로 만들 수 없다. 함께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관계를 이어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애초에 처음부터 답이 나와있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음에도 함께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확인하고 싶었고, 바뀌고 싶었던 것 같다.
방 퀄리티가 거기서 거기인 월세 생활과 지리한 집찾기, 계약, 새 집에 이사하고 적응하는 과정이 지겨워졌다. 그와 함께 공간을 만들어나간다면 그 공간이 더 쾌적할 거라 생각했다.
힘든 시기에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만큼 그를 신뢰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충분히 대화하지 못한 채로 헤어졌고 내내 미련이 남았다. 우리는 잘 맞았고 그와 함께 있는 사진 속 나는 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서로가 만족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는지, 좀 더 찾아보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내고 싶었다. 이곳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이제 곧 해외생활 10년차.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누구와도 감정을 나누지 않고 고립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아무 걱정이 없어도 쉬이 잠들지 못했고 살아가는 시간이 헛헛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 큰 것이 되어 돌아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데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좀 더 밖에 나가고 싶은데 귀찮아하는 내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려면 전혀 다른 환경에 나를 놓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출근시간에 안 늦으려면 아침일찍 일어나야 하는 먼 동네에,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면 어쩌면 나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집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외부환경을 바꾸는 것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 내 안에서, 나 자신이 변화해야 그 변화가 진짜 내 것이 되는 것이었다.
변화는 언제나 내 몫이다.
외부요소와 환경은 불을 당겨줄 뿐, 그 불을 유지시켜주진 않는다.